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평에서의 겨울 한나절

모처럼한갓진토요일오전이다.
아내는운동하러가고뒤늦게아침식사를끝낸후설거지를마치고다시식탁앞에앉았다.시간이나면가끔은집에서커피한잔을마신다.평소엔봉지커피를즐기지만,이런날은쌉스름한게입맛에맞다.
비니스트커피를마셨다.이것역시봉지커피인데도진한커피향기가코끝을짜릿하게간지럽힌다.
마침오디오에선구노의’아베마리아’가흘러나온다.소프라노의노래가오늘따라마음을촉촉히적셔준다.
고즈넉한분위기탓이었을까.
정확히말하면구노의’아베마리아’는구노와바흐의합작이다.그래서구노-바흐의’아베마리아’라고해야옳을것이다.멜로디는구노의작품이지만반주는바흐의’평균율클라비아곡’중제1번C장조를빌려왔으니까.
이곡을들으면중학교시절이떠오른다.그때음악시간에선생님이큰유성기를갖고와서SP음반으로이곡’아베마리아’와’라파로마’를들려주셨다.테너베냐미노질리의감칠맛나는노래였다.약간은코맹맹이소리로.
‘아베마리아’가끝나니드비쉬의’월광’이흘러나온다.이음악을들으니문득강원도장평에서의겨울한나절이떠올랐다.지금생각하면참으로낯뜨거웠던일이었다.
1988년’서울올림픽’이열렸던그해11월로기억된다.
직장생활을접고세상속으로뛰어들었다가일년도못돼참담한손익계산서를거머졌다.실의에빠져있는내게지인이손길을내밀었다.강원도땅을헤집고다니는일이었다.
월요일아침집을나서서토요일저녁에돌아오는강행군의연속이었다.주로시외버스를타고다니면서일을봤다.
대개동서울터미널에서버스를탔다.원주를시발점으로해서강릉이나속초,평창,영월등지를주로다녔다.
그시절원주에서강릉이나영월,정선쪽으로갈라치면반드시장평을경유해야만했다.
영동고속도로를달리다가둔내를지나한참을더달리면오른편으로장평이나왔다.
고속도로건너는메밀꽃으로유명한봉평이있고,장평에서평창쪽으로가면이내대화가나왔다.거기서더가면평창읍이있고영월과정선방향이되었다.
대화장터에가면맛좋은막국수집도있고,평창쪽으로가다보면송어횟집들이많이나왔다.송어회를콩고물섞은채소에초고추장을풀고비비면그맛은기가막혔다.
너무서론이길었다.이제장평에서의그일을털어놔야겠다.
88년11월중순께,그날도오전에대화에서일을보고그곳사람들과점심을먹었다.날씨도꽤쌀쌀했었는데반주로소주를마셨다.누군가날씨탓을대며자꾸권한탓에제법알딸딸한상태가되었다.
저녁무렵원주에서약속이있어오후두시가넘어서야자리에서일어섰다.버스를타고장평에서내려원주로가는버스로갈아타야만했다.
추운날씨에썰렁한시골대합실에서버스를기다리다가일어섰다.버스시간까지따뜻한식당에서기다리는게나을것같아서였다.인근식당으로들어갔다.
식당에서그냥있을수가없지.간단한안주와소주한병을시켰다.혼자서마시기에뭣해서주위를둘러보니늙수구레한영감이무료하게앉아있었다.동네사람인듯했다.
그노인네를불러주거니받거니세상돌아가는이야기까지지껄이다보니오후네시가훌쩍넘어버렸다.부랴부랴일어나택시를탔다.약속시간을맞추려니택시를탈수밖에없었다.

요즘도가끔씩영동고속도로를타고가다장평을지날때면그때일이떠올라혼자미소를짓곤한다.
아마도씁스레한미소일것이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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