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던 날이었다. 사무실에 나갔다가 점심 때 노인 두 분을 만나 막걸리까지 거나하게 곁들였다. 지하철을 타고 신촌에서 내려 마트에서 장을 봤다. 내가 먹는 건 직접 고르는 편이어서 필요할 때마다 장을 본다. 마침 연어회가 눈에 띄어 한 팩을 샀다.
집에 와서 창밖으로 비내리는 모습을 보며 바흐의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들었다. 거장 예후디 메누힌의 연주로. 이런 분위기에 석류주 몇 잔은 흥을 돋우어준다. 유진오 선생은 그의 작품 ‘창랑정기’에서 도입부를 이렇게 썼다.
<‘해만 저물면 바닷물처럼 짭조름히 향수(鄕愁)가 저려 든다’고 시인 C군은 노래하였지만 사실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란 짭짤하고도 달콤하며 아름답고도 안타까우며 기쁘고도 서러우며 제 몸 속에 있는 것이로되 정체를 잡을 수 없고 그러면서도 혹 우리가 무엇에 낙망하거나 실패하거나 해서 몸과 마음이 고달픈 때면은 그야말로 바닷물 같이 오장육부 속으로 저려 들어와 지나간 기억을 분홍의 한 빛깔로 물칠해 버리고 소년 시절을 보내던 시골집 소나무 우거진 뒷동산이며 한 글방에서 공부하고 겨울이면 같이 닭서리 해다 먹던 수남이, 복동이들이 그리워서 앉도 서도 못 하도록 우리의 몸을 달게 만드는 이상한 힘을 가진 감정이다….>
그래서일까. 유독 비오는 날이면 향수에 빠져든다. 그것도 한 잔했을 때면 그 상승효과는 참으로 컸다. 해서 울적한 심사에 이제 칠십 줄에 들었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고향을 찾아갈 수 있으랴 하는 자괴심에 빠진다. 그 생각의 결과는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 지하철 3호선을 타기위해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으로 변신한다. 간혹 마음이 급한 날은 택시를 타고 남부터미널까지 달리기도 하고.
그저께도 그랬다. 오후 5시 30분 발 버스에 오르고 나서야 아내에게 전화를 넣었다. 거두절미 하고 고향 갔다가 내일 일찍 돌아오겠다고 했다. 내 ‘향수병’을 아내도 아는지 순순이 잘 다녀오라고 했다.
오후 아홉 시께 고향 땅을 밟았다. 봉곡로터리에 내려 신안동 실비집 골목으로 갔다. 전 번 왔을 때 갔던 곳이다. 이날도 혼자였지만 주인장은 내색하지 않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향토 소주 ‘좋은데이’를 몇 병 주문했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이곳 실비집은 술값만 받고 안주는 무료다.
먼저 호래기회와 무침이 맛깔스럽게 나왔다. 호래기를 서울에선 꼴뚜기라고 불렀다. 살이 연하고 신선해서 소주 안주로는 그만이었다. 여기에 봄멸치찌개와 소금 슬슬뿌린 멸치구이까지.
고동(고둥)도 나왔다. 이걸 서울에선 다슬기라고 불렀지, 아마. 어린 시절 이 고동을 우리는 돌이나 망치로 꽁무니를 깨서 빨아 먹었다.
멍게와 해삼이 나왔지만 이때부터 휴대폰 촛점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알코올이 올랐다는 증거다.
이후에도 몇 가지 안주가 더 나왔지만 찍지를 못 했다. 다만 즐거웠던 것은, 주인장이 나처럼 혼자와서 술을 마시고 있는 손님을 소개해줘서 같이 얘기를 나누며 즐겼다는 것이다. 그분은 맥주를 마셔서 나와 주종酒種이 달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나와 같은 동갑내기였다. 그도 서울에서 삼십 여년 객지 생활하다가 진주에 터를 잡은 남해 출신이었다. 나중에 초등학교 30년 후배까지 합석하게 되어 오랜만에 옛날 이야기를 쏟아놓으며 멋진 고향의 밤을 보냈다.
자정 무렵 이 집에서 나와 역전驛前 포장마차에서 회포를 풀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 중앙시장으로 나갔다. 지난 4월 나들이 때는 돼지국밥을 먹었기에 그날은 다른 걸 먹기로 했다. 얼핏 보니 ‘아구탕’이란 글짜가 눈에 들어왔다. 오래 전 자주 먹었던 먹거리였다. 팥밥과 함께 아구탕이 나왔다. 지난 밤의 과음으로 고단한 속을 달래주기에 그만이었다. 여기 곁들여 다시 소주 몇 잔.
반찬 중에 ‘속대기무침’이 눈길을 끌었다. ‘속대기’는 김처럼 생긴 해조류다. 이걸 간장과 참기름으로 간을 하고 쪽파, 깨소금을 뿌리면 밥반찬으로 제격이었다. 어린 시절 식탁에 자주 올랐던 음식이다. 한 입 넣으니 어머님의 손맛이 느껴졌다.
이날의 마침표는 비빔밥으로 장식했다. 시장 인근에서 빌딩을 관리하고 있는 죽마고우를 만났다. 늙으막에 빌딩을 장만해서 관리하며 소일하고 있는 친구다.
친구와 같이 비빔밥집을 찾았다. 이런저런 신변잡사를 주고 받으며 식사를 나누었다. 술을 잘 마시지 않는 친구는 내게 술을 줄이라며 잔소릴 늘어놓았다. 이것도 친구의 우정이겠지.
식사 후 친구와 헤어져 시장에서 가죽나물과 방아잎, 표고버섯 등을 샀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 왈, 고향나들이 한답시고 비자금깨나 축 좀 났겠수다. 이에 한마디로 입을 막았다. 그래, 축 좀 났기로서니 덕분에 고향 공기 마셨으니 보약 한 첩 먹은 셈치지, 뭘 그래.
그래, 말이지만 1박2일 고향 가서 남강은 고사하고 촉석루 구경조차 않고 왔으니 내 고향나들이는 늘 아쉬움만 남기고 온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