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추억나들이 (14)

다음날오전,신문사로출근한영호에게윤주로부터전화가왔다.

서선생님,하진경샘님전화번호를알았십니더.

수고하셨네요,정선생님.

그런데예,지가번호는가리켜디리는데예,지가알으켜디맀단말씀은하지마이소.

아니,무슨사정이라도…

사정이아이고예,아물캐도남의전화번호를함부로알아냈다쿠모안좋을거아입니꺼.

아,잘알았습니다.절대로비밀지키지요.감사합니다.

전화를끊은후영호는잠시생각에잠겼다.연락처는알았지만전화를넣는게어떨지곰곰히생각했다.

햇수로40년을넘긴옛날일로생뚱맞게전화를한다면그녀는어떤반응을보일까.거리낌없이자연스럽게받아준다면좋겠지만감정의앙금이여태껏남아있기라도한다면낭패를당할것임에틀림없다.

생각을정리하기라도하듯창가로다가가창문을활짝열었다.시원한바람이밀려와헝클어진머릿속을차분히다독여주는듯했다.영호는가슴깊이공기를들이마셨다.

하진경.영호에게그이름은이젠오래된앨범속의빛바랜사진만큼이나낯설었다.그러나젊은날의그시절에는매일아침을깨워주는자명종소리처럼친숙한이름이기도했다.영호가진경을처음만난것은진주인근면단위에소재한작은국민학교에서였다.

1970년대중반의4월,대학재학중군대에갔던영호는제대후고향에서잠시쉬고있었다.봄학기등록을놓치고가을학기를준비하던그에게뜻밖의요청이들어왔다.이웃에사는초등학교여교사가출산으로휴가를냈는데학교에서휴가기간동안대리근무자를세우라고했다는것이다.적당한사람을찾던여교사는영호가쉬고있다는것을알았고어머니를통해3개월만근무해달라고부탁했다.

몇달동안의무료함을어떻게보낼까하고고심했던영호에게는반가운제안이었다.아이들과즐거운시간을보낸다는것도반가왔고두둑한용돈까지챙길수있다니가슴이설레기까지했다.

벚꽃이화사하게핀4월중순,시외버스를타고30여분을달려간찾아간국민학교는각학년이한학급의작은학교였다.교사도교장을포함해서일곱명으로교감도2학년담임을하고있었다.첫날교무실에들어갔을때남자넷에여자둘이영호를맞아주었다.남자선생들은나이가4,50대의중늙은이들이었고여선생둘중40대가1학년담임,4학년담임인20대초반의앳된처녀가하진경이었다.

40년을넘긴지금까지도그첫날의일을영호는기억하고있다.그날수업을마치고퇴근준비를하고있는영호에게교감이다가와저녁식사를함께하자고했다.교감과같이간식당에는교장을제외한선생들이기다리고있었다.

시골의식당들이그랬듯이후줄그레한식탁이며등받이도없는긴나무의자였지만음식맛은제법이었다.제육볶음과몇가지의반찬이전부였지만음식들은하나같이맛깔스러웠다.게다가동네양조장에서만들었다는막걸리는입에짝짝붙었다.평소술을마시지않았던영호였지만그날은권하는대로받아마셨다.

가마이본께서선생은안죽대학생이라쿠더만술도잘마시네.

교감은영호가잔을비우기만하면득달같이잔을채웠다.이런저런세상이야기들로시작한술자리는오후8시가지나서야끝이났고진주가는마지막버스를가까스로탈수가있었다.주는대로받아마셨던술로비몽사몽을헤맸던영호가누군가의목소리에눈을떴다.

버스는이미종점에와있었고차안에는아무도없었다.겨우고개를들어쳐다본영호의눈에진경의얼굴이다가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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