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띄우는 편지

딸아!해마다오월이면네게가슴속의응어리졌던얘기들을꺼내놓아야될것같아오늘또글을띄운다.

어제어린이날이라고네엄마와함께김포엘갔었지.엄마가작년연말다리를다친후거의반년만이었다.

네엄마는그래도차를갖고가자고했지만내가불안해서,혹은완치되지않은다리로운전하는게마음아파서그냥M버스타고가자고했다.

네엄마성화에못이겨수박까지두덩이나사들고낑낑대며너네집에갔을때,문앞에마중나온네얼굴을보고무척이나가슴이아팠다.네가다이어트한다고애쓴다는얘긴들었지만반쪽이된얼굴을보고네엄마얼굴도순간이지러지는걸봤으니까말이다.

돌아오는버스속에서네엄마는네가애를둘씩이나키우면서다이어트하는걸못내안타까워했다.

그렇지만네가작정하고한다니곁에서지켜볼수밖에.바램이있다면천천히여유있게해주길바랄뿐이다.

그렇찮아도너희교회목사님이어린애들안수를오늘수요예배후에해준다며네가애들데리고서울온다기에차라리안왔으면했었다.그런데네가오기로했다니그래,잘결정했다.

참좋은네두딸들,잘키워서사회에유익한삶을살도록애비도기도할께.

며칠후면네가생일을맞게되지.1978년생이니까벌써서른여덟이되는구나.

그래도아직애비가슴에는네가잘웃고또잘울던어린애로밖에기억이남아있지않네.그렇지,유독못난애비얼굴을제일많이닮았고식성도비슷했었지.특히나생선회를제일좋아하는것까지.

네둘째딸이꼭애비를닮았다고종종말했었지.그래,그애도커면외할애비처럼생선회도좋아하려나.

이처럼우스개소릴하지만애비는아직도네게진빚이많아.

<서대문구안산등산로에서>

딸아,그날이정확하게1978년5월15일이었지.

그날아침출산의기미를보이며배를움켜쥐는네엄마와외할머니를적선동산부인과까지데려다주고애비는알량한출장을핑계대며강원도정선으로떠났단다.

물론몇주전부터계획된출장이어서어쩔수없었다고하더래도제대로된애비같으면그쪽에양해를구하고사나흘연기할수도있었단다.

그렇지만애비는무엇에쫓기기라도한듯훌쩍그자리를피해버리고말았지.

이일은비단네게만그런것도아니란다.

1973년1월24일네오빠가이세상에온날도그랬단다.그날도회사에서숙직을했던나는다급한네이모의전화를받고상평동까지달려갔었지.배를부둥켜안은네엄마와이모를일신산부인과에데려다놓고그냥도망을갔으니까.

뒤늦게안신문사편집국장이나더러빨리병원에가라고했지만계속밍그적거리기만했었단다.

그러다가네이모전화를받고서야네오빠가왔단소식을들었지.

딸아,그래.이처럼애비는모질고독한사람이었단다.

그렇지만내게도할말은있지.애비고향이보수적인지역이어서어릴때부터그런걸보고자랐었다.

남자가부엌에들어가면안되고,부모보는앞에서제자식안고얼렸다간야단나는그런풍속속에서자랐으니말이다.그러다보니애비가자식출산한다고산부인과따라간다는건큰일날소리였지.

그러니네오빠때도그랬고네가이세상에온날도도망갈수밖에없었단다.

물론지금생각하면캐캐묵은구습舊習을내세운변명에불과한소리지만…

그날정선에서일을마치고원주에서만난그곳직원과함께여관에서서울로전화를했었다.

그때만해도정선에서서울까지전화통화하기가쉽지않았었지.간신히병원과연락이되어네가태어난걸알았단다.

통화를엿들은직원이다음날바로올라가라고채근해서나머지일정을취소하고할수없이첫기차를탔다.

그길로서울에와서널만난거였지.

그래,딸아.가슴속에남겨두었던말들을쏟아내긴했다만그래도앙금은남은것같다.

그때졌던빚들은앞으로계속갚아나갈께.이쪼잔했던애비를용서해라.

물론네가아직은이글을볼수없겠지만언젠가는보게될걸로생각한다.

네가착한김서방하고두딸이랑알콩달콩잘살도록애비는기도할께.

이밤도행복하고평안한밤이되기바라며,애비가.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