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구 몇이 만나 점심을 함께했다.
괜찮은 식당에서 생선회를 주문하고 빨간딱지 소주까지 몇 병 깠다. 몇 년 전 퇴직하여 연금을 받으며 그런대로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있는 터라 건강이나 소일거리가 화제에 올랐다. 나름대로 자신이 알고 있는 지혜들을 나누며 가끔은 부부가 여행길에 나서는 것도 괜찮다며, 나이를 생각해서 외국보다는 국내 여행이 좋다는 결론까지 내렸다.
그러자 연거푸 술잔을 기울이던 C가 버럭 소릴 질렀다.
뭐라꼬? 마누라 데꼬 여행이나 댕김서 노후 생활을 질기라꼬? 그래, 말은 좋타. 그란데 그것도 복 있는 사람들이나 할 일이제, 내는 그런 복도 없단 말이다.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는 친구들 면면을 죽 훑어본 C가 다시 술 한 잔을 죽 들이켰다. 그러곤 말을 이었다.
봐라, 친구들아. 매칠 전에 참말로 추접은 일을 당한기라. 그것도 마누라한테서 말이다. 너거 말마따나 내도 공직에 있실 때 이런저런 일로 마누라 속을 좀 썩힜다 아이가. 그래서 가리늦게나마 잘 해줄라꼬 애를 쓴단 말이다. 울매 전에 마누라하고 자슥들 일로 좀 다탔제. 이틀인가 서로 말도 안 하고 지냈다 아이가. 그란데 난데 없이 마누라가 기분전환이나 하자꼬 여행을 가자쿠는기라. 전에도 관광회사서 하는 단체여행에 몇 분 가봤거든. 그래서 남해안 오데로 갔다오는 1박2일 여행을 떠난기라. 그란데 떠나는 날 초따드미부터 일이 터졌삤다 말이다.
와? 무신 일이 터짔는데? 친구 하나가 성급하게 물었다.
그래, 들어봐라. 첫 날 새복에 관광버스 탈라꼬 나갔는데 해필 아는 여자를 만낸기라. 내가 전에 근무했던 직장에서 청소했던 아줌만데 나이가 한 60대 중반쭘 됐제. 그 여자도 친구 하나하고 여행에 나선기라. 그 아줌마가 낼로 알아보고 인사를 하는데 모린 체 할 수 있나. 그래, 건성으로 안부를 물었디만 그때부터 마누라 인상이 샐쪽해진기라. 아차 싶었지만 늦은기라. 그 여자도 눈치챘는지 우리보다 한참 떨어진 맨 뒷자리로 가더라꼬. 내도 마누라 맘 안 상하거로 그 여자하고 안 마주칠라꼬 피해 댕기고. 그라다 보이 여행이고 뭣이고 정신이 없었다쿵께.
우리는 숙연해져서 아뭇소리 없이 술잔만 기울였다.
그란데 갤국은 함 터진기라. 그 담날 점심 땐가 자유식사가 있어서 식당에 갔다가 그 여자하고 마주친기라. 그랑께 다짜고짜 마누라가 그 여자한테 한마디했단 말이다. 와 우리 남팬한테 말 걸었냐꼬. 그 여자가 그래도 내 체면을 봤는지 좋케 사과로 해서 넘어갔는데, 도대체 이런 우사가 오데 있노. 사람 환장 할 일 아이가.
그러자 한 친구가 입을 열었다. 야, 그거 참 문제네.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나? 하모. 내가 챙피해서 말을 몬하겄다. 가끔 산에도 같이 댕기는데 마주치는 여자들이 내한테 인사만 해도 저 여자가 누구냐꼬 추궁을 한단 말이다.
그거 곤란한데. 우리는 한마디씩 하면서도 차마 ‘의붓증’이란 말을 입밖에 꺼내진 못 했다. 그 친구의 초라한 꼴을 보지 않기 위해서. 그러자 한 친구가 푸념처럼 한마디했다.
아, 다정多情도 병이런가. 그 소리에 우리는 잠시 허탈한 웃음을 나누었다.
김수남
2016년 7월 16일 at 12:03 오후
네,정말 구수한 고향 사투리에 웃음이 절로 피어납니다.그런데 그 친구 분 말씀 들으니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부인 분이 많이 예민하시긴 하신편이네요.서로 반갑게 인사 나누실 수도 있으실텐데요.아마 선생님의 친구 분이 아내에게 그런 마음을 갖게하신 원인도 계실 수 있고요. 앞으로 마음 편하게 즐겁게 함께 여행 다니신 말씀 올리 실 수 있으시길 기대합니다.
바위
2016년 7월 21일 at 12:22 오후
좋은 말씀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