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처럼 포근했던 화요일 오전, 여섯 명의 친구가 수색에 있는 디지털미디어시티(DMC) 역에서 만났다. 이날 봉산烽山을 산행하기 위해서였다. 대개 열 명의 친구들이 산행을 하는데 이날은 이런저런 이유로 빠져 여섯 명이 단출한 산행길에 올랐다.
역을 출발, 주택가를 지나 얕으막한 야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름 그대로 동네 야산이었다. 높은 깔딱고개도 없어 둘레길 걷기였다. 십여 분 만에 증산체육공원에 당도했다. 평지를 걷는 기분이어서 친구들은 두셋씩 짝을 지어 세상사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편안하게 걸었다.
봉산은 서울 은평구 구산동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과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조선시대 무악봉수로 이어지는 봉수대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산의 북쪽 1.5~2km 위치에 서오릉이 있고 은평구 쪽으로는 황금사찰로 유명한 수국사가 있다.
이 산은 봉령산鳳嶺山으로도 불리는데, 산의 정상에서 좌우로 뻗은 산줄기가 마치 봉황이 날개를 펴고 평화롭게 앉아있는 형상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 산의 높이는 207.8m로 증산체육공원에서 봉산공원까지가 2.77km, 봉산공원에서 서오릉로 구간이 2.07km이다. 그래서 봉산 둘레길은 4.84km인데 걸어서 2시간 20여 분 걸린다고 한다. 이곳 봉수대에서는 1919년 3.1운동 당시 동네 주민들이 모여 횃불을 밝히고 만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봉산공원으로 가는 정자에서 우리는 커피를 나누며 가져온 군것질거리로 간식을 즐겼다. 휴식 후 봉수대로 향했는데 여기서 사단이 벌어졌다. 뒤쳐져 따라오던 두 친구가 사라진 것이었다. 그중 한 친구는 집이 역촌동이어서 평소 봉산을 손바닥 뒤다보듯 환하게 꿰차고 있다며 자랑하던 친구였다. 네 명은 봉산공원에서 거의 50여 분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몇 차례의 통화 끝에 상봉할 수 있었다.
기다리다가 시간을 버린 탓에 우리는 봉수대 쪽이 아닌 다른 코스를 택했다. 그런데 이 코스가 만만하지 않았다. 좁은 임도를 몇 차례나 오르락내리락 거듭한 끝에 오후 두 시가 넘어서야 겨우 서오릉로로 들어섰다.
서오릉로는 서울시 은평구와 경기도 고양시를 경계하는 곳으로 이곳을 ‘벌고개’라고도 불렀다. ‘벌[蜂]고개’의 유래는 이러하다. 조선 7대 왕인 세조의 장남 덕종(추종왕)이 20세로 일찍 죽자 묏자리를 고르게 되었다. 지관이 정한 자리가 서오릉 터였다. 지관은 이 자리가 천하의 명당으로 이곳에 뫼를 쓰면 자손들이 왕위를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다만, 명당은 틀림없지만 이미 땅속에 벌들이 집을 만들어 놓아 이곳에 뫼를 쓰려면 그 댓가가 필요한데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이라고 했다.
지관이 인부들을 데리고 땅을 파기 전에 한양으로 떠나면서 반드시 한 시간 후에 공사를 시작하라고 명했다. 지관이 떠난 후 금방 검은 구름이 몰려와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았다. 인부들은 급한 김에 지관의 명대로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땅을 팠다. 그러자 땅속에서 벌떼들이 몰려나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시간, 지관이 벌고개를 오르고 있었는데 벌떼가 몰려와 지관을 공격했다. 결국 지관은 벌떼의 공격으로 죽고 말았다. 이에 사람들은 벌의 집 자리를 왕릉으로 잡은 지관이 벌들로부터 앙갚음을 받은 곳이라고 하여 ‘벌고개’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하산의 즐거움은 하산주下山酒에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서오릉 맛집거리에서 부대찌개 하는 곳 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외로 식당은 깨끗하고 정갈해서 우리의 기쁨은 더 컸다. 게다가 맛 또한 기대 이상이었다.
우리는 소주, 맥주, 막걸리를 시켜 취향대로 일 잔씩 나누었다. 여기에 고향 친구들끼리의 잡다한 농담들을 더하니 누구 말마따나 이게 바로 사람사는 맛이었다. 그것도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말이다.
이 술은 이 교수가 가져온 중국 술이다. 이름이 ‘노룡구老龍口’로 늙은 용의 입이란 뜻이다. 43도짜리로 독주가 아니어서 마시기에 편한 술이었다. 이것을 기분좋게 서너 잔 원샷했더니 돌아오는 길이 심히 알딸딸했다. ㅎㅎ
이날도 친구들과의 즐거운 봉산 나들이였다.
데레사
2017년 1월 18일 at 2:17 오후
부대찌게가 갑자기 땡깁니다.
우리동네도 소문난 집이 있는데 며칠내로 한번
가봐야 겠습니다. ㅎ
등산을 꾸준히 하시면 건강에도 아주 좋을겁니다.
건강 하십시요.
바위
2017년 1월 30일 at 1:32 오전
부대찌개는 먹지도 못했습니다.
술이 좀 취했지요.
감사합니다.
journeyman
2017년 1월 18일 at 5:32 오후
산에 오르는 것은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너머에 술이 있기 때문이라면서요.
등산 후 술이 빠지면 섭하지요. ^^
바위
2017년 1월 30일 at 1:31 오전
술이 최고지요.
감사합니다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