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18일밤동생과남부터미널에서만나11시에출발하는심야버스를탔다.
애당초계획은자정에출발하는버스를타려고했지만기다리다가괜히한잔할것같아빨리떠났다.
고향진주까지는대략3시간반이걸린다.이날밤기사분은날아갈듯버스를몰았다.중간경유지인산청에들리고도진주에도착하니오전2시10분이었다.
터미널앞에서찜질방이어디있는지물었더니가까운데있었다.
동생이출출하다며우동이라도먹었으면하길래보니길건너에냄비우동간판이보였다.
고인이되신무무님이맛있다고소개한기억이있어들어갔다.안내판을보니이식당은오후7시부터다음날오전4시까지장사를하는곳이다.메뉴도냄비우동과김밥이전부였다.
냄비우동을주문했더니잘게썬진주식깍두기와단무지가나왔다.소주를시키자’좋은데이’가올라왔다.
서울소주보다도수가낮아먹기에편했다.ㅎㅎ
냄비우동을반세기전인60년대초에는’가끼우동’이라고불렀다.
참으로고단했던그시절,저녁밥을먹고도한두시간만지나면항상배가고팠다.그때용돈이라도있으면우동집을찾아갔었다.찌그러진노란냄비에담겨나온우동위에는빨간색어묵이보였고초록빛의쑥갓도올려졌다.
젓가락으로우동을섞으면고소한멸치육수냄새가코끝을찔렀고,뜨끈한국물을한모금마실라치면간간하면서도시원한국물이뱃속을짜릿하게했었다.
62년9월,고2였던나는친구의전도로교회에나갔다.
연말이다가오자우리는학생회지를만들기로했고지도교사의집에서밤을새워가며가리방을긁었다.
아마요즘사람들은모를것이다.가리방이란쇠로된판인데미세한선線들이각인되어있었다.여기에초를입힌종이에철필로글을썼고등사기에붙여로라로밀면인쇄가되어나왔다.
지도교사의댁이당시진주시청옆의본성동에있었고,밤10시쯤출출하면인근의가끼우동집에가서배를채웠다.
아,그때의그우동맛은지금도잊지못한다.
그후70년대상업은행진주지점뒷편에H집이있었다.그집은가끼우동맛이끝내줬고좁은실내는항상만석滿席을이루었다.그집의우동을모른다면진주사람이아니라고할정도였다.
그렇지만그집도없어진지오래다.뚱보였던주인아줌마가지금도기억에남아있다.
오랜만에만난냄비우동을보며반세기전의추억에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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