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그 시절의 대구요리

햇수로어언60여년이지났으니아득하다고해도별로문제될게없을것같다.

국민학생시절이었던지난50년대중반,모든것이부족하고고단했던때였지만생선은흔했던걸로기억된다.

당시시장에가면말린오징어(우리는’수루메’라고불렀다)가지천이었고,싱싱한갈치며조개(고향에선’개발’이라고했다)들이시장바닥에널려있었다.

고향인근에사천,삼천포가있어매일아침시장에는물좋은해산물들이풍성했었다.

기억하건데값도비교적싸서아침,저녁밥상에는비린반찬이빠지지않았던걸로생각한다.

이맘때쯤이면생각나는생선이있다.생선중에왕이라고부를만한대구다.

길이는대개두자정도되었고알이나고니로배가불룩튀어나와여남은살먹은내가들기에도무거웠다.

이대구를할아버지와아버님이무척좋아하셔서11월에접어들면몇하꼬(생선을담은나무상자)따서말리는게어머님의연중행사였다.대개50여마리를따서말렸는데처마끝이나빨랫줄에널어놓은모습은참으로장관이었다.

배를딸때는머리를자르고내장을발라냈다.머리에붙어있는아가미와내장속의장지는젓갈로담궜다.

머리와내장,고니는주로매운탕을해먹었고,알은아가미처럼젓갈을담궈먹었다.

대구를말리는방식도두가지였다.머리는둔채내장만빼고배에다가꼬챙이를끼우고벌려말리는걸’통대구’라고불렀고,머리를잘라내고내장을들어낸후납작하게벌려말리는건’맬작’이라고했다.

둘다말리는건마찬가지였지만살[肉]은’맬작’이더많았던것같았다.

대개한달여를말린후추운겨울밤,출출할때면온가족이둘러앉아한마리를뜯어서(찢어서)먹었다.

꾸덕꾸덕한대구포는무척감칠맛이났고고추장이나초고추장에찍어먹었다.여기에시원한동치미(고향에선’동김치’라고했다)국물까지곁들이면한겨울밤야식으로는최고의별미였다.

얼마전부터는소스를김치속(양념)으로바꾸었는데대구포나북어포소스로는그만이었다.

대구포만맛있는게아니다.적당히말린대구는구워먹어도맛이좋았다.

대구는비린생선이아니어서그맛이담백했고구운대구는아무양념없이도밥반찬으로제격이었다.

구운대구는술안주로도손색이없었다.이미몇차례얘기했지만할아버지는겨울아침이면어머님이차려주는대구구이로해장술을드셨다.노릇노릇구운대구는어린눈에도무척맛깔스럽게보였다.

대구요리의별미가또하나있다.할아버지와아버님이즐겨드셨던요리다.

가마솥에물을넉넉하게붓고말린통대구를서너토막으로잘라넣는다.여기에무를듬성듬성잘라같이넣는다.

대구뼈가연해질때까지두세시간충분히끓인후간장만으로간을한후먹으면된다.

아주담백하면서도보양식으로손색이없다.

대구이야기를하다보니생각나는게있다.

고향의대구도좋았지만대구에관한한마산을빼놓을수가없다.

지난80년대중반모협동조합도연합회에근무하면서마산에서살았었다.사람만나는일을하다보니저녁마다술자리가생겼고대개는’불종거리’라고부르는창동으로갔다.그곳에는대구볼찜을전문으로하는집들이많았다.

나는대구머리에그처럼살이많다는데놀랐다.대구볼찜하나를시켜놓고서너명이소주몇병을비웠으니말이다.그후다른지역에서이음식을먹어봤지만마산것에비하면어림이없었다.

대구매운탕은마산공설운동장인근의식당이지금까지도생각난다.무를설핏설핏썰어넣고끓인그국물맛은대한민국어디서도찾아볼수가없었다.

작년연말대천에서사왔던대구.가격도저렴했고싱싱했다.

며칠후면대천이나서천으로대구를사러갈예정이다.

대구는서해안보다도남해안,그것도거제장목쪽의대구를제일로쳐준다.

그곳의수족관에는살아있는대구가있다고한다.한마리시키면대구회와매운탕이나온단다.

지금까지대구는많이먹었지만회는아직못먹어봤다.

언젠가기회가되면그곳으로가서대구회를먹어볼생각이다.

아,그때가언제오려나.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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