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대표적 정보 메이커
노규형 리서치&리서치 대표
“도전하는 자세로 산다…산을 통해 현실도 배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엇인가에 빠져드는 경험을 다들 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몰입(Flow)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자신의 실력을 집중해서 모두 쏟아 부을 때를 말한다. 우리 주위에서 몰입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목숨 걸고 세계의 험한 산 정상을 오르려는 산악인,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기 위해 각고의 세월을 보내는 체육인,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수술에 매달린 의사들, 모든 걸 포기하거나 단념하고 그림그리기나 소설쓰기에 매진하는 예술인들. 이들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게임이나 도박에 빠진 사람들도 몰입된 사람들이다. 다만 얼마나 현실에 바탕을 두고 좋은 일 하며 잘 사느냐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여론조사는 게임의 법칙을 준수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다. 정치권에서 사용하는 여론조사는 당사자들이 공천이나 경선에 대한 게임의 법칙을 정하고, 그 룰의 일부로 여론조사를 활용하겠다는 의도로 받아들여진다. 여론조사 기관이 조사결과가 너무 중차대하거나 시비에 휘말릴 소지가 있다고 해서 조사를 맡지 않겠다는 것은 일종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 이는 마치 축구심판이 치열한 경기와 그 결과가 두려워 심판을 보지 않겠다는 것과 뭐가 다른가. 조사기관은 최대한 공정하고 편견(bias)없이 조사에 임해 결과를 얻고, 그 조사결과의 활용과 판단은 사용자들이 결정하면 된다.”
리서치&리서치 노규형 사장이 청계산을 다녀왔다. 우리나라 산이 주는 포근함과 산을 통해 현실을 배우는 스톡데일 효과의 교훈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그와 함께 청계산에 가보자.
위의 두 패러그래프는 이번 호 ‘명사산행의 주인공’ 리서치&리서치 노규형(盧圭亨, 54)대표의 삶의 가치를 가장 잘 대표하는 말이다. 몰입은 그가 학계 등으로 갈 수 있음에도 ‘좋아하는 일을 잘 하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여론조사를 선택한 핵심 키워드다. 여론조사를 하면서 몰입을 가장 잘 할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여론조사는 과정은 최대한 공정하게, 결과는 의뢰자나 사용자들이 알아서 활용하고 판단하면 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지금 노 대표의 관심은 온통 몰입과 공정, 그리고 산뿐이다.
그의 관심은 몰입과 공정, 그리고 산
그를 만나본 사람 대부분 그가 후덕한 인상을 가진 좋은 사람으로 기억한다. 실제로도 남에게 해코지 할줄 모르는 사람이다. 인간이 좋아,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을 하기 위해서 심리학을 선택했을 정도였다. 서울대 다닐 때인 76년 사이코드라마를 처음으로 기획하여 공연을 가지기도 했다. 대학원에서, 육사 교관하면서 리더십이나 집단에 대한 관심은 더 커져갔다. 인간에 대한 그의 관심은 깊어갔고, 그는 더 다양한 학문의 세계를 접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 떠날 결심을 한다. 미국으로 가기 전 그의 인생에 전기가 되는 문구를 접한다. 프로이드의 책에서 ‘노이로제에 걸린 환자가 왜 병에 걸리는가라고 묻자, 정신분석학자의 관심은 병의 원인보다는 치유에 있다’고 답한 문구가 뇌리에 박하는 거였다. 순간 ‘이거다’라는 느낌이 팍 들었다. 그의 표현 그대로 옮겨보자. “돌 맞은 사람에게는 치유가 중요하지, 누가 돌을 던졌고, 왜 던졌는가를 따지는 것은 나의 역할이 아니라는 해석이었다. 마치 내가 돌 맞은 사람같이 충격으로 와 닿았다.”
그는 이 때부터 사람보다 시스템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됐고, 미국에서의 전공도 정치심리학을 선택한다. 원인보다는 과정인, 정치 공학적 측면에 학문의 중심을 두게 된 것이다. 개별 인간의 선택이 시스템 방향을 결정하는 정치적 의사결정이나 선거행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뉴욕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85년 귀국하자마자 정통부 산하 통신개발연구소(현재 정보통신정책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자리 잡았다. 일도 열심히 하면서 매년 책을 한권씩 써내는 성과를 냈다. 85년 국회의원선거에서 현직 효과, 86년 투표행위에 대한 심리학적 고찰, 88년 신정보 매체 보급에 따른 정보능력 활성화 방안을 발간하는 등 열성적으로 지냈다. 역시 ‘좋아하는 일을 잘 하는’ 몰입이 크게 작용했다.
89년엔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그의 회사인 리서치&리서치가 설립되는 시점이다. 보통의 경우 국책연구소에서 학계나 대기업 연구소에 직위를 보장받고 자리를 옮기는 게 예사인데, 그는 사업가로 발길을 내디뎠다. 결심은 쉽지 않았고, 미래도 불확실했다. 불안했다. ‘과연 옳은 선택인가’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 여기저기 자문했다. ‘그냥 있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한번 마음먹고 나니 그런 말은 별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안정은 남이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는 충고와 ‘지금은 전문가의 시대, 과감히 한번 도전해보라’는 말만 계속 귓전에 맴돌았다. 더욱이 그가 가장 사랑하는 아내마저 ‘당신은 왠지 잘 될 것 같다’는 말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과감히 세상을 향해 주사위를 던졌다.
여론조사 업계에 혜성같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까지만 해도 여론조사 기관은 비슷한 업계에 있던 사람들이 직장을 박차고 나와 새로운 회사를 만드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리서치&리서치는 전혀 새로운 인물이 새로운 비전으로 업계 지각을 흔들었다. 여론조사 업계에 돌풍이 일어났다. 도전하는 자에게만 승리가 있는 것이다. SK 텔레콤이 사업권을 얻었을 때 마케팅 조사를 담당했고, 대전 엑스포의 입장객 수요예측, 케이블 TV 수요 및 시장조사, 국회의원 및 자치단체장 지지율 조사, 대선 및 총선 여론조사 실시 등 수없이 많은 조사를 정확한 결과로 사용자의 신뢰를 얻어갔다. 97년엔 IMF로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회복세로 돌아섰다. 노 대표도 “만18년 동안 직원들한테 월급 날짜를 한번 어겨본 적이 없는 게 가장 자랑스럽다”고 회고했다. 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의 하나는 2002년 대선직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를 했을 때이다. 그 조사를 두고 아직까지 ‘누가 속았다’느니 ‘누가 사기쳤다’는 등 뒷말도 많지만 그는 적어도 조사과정 만큼은 공정했다고 자부한다. 인간의식을 조사하는 일이라 완벽하지 못한 점은 있을 것이라고 그도 인정한다. 하지만 현재 개발된 조사 중에서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다. 그도 조금 더 완벽한 샘플선택과 대면면접을 위해 더 나은 조사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리서치&리서치는 공정하고 정확한 업적을 인정받아 한국 마케팅 여론조사 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적 품질 인증기관인 영국의 BSI로부터 지난 2000년 품질인증서를 받았다. 한국에 여론조사 기관이 도입된 지 36년만의 쾌거였다. 지금은 오히려 이 회사가 여론조사 전문가 양성기관이 돼 버렸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웬만한 여론조사 기관의 사장, 부사장이 이 회사 출신이다.
현실 직시하며 목표 가지는 게 산이 주는 교훈
그의 도전적인 태도는 최근에도 드러났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결정을 위한 경선 여론조사 기관을 의뢰한 결과 리서치&리서치 등 두개 업체만 참여 신청을 했다. 다른 대부분의 업체는 결과 시비에 휘말릴 것을 두려워하거나, 골치 아픈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아예 신청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여론조사 기관이 결과를 두려워해 조사를 하지 않는 건 직무유기”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와 함께 지난 8월9일 청계산에 갔다. 비가 내렸다 그쳤다 반복했다. 옷은 비와 땀이 범벅이 되어 흠뻑 젖었다. 하지만 너무 상쾌하고 좋았다. 바람도 세차게 불었다. 산행의 또 다른 맛이었다. 그는 그 좋은 산에서 사랑하는 부인 얘기를 또 꺼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조금 굳은 표정을 풀려고, 웃어보라고 하니 대뜸 “마누라가 앞에 있었으면 바로 웃었을 텐데…”라고 말했다. ‘그를 인정해주고 항상 격려해주는 부인과, 안정된 가정이 있으니 그의 사업도 날로 번창하겠구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한고조 유방도 초야에 묻혀 초라한 몰골로 수모를 당하며 다른 사람의 가랑이 사이로 지나다닐 때조차 그의 부인은 “당신은 잘 될 것이다”는 말로 격려를 아끼지 않는 결과 왕위에 오른 사례를 들며 노 대표도 부인의 격려에 “당신은 유방의 마누라야”라고 화답한다고 했다.
그의 산행 이력은 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 장교 시절엔 100㎞행군에, 10㎞ 완전군장 행군 등 정말 걷는 걸 싫어했다. 85년 유학 갔다 귀국한 뒤 동료들과 산에 갔는데 갑자기 너무 좋게 느껴졌다. 우리 산이 포근하게 다가오는 거였다. 그 이후 지금까지 고교 동료, 친구들과 틈만 나면 산에 가곤 한다. 산에 갈 땐 ‘천천히 가지만 끝까지 간다’는 모토로 간다. 빨리는 못가지만 천천히 낙오하는 법 없이 끈기 있게 간다는 것이다. 산에 올라가면 초반에 매우 힘들지만 곧 힘든 건 사라지고 평안하고 상쾌한 마음이 생기는 걸 여러 번 경험했다. 이 경험을 통해 힘들 때는 멀리 보지 않고 한 발짝 한 발짝씩 내딛는 것에만 집중하고 묵묵히 걷는 걸 터득했다.
그는 이 교훈을 짐 콜린스(Jim, C. Collins)의 스톡데일 효과(Stockdale Effect)에 비교했다. 스톡데일은 베트남 전쟁에서 8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면서도 끝내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남은 장군의 이름이다. 그의 긍정적이면서 현실을 직시한 정신력을 이르러 ‘스톡데일 효과’라 부른다. 즉 스톡데일 효과는 아무리 어려워도 결국에 성공할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그와 동시에 눈앞에 닥친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면 목적한대로 성과를 거두는 것을 말한다. 그는 산에 갈 때마다 이 메시지를 떠올리곤 한다.
그는 산에 오르고 일하는 재미를 붙였다. 그 재미를 논어에 나오는 3단계로 설명했다. “요즘은 조사를 이해하는 사람에서, 좋아하는 사람을 넘어 즐기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이해하는 사람(知之者)은 좋아하는 사람(好之者)보다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樂之者)보다 못하다.”
그가 지금 오르는 산은 어느 단계에 와 있을까? 산이 주는 교훈과 재미를 모두 느끼고 있으니 이해하는 수준은 지난 것 같기도 하고….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기업인 짐 콜린스의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의 수준인 즐기는 단계까지 산도 그 정도 갈 수 있을까? 언제쯤 그 수준에 도달할 까? 기업도 산도 그가 둘 다 그 정도 즐기는 단계에까지 다다른다면 그는 정말 훌륭한 인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