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길거리를지나가다보면화분이나담장옆작은꽃밭에서나리꽃을종종만난다.
꽃잎을활짝열고방긋웃는듯한주황빛의자태가오래전헤어졌던여자친구라도만난양반갑다.그렇게화려하지도않고그렇다고고즈넉하지도않은나리꽃.그발랄함을보노라면코흘리개시절옆자리에앉았던여자짝꿍이생각나는것은나만의여린감성탓일까.
어린시절살았던집마당에는제법큰꽃밭이있었다.
무척이나꽃을좋아했던어머님은어디서모종을구했는지가지가지꽃들을알뜰히도심었다.봉숭화며분꽃,맨드라미와다알리아,국화꽃까지제법구색을갖추었다.꽃밭뒷편엔키가큰노란꽃망울의키다리꽃도있었고술병을가지런히꺼꾸로묻은꽃밭경계에는채송화도앙징맞게심었다.
그때,그꽃밭에나리꽃이있었는지는기억에없다.그러나그많은꽃들에대한감흥은그저그렇지만어디서보았는지도알수없는나리꽃만이유독기억에선명하다.아마도그꽃이주는주황의산뜻함이심어준인상이리라.
아니면죽은깨처럼꽃잎에더덕더덕붙어있는그고동색점때문인지도모르겠다.
1980년을전후하여모협동조합중앙회에서근무할때강원도원주엘자주갔었다.그곳엔대조적인대형조합두곳이있었기때문이었다.당시홍보계통부서에서근무했던나는그조합들을중앙경제지에큼지막하게소개시켰고조직의홍보에도큰기여를했었다.
그곳에서일이끝나면임직원몇사람과어울려술자리를가졌는데변두리지역인금대리를자주찾았다.금대리는제천가는길목의제법가파른언덕못미처있었다.요즘은중앙고속도로가뚫려제천쪽으로쉽게달릴수있지만당시만해도꼬불꼬불한국도여서반드시금대리를거쳐신림쪽을경유토록되어있었다.
금대리에는민물고기로회나탕을끓여주는제법알아주는음식점이있었다.
그음식점에서건너다보면높다란시멘트기둥들위에철길이있었다.원주에서제천으로가는중앙선철도라고했다.
그철도가70년대초태풍이왔을때붕괴된적이있었다고그곳사람들은설명해주곤했었다.
얼마후처음으로그철길을지나는기차를탔다.정선으로가기위해서였다.지금도기억나는건그기차를타고가다가증산이란간이역에서정선가는기차로바꿔타야만했다.
그기차를타고강원도심산유곡을굽이굽이달렸다.그때가7월이었다.
창밖으로보이는울창한삼림森林과열린창문으로밀려오는해맑은공기는가슴속의찌들었던때를씻어주기라도하듯신선했다.마치선경仙景을달리기라도하는듯.
한참을달리다가기차는이름모르는간이역에멈춰섰다.온통사방이숲으로둘러싸인고지대의역이었다.
기차가멈춰서는탓에무심코창밖을내다본내눈에상큼한미소를띤옛소녀가다가왔다.
주황색꽃잎의나리꽃이었다.
그때내눈엔분명히상큼한미소를얼굴가득머금은옛날그추억속의소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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