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8월 7일)가 아내의 생일이었다. 아내와 나는 동갑내기지만 내가 음력 2월이고 아내는 음력 7월이다. 해서 아내의 생일은 불볕더위 속에 치르기 마련이었다. 아들과 딸네 가족이 김포 살다보니 편한대로 서울과 김포를 오가며 생일잔치를 마련하고 있다. 마침 올해는 일요일이기도 해서 서울에 있는 교회에 다니는 자식들 생각해서 오후에 내가 살고 있는 연희동 괜찮은 중국요릿집에서 생일축하 모임을 갖기로 했다.
그날, 일요일 아침 티비를 보고 있는 내게 아내가 그릇 하나를 들고 왔다. 웬 그릇이냐고 물었더니 생일선물로 받은 그릇이라고 했다. 누가 준 선물인데 하고 물었던 내게 의외의 대답이 날아들었다. 이건 내가 내게 주는 생일 선물이거든. 순간 내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고, 가슴이 울컥했다. 글쎄, 가뭄에 콩나듯 생일케잌을 사준 적은 있었지만 여태까지 제대로 된 선물 하나 해주지 못 한 나였다.
그보다 더 가슴 아픈 일도 있다. 재작년, 그러니까 14년 12월 하순에 아내가 빙판에 미끄러져 다리를 다친 적이 있었다. 서너 달 동안 치료하면서 승용차를 운전하지 못 했다. 그걸 빌미로 내가 주도하고 자식들까지 합세해서 차를 없애버렸다. 물론 아내는 엄청 반대했지만. 차를 처분한 후 달고 다녔던 마스콧트를 아직도 아내는 간직하고 있다. 그것도 거실에서 눈에 잘 띄는 곳에 걸어 두고. 그걸 볼 때마다 가슴 아팠는데 ‘내가 내게 선물한다’는 소릴 들으니 가슴팍으로 큰 바윗돌이 굴러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아내의 생일잔치는 연희동 먹자거리의 중국요릿집 ‘진보眞寶’에서 가졌다. 내가 볼 땐 고풍스런 중국 집인데, 아내와 딸은 우리가 중국 여순에 왔느냐며 언잖은 내색이다. 하지만 그날은 고2 손자까지 참석해서 우리가족 열 사람이 유산슬과 깐풍기, 삼선짬뽕과 잡채밥, 짜장면까지 푸짐하게 먹었다. 우리가족 가운데 가장 어린 다섯 살배기 외손녀는 짜장면을 먹으며 내내 싱글벙글이었다.
음식을 먹고 난 후 아들의 얘기에 아내의 얼굴이 활짝 밝아졌다. 음식점에 오기 전 집에서 가진 축하케잌 짜를 때, 외손녀 둘이 큰 소리로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지만 그저그랬던 아내의 얼굴이 피어났다. 아들은 지난 학기에도 장학금을 받았다고 말했다. 뒤늦은 40대 중반에 신촌 모 대학교의 대학원에 진학한 아들은 지난 학기까지 3학기내내 올 A+를 받아 장학금을 받았다. 하지만 장학금은 이번이 끝이란다. 세 번 이상은 안 주기에. 물론 아들의 등록금은 우리가 주고 있다. 아들은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아들이 고교 다닐 때 우리 사정이 어려워 과외를 제대로 시키지 못 했기에 등록금은 우리가 내야한다는 아내의 말 한 마디에 나는 입도 뻥긋 못 하고 말았다. 어쨌거나 아들 땜에 아내는 함박웃음을 웃었다.
그래도 내겐 가슴 서먹한 아내의 생일이었다.
데레사
2016년 8월 9일 at 7:49 오전
지금이라도 현금을 드리세요.
원하는것 있으면 사라고요.
저도 사모님 생일 축하드립니다.
바위
2016년 8월 11일 at 5:27 오후
데레사님, 답글이 좀 늦었습니다.
요즘 좀 바빴거든요.ㅎㅎ
아마도 제법 큰 돈을 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오.
김진우
2016년 8월 10일 at 11:34 오전
바위님, 안녕 하세요?
부인께서 그 정도의 위트가 있는 분이시니
가정의 분위기가 늘 최상으로 유지하셨을 것으로 믿습니다.
최고의 부인을 두셨습니다.
부인께 대신 생일 축하 인사를 여쭈어 주세요.
내외분 모두 늘 강건 하시기를 빕니다.
바위
2016년 8월 11일 at 5:28 오후
김진우 님, 고마우신 말씀 감사합니다.
무더위에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