브람스의 이룰 수 없었던 사랑 이야기 (1)

그래,내가이승을떠난지도벌써일백십칠년이되었군.내가죽은후말들이많았던것도잘알고있지.슈만부인과의뒷얘기들말이야.누군가그런말을했더군.음악사에서3대미스테리가있다고.하나는베토벤선생의’불멸의연인’이누구냐는거였고,두번째는슈베르트선생이왜2악장으로끝나는’미완성교향곡’을작곡했느냐는것이었지.마지막하나는나와슈만부인과의관계가아리송하다는얘기였어.글쎄,내행적과편지들로인해그런의문을살수는있었겠지.내가생각해도내행동에의문점이많았으니까.그래서오늘내심경을털어놓기로작심한게야.

그전에하나짚고넘어갈게있어.내현악6중주곡제1번2악장안단테모데라토를흔히들’브람스의눈물’이라고말하더군.난그제목이썩마음에들지않아.그음악을들어보라고.그게왜’눈물’이야.차라리’분노’라고붙였다면더어울릴뻔했어.그현악기들이뿜어내는뜨거운열정에서고작눈물따위를보다니,참으로한심해.그곡은내가스물일곱살이던1860년에작곡되었지.그해9월13일슈만부인의생일에2악장을피아노곡으로편곡해서부인에게보내기도했었어.또이듬해에는다시피아노연탄곡으로만들어내생일날인5월7일함브르크에서슈만부인과함께연주하기도했다구.그래서그곡을두고슈만부인과의이룰수없는사랑을그럴싸하게엮어내눈물이라고한것같은데,그곡의밑바닥에흐르는불같은분노는못본모양이야.그분노의의미를아는가.도저히오를수없는어떤나무를쳐다보기만해야했던내아둔함과얄궂은운명을향한분노말이야.

알다시피내가슈만선생과그부인을처음만난게1853년9월30일이었지.그때내나이스무살이었어.나는친구이자유명한바이올린연주자였던요하임의소개로슈만선생을만나기위해뒤셀도르프로갔었다네.내가선생면전에서자작곡인피아노소나타C장조(op.1)를연주하자선생은잠간연주를멈추게한후부인을불렀지.선생은나를부인에게소개하며과분한칭찬을해주셨지.앳된청년이었던나는몸둘바를몰랐고,부인은내게따스한미소를보내며격려해주셨다네.그때부인의나이는서른넷으로나보다열네살더많았고,슈만선생은마흔셋으로내겐아버지뻘이었지.그날이후거의한달동안나는슈만선생댁에서기거를하며신세를졌다네.슈만선생은당신이주관하던음악신보에나를소개하며’시대의정신에최고의표현을부여한사람’이라고격찬해주셨어.분에넘친배려에나는피아노소나타(op.2)를작곡해서부인에게헌정하여그고마움을표하기도했었지.

(만년의브람스)

그런데이듬해인1854년2월27일,정신질환을앓던슈만선생이라인강에투신하는사건이있었던게야.다행히선생은지나가던배에구조되었지만그날부터요양원신세를지게되었다네.당시슈만선생은여섯명의자녀를두었고부인은일곱번째아기를임신하고있었지.사랑하는남편이강에투신하고요양원에계셨으니부인의상심은말로다할수없었다네.그때나는단단한각오를했었지.어려움에빠진부인이낙심하지않도록옆에서지켜주자고말이야.이름난피아니스트였던부인의연주회도주선해서가계에도움이되도록했고아들이태어나자펠릭스란이름을내가지어주기도했다네.또슈만선생이부인에게헌정했던곡을주제로’슈만의주제에의한변주곡(op.9)’를작곡해서막내아들에게주기도했었지.이처럼나는곤경에빠진부인을도우기위해온갖정성을기울였다네.

그런데사람의심사는참으로알다가도모르겠더군.부인을열심히도우다보니어느새내마음이부인을향해기울어져있는게야.나도처음엔그마음이뭔질몰랐어.부인을곁에서열심히도우고만나다보니내마음이변해지는걸느꼈다구.처음에는동정으로시작했다가몇달이지나자부인을생각하면애가타고조바심이나는사랑으로바뀌더라니까.이런마음에나도놀랐지.존경하는선생이요양원에계시는데그부인을사모하는망령된마음을갖게되다니,내스스로자신을호되게질책하기도했었어.그렇지만한번기울어진마음은돌이켜지지않는게야.한번생각해봐.나보다열네살이나많고또요양중에있지만엄연한남편이있는스승의부인을사모하다니,말이안되지.하기야내어머니도아버지보다열일곱살이나더자셨으니연상이그처럼나쁜건아니었어.견디다못해나는그해12월15일부인에게사랑을고백하는편지를썼다네.선생이라인강에투신한지열달만의일이었지.그편지에서나는이렇게말했어."오늘나는이편지를보내는대신당신에대한사랑으로죽고싶다고계속말할수있게해달라고기도합니다.오,편지함이여!내너에게간청하노니이편지를내사랑하는여인에게전하고내인사도그녀에게대신전해주기를…"물론이편지는내스스로에게보내는걸로만족했다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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