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하산주는 중국 음식점에서 가졌다. 오전 열시 반에 시작한 산행이 예상보다 길어져 산 아래로 내려왔을 때는 오후 두 시가 가까와서였다. 평소 행동이 굼뜨고 어정거리는 탓에 친구들로부터 눈총께나 받아왔던 창호가 목멘 소릴 했다.
“아이쿠, 안죽 유월 초순인데 와이리 덥노? 땀게나 뺐더만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었네.”
그 말에 날렵하기로 이름난 경식이가 깐죽거리고 나섰다.
“야, 이 친구야. 니 뱃데지 본께 아침 묵은 것도 그대로 있구만. 그랑께 살 좀 빼라 안 쿠나.”
“자슥, 불난 집에 부채질 한다꼬 길가 강새이 모테 물고 나오드키 와 불거져 나오노. 입 좀 다물고 있거레이~ 사람 좀 살자.”
창호가 결기를 돋우자 산우회 회장 명길이가 나섰다.
“아이, 고마 좀 싸우지들 마라. 고등핵교 동창들끼리 갓신하모 싸와산게 참말로 넘새시럽다 아이가. 자, 자. 아물캐도 배가 고파서 절 산께 조 앞에 비이는 중국 집에 가서 빼갈이나 한 잔석 하자꼬.”
회장의 제안으로 그날 산행에 참가했던 여덟 명은 ‘북경장’이란 간판이 붙은 중국 음식점에 자리를 잡았다. 오후 두 시가 되어선 지 손님이 한 테이블밖에 없어 일행은 테이블 두 개에 나누어 앉았다. 창호는 일부러 맨 가장자리에 앉았다. 이를 본 경식이가 또 깐죽거리며 나섰다.
“어이, 창호야. 너거 고향 친구 한수가 요게 앉았는데 우째 멀리 떨어져 안노. 오랜만에 한수가 나왔는데 너거끼리 회포라도 풀어야 될 거 아이가. 이리 온나.”
창호는 아무 대꾸도 않고 베낭과 모자를 옆 의자에 내려 놓은 채 외면을 했다. 그러자 한수가 나섰다.
“경식아, 고마 돼따. 오늘은 니하고 한 잔하자.”
“와, 너거 둘이는 고등학교 댕길 때 같이 하숙도 하고 안 했나. 오랜만에 만났시모 반갑거로 한 잔해야 될 거 아이가.”
“고마 됐다쿵께 저리 샀는다. 자, 경식아. 이리 오이라.”
그러자 회장 명길이 배낭 속에서 술병을 꺼내더니 소릴 높였다.
“자, 빼갈 나오기 전에 내가 갖고온 봉삼주가 나왔십니다. 이것부터 우선 한 잔하입시다~”
명길이 따라주는 봉삼주 한 잔을 단숨에 들이킨 창호의 머릿속에 까마득히 잊혀졌던 혜숙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정혜숙이가 안죽도 내 기억 속에 살아 있었나. 참, 오래 된 옛날이었지. 하마 육십 년이 다 되간다 아이가.
왁자지껄 떠드는 친구들의 소리 너머 57년 전의 그 일들이 창호의 기억을 두드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