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추억나들이 (38)
그러자진경이코웃음을쳤다.
선생님,그라모둘이서밤샘해갖고뭐할긴데예.전에메이로또사람망신시키갖고울매안남은지인생까지말아묵을라꼬작심했심니꺼.아이쿠,지가말이좀심했지예.아물캐도술이좀쳈는가베.
영호가얼른자리를옮겨진경의옆으로갔다.그러고는한손으로어깨를잡았다.
하선생님,지가절대로전에메이로선생님골탕믹이는거아입니더.제진심이라예.
그러자진경이영호의손을뿌리쳤다.진경에게서알코올냄새가진하게풍겼다.
선생님,놓으이소,고마.가마이있는사람또쑤시놓치말고예.
아입니더,하선생님.지는엣날죄지은사람아입니꺼.
죄는무신죄예?서선생님은죄지은기하나도없십니더.지가좋아서한기라예.
아입니더.지가말은안해도늘맘한구석에하선생님한테미안한생각갖고있었어예.지아내가살아있을때는그런생각도지는죄짓는거로생각해갖고선생님한테는연락도한번몬한기라예.다지불찰입니더.
두사람은다시잔을채웠다.영호가잔을들었다.
자,오늘이야기할거실컸했신께두사람다십년묵었던체증이내리가는기라예.한잔하입시더.
여름비치고는제법오래도록굵게내렸다.
두사람이인근영호의아파트에도착한건자정을지나서였다.
영호는에어컨을켰고진경은욕실로들어갔다.거실창문너머로남강에뿌려지는빗줄기를영호는보았다.
주방에서간단한음료를준비하고오디오에씨디를올렸다.슈베르트의’겨울나그네’였다.곧이어낭랑한피아노반주에맞추어바리톤휘셔-디스카우가노래하는’밤인사(GuteNacht)’가흘러나왔다.
언제들어도비로드와도같은기름진음성이었다.
영호는두다리를쭉뻗었다.이게얼마만인가.아내가아닌여인과한공간에있는것말이다.그렇다고세상을떠난아내를가볍게보거나함부로생각한건절대아니었다.단지,오랫동안갚지못했던빚을갚는다는마음일까.그것도아니었다.세상살면서이루지못했던일하나를한다는생각뿐이었다.
뭔,난데없이겨울나그네가나오고있네예.
욕실에서나온진경이큰소리를질렀다.소리는컸지만짜증난목소리는아니었다.
하선생님,시원한음료수나한잔하이소.
영호의앞에얌전히앉은진경은예순의나이에걸맞지않게소녀처럼볼이빨갰다.타월로아무렇게나문지른머리카락은풋풋함을풍겨왔고영호의마음을설레게했다.그린듯앉아있는자태는옛모습그대로였다.
마침’겨울나그네’15곡’까마귀’가흘러나왔다.
하선생님,지는저곡만들으모겨울나그네가바로슈베르트란생각이든다아입니꺼.물론베르너뮐러란사람이시는썼지마는그기바로슈베르트지이야기라쿵께네예.
맞십니더.지도이음악을들을때마다슈베르트의길지않은서른한살의그생애가참안타깝단말입니더.이음악도죽기일년전에만든거아입니꺼.그때는슈베르트도자신의죽음을알아채린거같에예.
그렇지예.이곡’까마귀’를슈베르트는죽음의그림자로생각한거라예.그랑께끝까지내뒤로따라오라꼬울먹임서부르짖는다아임니꺼.
말을마친영호가갑자기호주머니에서사진한장을꺼냈다.죽은그의아내사진이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