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계신큰방에서는연이어기침소리가들렸다.
처음엔늙은사자의신음소리같은으르렁거리는가래끓는소리가들리더니자지러질듯한기침소리가이어졌다.부엌에서군불을지피던어머님이용수철에서튕겨나듯방으로들어갔다.잠시후어머님은사기요강을들고방에서나왔다.
어머이,갠찮아예?그래,개안타.밸거아이다.
어머님은장독간으로가서예사롭게찬물로요강단지를헹구었다.
할아버지가병석에드신지벌써석달째접어들었다.
지난추석,사라호태풍이한반도를무참하게짓밟고지나간그날부터할아버지는꼼짝없이자리에누웠다.
추석날아침,차례를지내신후아침밥을드시다가갑자기축담으로내려가서구토를했고그길로병석에서일어나지못했다.항상검붉은얼굴에수염을쓰다듬으시며술잔을드셨던모습은온데간곳없이왜소하고초라한얼굴로연일기침만했다.
할아버지는술을엄청좋아하셨다.
날마다초저녁이면동네친구분들과거나하게한잔잡숫고들어왔다.집으로들어오면서첫말씀은장손을부르는것이었다.바구[바우,돌]야,바구오데있노하고큰손자를불렀다.일과처럼대기하고있던나는얼른뛰어나갔다.
할아부지,오이십니꺼하고할아버지를부축하면그래,바구야,방으로가자하고순순히방으로들어갔다.
장손인나는늘할아버지와함께잤다.새벽녘사그락거리는소리에눈을떠면할아버지는생무를잡숫고있었다.그래서나는겨울철이면생무를할아버지처럼즐겨먹는다.ㅎㅎ
지금도생각나는기억이있다.
할아버지가일어나셔서에헴하고기침하면5분내에어머님이술상을들고왔다.대개는정종반되를따끈하게데웠고대구구이가안주였다.할아버지는아침밥을자시기전이걸해장술로항상드셨다.겨울철엔막걸리를데워서갖고오기도했지만매일아침똑같은일상이었다.간혹어머님이늦게준비해서5분이넘으면그날아침은할아버지의잔소리가유난히심했다.
물론할머니가계셨지만전혀그런일에는참견을안했다.
그때나는중학교2학년이었다.
매일아침어머님이할아버지술시중드는게참으로안타까왔다.게다가유난히대구를좋아하시는할아버지를위해어머님은11월이되면대구를열하꼬[나무상자]정도사서통대구나멸작(대구를내장빼고납작하게발겨말리는것)을만들었다.내장중에알[卵]이나아가미,창자는젓갈을담갔다.
덕분에고니나알내장탕을자주먹었다.그래서지금도생선은대구를최고로생각한다.ㅎㅎ
할아버지가몸져누우신후어머님은좀편하신것같았다.
매일아침술상을대령했던것부터없어졌으니까말이다.ㅎㅎ
나는어머님이편하신것같아은근히기분이좋았다.그래서어머님기분이좋을때’알랑방구’삼아한마디했다.
어무이,기분좋지예?머가기분좋은데?할아부지한테아침마다술안갖다조도댄다아입니꺼.
그말에어머님은불호령을내렸다.야가멀쿠노.술이문제가.할아부지가빨리일어나시야지.함만더그런소리해바라.가마이안나두끼다.알겄나.
나는어머님께효도하려다가날벼락을맞았다.^^
그렇다고할아버지가술만자셨던분은아니었다.
할아버지는전형적인농부였다.열심히일해서땅도많이장만했다.지금도기억나는건초전에이십여마지기의논이있었고,독골[도동]에도큰과수원이있었다.
이땅을아버님이사업하면서다탕진했다.만일아버님이농사꾼으로땅만갖고있었다면아마도나는지금쯤고향에서돈푼이나있다고거들먹거리며살고있었으리라.ㅎㅎ
할아버지는그해겨울음력11월중순,일흔일곱연세에돌아가셨다.병석에드신지석달만이었다.
양력으로12월중순,거센한파가휘몰아쳤던그날,장손인나는할아버지의영정을들고상여앞에갔던작은가마의앞에서벌벌떨며장지인선학재산등성이까지갔었다.
그자리에서오른편으로할아버지가복숭아[수밀도]와배[장심]를목숨처럼재배했던뒤벼리뒷산이보였다.
내일밤이면할아버지의묘소를옮기기위해고향으로간다.
밑의남동생과자정에출발하는진주행심야버스를탈것이다.화요일아침7시에개장하는할아버지묘소에갔다가할머니묘소도들릴참이다.화장장까지갔다가납골당에모실터이다.
할아버지는55년만에이사를하신다.
열네살소년의그겨울,그기억이지금도새롭기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