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야기는그친구A의얼굴을봐서라도무덤까지가져가야겠지만,시간도꽤흘렀기에털어놔도괜찮을것같다.
햇수로쳐도벌써30여년이지난일이다.
엊그제티비에서설악산에단풍이붉게물들었단뉴스를보다가불현듯A와의지난일들이떠올랐다.
지금은이세상에없는그친구지만그와의지난일들을생각하면가슴이먹먹해지곤한다.
A는초등학교부터중학교까지함께다녔던죽마고우였다.
집도그리멀지않은한동네에살아오다가다더러만나서함께놀기도했다.그의부친은중앙시장에서옷장사를했는데,항상보면술에취해얼굴이뻘겋곤했었다.길에서만나인사라도할라치면호주머니에서푼돈을꺼내주곤했다.돈을받기위해가까이다가가면풍겨왔던그지독한알코올냄새를지금도기억한다.
공부에연연하지않았던A는중학교를졸업하고그부친밑에서잠시일했었다.그러다가군대갔다온후독립해서철물점을차렸다.그시절,우연히시내에서마주치면그친구는항상후줄그레한작업복차림으로자전거를타고다녔다.그래,요새우떻노하고물을라치면친구는씩웃으며노가다가별거있나,밥이나묵는기지하고남의일처럼말했다.
그친구를다시만난것은10년정도지난80년대초였다.
그때직장의인사발령으로고향에서근무하게됐는데친구들과의술자리에서다시A를만났다.당시도그친구는후줄근한차림새였고별말도없이술잔만비워나갔다.야,이야기나좀하고마시라.누가잡아가나하고말하면A는씩웃으며내는가방끈이짤바서너거말하는데낄수가있나.그냥술이나마실란다하며자작으로술잔을비워나갔다.
그것이빌미가되어그친구와종종술자리를갖게되었다.간혹퇴근후시간이남아그의가게에들리면무료하게티비를보고있다가반갑게맞아주었다.그때친구의가게는시내중심가에있었고규모도큰편이었다.그렇지만직원은없고친구와그아내가가게를지키고있었다.
여기서그친구의아내얘길해야겠다.친구에게들은말로는인근S군출신으로중매결혼을했다고한다.
나이는두살인가밑이었고체격은웬만한남자들보다더우람했다.얼굴도미인은아니었지만아담하게생겼고여고까지나왔다고했다.처음만났을때느꼈던건그녀의목소리가꽤컸다는것이었다.
가게를찾아가면친구는고향말로’메구오래비본것처럼’반가와했다.그이유는간단했다.술생각이나던차에친구가찾아갔으니얼마나반가왔으랴.친구는얼른아내에게내,잠시갔다올긴께점방잘보고있거라한마디던지고는내손을잡아끌었다.가게를나서는우리들뒷통수엔그아내의굵은목소리가날아들었다.보이소,얼릉오이소이.집에아아가(애기가)기다린다말입니더.
그때우리가잘갔던술집은S동에있었던’남자기생’집이었다.
여자처럼곱상한얼굴에구성지게창唱을잘해붙여진이름이었다.그집에가면맛깔스런동동주가있었고,안주도문어포를위시해서각종나물,전,찌개까지고향의흥취를불러오기에충분했다.우리는방안에차려진앉은뱅이테이블에마주앉아주거니받거니도도한주흥酒興에빠져들었다.
하지만그주흥도오래가질못했다.한시간이나흘렀을까.주인장’남자기생’이쪼르르달려와서친구를불렀다.어이,A사장.전화좀받아라.너거마느래다.그러면친구는단박쏘아붙였다.아,참.행님도.없다쿠지그리눈치도업십니꺼.아,이사람아.니가나댕기는기너거마느래손바닥우에환하이비는데우찌거짓말을할끼고.고마댔십니더.여게술이나한주진자더갖다주이소.
전화도받지않고술잔을들이키는친구가좀불안해서한마디던졌다.와너거집사람이전화로해쌌노.요새장사가잘안대나.그말에친구는픽웃었다.봐라,친구야.내도돈좀벌었다아이가.니알다시피너거는고등학교다대학교댕길때내는쌔(혀)빠지게돈을모았능기라.니한테만말하는데다른아들한테는말하지마라.이래비도돈좀모아서인사동에3층짜리빌딩도하나사났다.그빌딩월세만받아도밥묵고사는데는아무지장없다.
그러나일은잠시후벌어졌다.친구의아내가술집까지찾아온것이었다.그녀는방문앞에서서우리둘을노려보고있었다.이기머하는짓이고.친구가소리쳤지만등등했던기세와는달리목소리는잔뜩움츠러들었다.고마가입시더.날마다이기머하는짓이라예.주위사람들의눈짓이따가와우리는얼른일어섰다.
그런지경이었으니친구들은A와의술자리를피했다.나역시마찬가지였다.
그일이있고나서그친구가몇번내게전화를했지만이런저런핑계를대며만나지않았다.
그러다가인사발령으로나는다시상경히게되었다.고향을떠나기며칠전,나는일부러짬을내어A를찾아갔다.그때도친구는반갑게맞아주었고,그아내의못마땅해하는눈초리에도아랑곳하지않고’총각기생’집에서이별주를나누었다.서로열심히살자고다짐하면서.
그렇지만그친구와는그게마지막자리였다.다음해고향친구가전화로A의죽음을알려왔다.심장마비로죽었다고했다.친구의나이마흔하나였다.
친구가죽고난다음해,고향에갔다가친구B를만났다.B역시초등학교때부터친구여서죽은A와도잘아는사이였다.우연히만나한잔나누다가뜻밖의이야기를들었다.
니는서울에서몬내리왔지마는내가그친구빈소에갔다아이가.그란데참이상하데.그친구마느래말이다.우리가간께네목을노코우는기라.멀카고우는지아나.그리빨리죽을줄알았시모술마신다꼬말을안할긴데,내가잘몬했십니더하고통곡을하능기라.
친구B는말을계속했다.그란데참웃기는거는그마느래가초상을치고나서철물점을팔아치운기라.그때만해도우리는여자가힘이들어서그랑갑다꼬생각했다쿵께.그란데그기아인기라.내가직접본거는아인데그여자가친구죽고나서바람이났다쿠능기라.바람?먼바람.참,웃기제.니도안다아이가.와배건네철구다리건너모강가에무신카바레가있제.누가봉께저녁때되모거게로나간다쿠더라꼬.
에이,이친구야.니가보도안하고소문만믿지마라.허,내도안믿고싶은데벌써시내에소문이짝퍼진기라.그랑께죽은놈만설븐기라.소문들응께빌딩도하나남가났다쿠는데우찌될랑고모리겄다.
2천년에들어서자모친마저돌아가시는통에고향발걸음도뜸해졌다.
2005년쯤이었다.햇수로친구A가죽은지도어언스무해가지났다.그날도명절전에부모님산소에들렀다가시내에서친구B를만났다.친구는복덕방을하고있어서시내의어떤소식에도환했다.
친구와오랜만에비빔밥집에들러소주한잔을곁들였다.그날친구는또엄청난소식을내게전해주었다.친구A의아내가한해전에죽었다는것이었다.
친구야,옛말에안하던짓을하모죽는다쿠는말이있다아이가.A의마느래말이다.전에도니한테이야기했제.카바레댕긴다꼬말이다.그라다가정식으로시집만안갔제이남자,저남자만나고댕긴기라.소문들응께A가남가논빌딩도팔아묵었다쿠더라.내한테가꼬왔시모값이라도잘쳐좋시낀데말이다.건물판돈도칠랑팔랑써고댕기다가이리저리떼이고난중에는집도한칸없이접방(셋방)살이까지했다안쿠나.그라다가뱅(병)이나서골골기리다가작년에죽었다아이가.참,사람팔자모리능기라.우쨌든그여자는그래도A가남가논돈잘써고죽었제.단풍메이로활활타면서기세조커로놀다가낙엽맹키로떨어진기라.아이구,자슥놈만불쌍하제.
아,그래.머스마가하나있다캤는데나이가한서른좀넘었제?
그래,저거엄마가재산다날리는바람에자슥은빈털털이가대가꼬장개(장가)도몬가고너머집셋방에삼서는무신공장에직공으로댕긴다안쿠나.죽은A가땅밑에서지대로눈이나깜겄나.
우리는단풍처럼활활기세좋게타다가낙엽처럼날아간그여자를생각하며,또A를생각하며술잔을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