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서른해를꼽아야할만큼오래전일이다.
지난80년대중반,다니던회사를그만두고’겁도없이’험한세파世波에몸을던졌을때돌아온건좌절과굴욕이었다.은행대출로마련했던거금의사업자금은여섯달사이흔적도없이사라져버렸고,제때월세를못내사무실보증금마저다까먹어버린상태였다.
생각다못해지인의충고대로책상두개만달랑들고남의사무실에얹혀살게되었다.
그때만난사람이그사람이었다.
더부살이를시작한사무실의주인은당시사십대중반으로인정이많고오지랍이넓은사람이었다.그렇지만술을좋아해서시도때도없이얼큰하게마셔댔고그런사람들이늘그랬듯심심하면화투판을벌였다.
그러다보니그사무실엔낯선사람들이수도없이드나들었고그가운데그도있었다.
그때만해도그는늘신사복정장으로다녔고행동거지역시여느사람들과는달리젊잖았다.고스톱을치다가단돈천원때문에시비가붙곤했지만그는언제나돈에는초연했다.당시엔꽤큰돈이었던만원자리몇장이한두시간만에박살나도언제나허허웃고는군말이없었다.
그와인사를나눈건사무실주인의배려에의해서였다.서로통성명은안했지만안면은있어가끔그가사무실에들리면눈인사정도는나누는사이였다.
그를안지한달여가지났을까.사무실주인의연락을받고인근식당에갔더니주인과그가대낮부터술잔을기울이고있었다.그자리에서정식으로인사를나누었고그를깊이알게되었다.
그는명문대학을나와잘나가는무역회사에서과장으로근무했었다.사무실주인이그회사와인쇄물관련거래를하면서그와알게되었고많은신세를졌다고했다.그러다가그는회사를나와무역관계사업체를차렸고잘나갔을때는직원숫자가오십여명에달하기도했었다.
그가화투를치러다닐즈음엔사업체가부도위기에처했을때였다.
인사를나눈지서너달이지났을때그의차림새는엄청달라졌다.말쑥한신사복대신허름한작업복으로바뀌었고면도도며칠씩이나못했는지얼굴엔수염이제법새까맣게돋아있었다.
뿐만이아니었다.아침부터사무실에나타난그의얼굴은불콰하게물들어있었고입에선알코올냄새가진동했다.
간혹그의강권에못이겨아침부터식당으로끌려가해장술을마시기도했는데그때마다빈약한내호주머니로계산을해야만했었다.그렇게그는무너져내렸다.
그를마지막만난게이십여년전이었다.
그날도이맘때처럼세밑의바쁜시절이었다.지하철에서내려부지런히계단을올라가다가마주내려오는그를만났다.그는손을번쩍들더니위에서잠시만기다려달라는신호를보내왔다.바쁜걸음이었지만차마거절할수없어기다렸다.잠시후헐레벌떡나타난그의형상은갈데없는노숙자였다.
수인사를나누고그의간청에못이겨인근식당으로갔다.그는내게양해도구하지않고술과안주를시켰다.자신이계산할처지가아니면서도.
소주석잔을물마시듯비운그가하소연하듯털어놓았다.
나,마누라하고이혼했수다.삼년전에.내가사업시작하면서처갓집돈을좀끌어썼는데폭삭망하고나니갚을재간이있어야지요.결국마누라의이혼요구를거절할수가없었시요.아들,딸둘도마누라가데려갔어요.내가부양할능력이있어야지.지금은공사판에서노가다도하고잠은적당한데서해결하고살지요.그런데노가다체질이따로있는지영힘을쓸수가있어야지.죽을맛이우다.자,오랜만에만났으니형씨술이나한잔얻어먹읍시다그래.소문들응께그런대로잘나가신다문서요.허허.그래,어떤영화대사중에이런말이있었지요.내일은내일의해가뜬다든가.허허.
송구영신送舊迎新의계절,그는지금어떤삶을살고있을까.
그의허탈했던웃음소리가귓전에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