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생각해도그일은참으로황당하고어처구니없는일이었다.
그당시엔꽤나진지하고절실한생각에서시도한일이었지만본의아니게엉뚱한결과를가져왔으니지금도낯이뜨겁고가슴이답답하다.그러니그때엔오죽했으랴.
벌써50년도더지난일이지만생각할수록쓴웃음만나온다.ㅎㅎ
소년이고2였으니열일곱살인1962년가을이었다.
그때소년은친구집에서만난같은학년여학생을짝사랑했던탓으로가슴앓이를하고있었다.그녀는소년보다한살위였지만생일로는불과서너달연상이었다.그소녀에흠뻑빠진소년은몇번이나편지를보내만나줄것을애걸복걸했지만,소녀는청마선생의싯귀마냥’뭍처럼꿈쩍도’않았다.
고민하던소년은초등학교때부터절친하게지냈던친구에게하소연했다.그러자친구왈,단번에고쳐줄방법이있는데,더예쁜소녀를소개시켜주겠다는거였다.
솔깃한소년에게친구는조건을내걸었다.단,교회를다녀야된다는것이었다.
소년은오랜망설임끝에친구따라교회에나갔다.
교회나간지한달이지난그해10월,어떤행사를맡아준비하면서몇몇여학생의도움을받았다.그가운데소년의마음을사로잡은소녀가있었다.인근여고의1학년학생이었다.
고심끝에소년은’뜨거운마음’을고백하는장문의편지를썼다.그때만해도남학생이여학생에게전달하는사랑의메시지는편지밖에없었다.
마침그소녀가방과후교회에들리는걸안소년은학생들이이용하는안내꽂이에그편지를넣어두었다.
겉봉에는소녀의이름을얌전하게썼다.
며칠후그녀가편지를잘보았을것으로확신한소년은학생회정기모임에두근거리는가슴을진정시키며참석했다.매주토요일오후에열렸던모임에는스무명남짓의학생들이모였다.
그소녀를얼핏보았지만소년은짐짓외면했다.예배시간내내소년은떨리는가슴을진정시키느라애를먹었다.
모임이끝나고회원들끼리인사를나누었지만그소녀는소년에게별다른반응을보이지않았다.오히려소년이당황해서무슨말을걸어야할지머뭇거리는사이소녀는시야에서사라지고없었다.
머쓱한마음으로어깨를늘어뜨리고교회문을나서는데누군가소년을불렀다.돌아보니같은학생회원인여고1학년소녀였다.그녀는몸이뚱뚱하고별특색없이생겨예사로보아왔던여학생이었다.
소녀는소년에게단팥죽을사달라며생글생글웃었다.가뜩이나심사가뒤틀려있었지만그렇다고그소녀에게성질을부릴수도없어앞장을섰다.소년은혹시편지를받은그녀가직접말하기가쑥스러워친구를통해무슨메시지라도전해주겠거니하는한줄기기대를가지면서.
단팥죽집에서만난소녀는전혀그런메시지를전해주지않았다.오히려소년이거북할정도로하하호호거리며소년에대한칭찬들을늘어놓았다.
옥수수죽을씹는심정으로단팥죽을비우고일어섰을때소녀가먼저나가서값을치렀다.
그후에도몇번이나뚱보소녀가단팥죽을먹자고말했지만소년은핑계를대곤자리를피했다.
물론편지를보냈던소녀에게서는더이상아무말이없었다.소년은이번에도보기좋게차였구나짐작하며아픈가슴을다독였다.
소년의풋사랑이엉뚱하게빗나간걸안것은그로부터10년가까운시간이흐른후였다.
소년이청년이되어군대에다녀온후교회에서청년회활동을했을때였다.같은회원중에학년이한해낮은청년이있었다.이청년은몇년전함께학생회활동을하며청년과가까운사이였다.
어느날,그가청년에게털어놓았다.형,이제세월이많이지났으니털어놔도되겠다.괜찮지?뭔데?사실은형에게엉뚱한짓을한게있어.뭐냐니까.그래,말해도성안낼꺼지?아따,사람숨넘어간다.그래,말해봐라.사실은형이그때어떤여학생에게보냈던연애편지있었잖아.그학생들안내꽂이에꽂아두었던편지말이야.아,그래.생각난다.그편지가어쨌길래.사실은그편지를그여학생이보기전에내가먼저봤거든.호기심에서보니연애편지더라고.그편지를보고장난끼가발동해서내용과겉봉을적당히바꿔치기한거야.뚱보여학생에게보내는걸로말이지.그뒤형에게말한다는게하도형이의기소침해있어서차마말을못한거야.미안해.
청년은쓴웃음이나왔다.
아,그래서그게그렇게되었구나.
그렇지만이제와서어쩌리요.벌써십년이나지났는걸.허허
그래,그게풋사랑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