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A가내게전화를걸어온건지난금요일저녁무렵이었다.
퇴근준비를서두르다가받아든휴대폰건너편에서들려온친구의목소리는무척절박해보였다.새해들어가급적바깥에서의만남을자제하고있었지만그날은아무래도단호하게거절할수가없었다.대신사무실근처의노가리집에서호프몇잔을나누기로했다.
친구는십여년전공직에서정년퇴임했다.
고향에서중,고교를함께나왔지만학창시절엔별로교류가없었다.그러다가십수년전재경동창회에서만난이후더러친구들과어울려대폿잔을나누었고,오다가다연락을해와서가끔씩얼굴을보곤했었다.
친구얘기로는아파트도한채있고,재테크에능한아내덕분에월세받는재래시장가게도있다고했다.
게다가연금까지받고있지만이삼년쉬다가재취업을했다.대학동창이하는제조회사에서관리직을맡고있다며한숨쉬는친구에게우리는잘됐다며격려해주기도했다.그게벌써칠팔년전이었다.
그후친구는만날때마다올해만하고집어치우겠다며다짐을했지만그건언제나공염불에그쳤다.
친구의얼굴은잔뜩일그러져있었다.
자리에앉기바쁘게호프를시키더니물마시듯석잔을거푸넘겼다.시간도넉넉하니천천히마시라는말에친구는버럭결기를돋우었다.
봐라,친구야.속에서열불이나는데안마시고우찌참노.
와,만날때마다때리치운다는그직장,안죽도몬치았나.
어이,직장,직장해샀치마라.징글맞다.
친구는갓구운노가리를쭉찢어한입베어물더니사연을털어놓았다.
아요,내말함들어봐라.니알다시피내가공무원생활삼십년넘게함서노후대책은착실하게해놨다아이가.물론마누라가그런쪽에빠꼼이가돼갖고잘챙긴덕분이지만서도그만하모죽을때까지크게돈걱정안해도살도록했다말이다.그란데니알다시피내가한이년집에서쉬다가대학친구회사에나갔다아이가.그기벌써햇수로한팔년정도되는가베.이사람아,말이친구지직장에들어가모친구도상사가되능기라.전에는너네들이하다가한순간에이래라,저래라지시받는부하가됐싱께내맘이우떻겄노.그래도공직에있을때는부하들이많아서지시만하다가꺼꾸로뒤바끼봐라,오장육부가팍디비진다쿵께.
내가염장을질렀다.
에레이,반피자슥아이가.연금도받고월세받는가게도있다꼬맨날자랑질할때는운제고인자와서그런넋두리나까고있노,머슴아새끼가.
말말아라,친구야.그랑께내가속이디비진다아이가.
그라모니마누라한테그만두겄다고말도몬하나.
참,이런마가속편한소리하고있네.정년퇴직하고이년인가집에서놀때도삼시세끼밥채리주기실타꼬타박하고,집안에서얼굴마주치기실타캐서할수없이직장을구한긴데내가고만두모우리마누라가멀쿠겄노.글안해도슬쩍작년까지만하고그만두겄다꼬말을꺼냈다가밤새도록끌키가꼬죽다가살아났다쿵께,말말아라.내인생이와요모양인지한심하다아이가.자,술이나묵자.
우리는죄없는노가리를북북찢어질겅질겅씹으며호프를벌컥벌컥입안으로넘겼다.말없이술잔을기울이던친구가한마디했다.
어이,친구야.나이칠십이넘도록처자슥뒷바라지만하고산께도대체내인생은오데갔노.내가문서없는종놈도아이고.내팔자가와이렇노.
그랑께,안글쿠나.마누라는전생에원수라꼬.그리생각하고술이나묵으라.
그러자친구가정색을하고말했다.
내고향이지리산자락아이가.정년퇴직하모그산밑에가서오두막이나지어놓고등산이나함서편안하이살라캤는데,그작은꿈도이루기가이리도힘들다말이다.
우리는나즈막히교가를불렀다.
지리산높이솟아우리의기상,흐르는남강물은맑고푸르다.
역사깊은진양성굽어보며는,사나이젊은힘이솟아오른다.
………………..
둘은권커니잣커니을지로의밤거리를내다보며잔을기울였다.
어느새둘의눈가는촉촉히젖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