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0월 10일)는 고교동창 모임 ‘팔팔산우회’의 화요 산행일이다. 오전 10시 반, 지하철 3호선 경복궁 역 3번 출구에 친구들이 모였다. 캐나다에 갔던 재웅이와 다리가 아파 몇 주 쉬었던 종우, 허리가 아프다던 상제까지 모였다. 아, 베트남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던 회장 상덕이도 왔구나. 우리들 여섯은 경복궁 옆 버스정류장에서 구기동 행 버스를 탔다. 세검정초등학교 앞에 내리니 유럽여행에서 돌아온 계호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들 일곱 명은 ‘백사골계곡’이란 표지판이 붙은 주택가 골목길로 들어섰다. 잠시 걸어가니 도심 속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자연 생태계가 눈 앞에 펼쳐졌다. 요즘 흔한 둘레길에서 볼 수 있는 데크 길이나 조형물은 볼 수가 없고 자연 그대로의 흙길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옆의 상수리나무들도 조경의 흔적이 없고 길섶에 핀 야생초들마저 풋풋한 미소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백사실계곡은 북악산 아래의 계곡이다. 이 계곡에는 흰바위가 많아 ‘백석동천(白石洞天, 사적 제462호)이라고도 불린다. ‘백사실’이란 이름은 조선시대 이름난 정승 백사(白沙) 이항복의 별장 터가 있었기에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도심에서 5분 거리도 안 되는 이 계곡에는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도룡농의 서식지로도 유명하고 개구리, 버들치, 가재 등이 많다고 한다.
우리 일곱 친구는 신변잡담을 나누며 ‘능금나무길’로도 불리는 계곡 길을 쉬엄쉬엄 걸었다. 도중에 빗방울이 떨어져 약간은 난감했지만 비는 금새 그쳤다. 가다가 쉼터를 만나면 준비해온 커피와 떡, 과자를 나누며 옛 추억담에 젖기도 했다.
계곡 길이 끝나고 북악스카이웨이를 따라 창의문 쪽으로 내려오니 부암동 먹자골목이 나타났다. 우리는 길을 건너 ‘시인의 언덕’ 쪽으로 갔다. 윤동주문학관 앞을 지나 인왕산 둘레길로 내려왔다.
둘레길이 끝난 곳은 북촌이었다. 문화유적들과 카페, 음식점들이 줄지어 선 골목길을 거쳐 경복궁 역쪽으로 갔다. 하산주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찾은 식당의 이름은 ‘미주구리’였다. ‘미주구리’란 물가자미의 영덕 지역 사투리다. 유럽여행 턱이라며 계호 친구가 점심을 냈다. 갈치조림에 동태탕이었다. 여기에 맥주와 소주를 주문하고 종우 친구가 갖고온 솔잎효소를 섞었더니 잔 속에서 풍기는 솔잎 향기에 취할 수밖에 없었다.
캐나다를 다녀온 친구 재웅이가 단풍잎이 새겨진 야구 모자도 챙겨주었다.
식당 벽에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가 걸려 있었다. ‘총화전진(總和前進)’. 1979년 원단에 쓴 휘호다. 그 해 10월에 유명을 달리하셨으니 휘호를 보는 마음속에 감회가 깊다.
그나저나 집에와서 휴대폰의 만보계를 보니 이날 하루 걸은 횟수가 무려 1만6천5백여 보에 달했다. 엄청나게 걸었던 하루였다. 다음 주 화요일엔 하늘공원 억새풀축제를 기약하며 경복궁 역에서 헤어졌다. 친구들이여, 건강하게 산행 잘하며 즐겁게 삽시다.
데레사
2017년 10월 11일 at 6:50 오후
맞아요. 이제 즐겁게 사는일 외에 남은 일이 뭐가 있겠어요?
잘 하십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를 보니 만감이 교차하네요.
바위
2017년 10월 12일 at 10:48 오전
그나마 등산할 힘이라도 있으니 다행입니다.
박 대통령의 휘호를 보니 가슴이 찡~~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