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간 오전 한 시 반, 창밖을 내다보니 가는 비가 온 듯하다.
엊저녁 오후 아홉 시부터 잤는데, 워낙 날씨가 덥다보니 두세 번 잠시 깼다가 아주 깨버렸다. 그래도 밤이 깊으니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솔솔불어온다. 거실로 나왔다. 티비를 볼까하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래, 잠이 안 오는 밤엔 특효약이 있지. 초저녁 먹다가 남긴 안줏감들을 챙겼다. 어떤 친구는 잠을 자기위해 수면제를 먹는다지만, 아서라 그런 약물보다는 석류주 몇 잔하고 다시 푹 자는 게 좋을 터이다.
어제 아침, 아내는 여고 동창들과 1박2일 여행을 떠났다. 지난 45년 간을 함께살면서 아내의 애간장을 많이도 녹였으니 앞으론 편하게 살라고 늘상 말한다. 아직은 내가 밥도 해먹고 청소도 할 수 있으니 그래도 건강할 때 친구들과 재미있게 지내라며 권하기도 한다. 하여 요즘은 더러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는 편이다.
유투브로 셸리 맥로린의 피아노음악을 올려놓고 식탁에 앉았다. 엊저녁에 데워놓았던 우럭찜이 좀 딱딱해졌다. 그래도 아직은 웬만한 뼈까지 씹어먹을 만하다. 일흔 나이에 의치도 아니고 내 이빨로 먹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가.
생각해보면 모든 게 감사할 따름이다. 자식들 결혼해서 잘 살고 고2 손자와 알토란 같은 손녀, 외손녀가 셋이니 얼마나 감사한가.
지난 토요일 저녁, 사위 생일잔치를 김포에서 했다. 일곱 살배기 외손녀가 던진 한마디에 모두들 배꼽을 잡고 웃었다. 외손녀 왈, 아빠 생일잔치의 ‘하이라이트’는 촛불점화에 있지. 어린 애가 ‘하이라이트’에다가 ‘촛불점화’란 말을 어디서 배웠을까. 내 어린 시절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말들이다.
해서, 내게 남은 건 ‘감사’밖에 없나보다. 날씨를 보니 오늘 비가 내려 산행도 어려울 것 같다. 그 핑계로 몇 잔 더 하고 잠을 청하는 수밖에. 이 나이에 몇 잔 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할 일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