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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속보 산행의 달인-송병연 교사 - 마운틴
속보 산행의 달인-송병연 교사

지리산 성삼재~중산리까지 35㎞ 남짓 되는 거리를 5시간 55분 만에 주파했다. 짐승이 아니고 사람이 했다. 대부분 “설마”하며 믿기 힘들어 할 것이다. 같이 종주해 보지는 않았지만 잠시 산행해 본 결과와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그의 결과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서울 신림동 난우중 송병연(47) 선생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이뿐만 아니라 불암산 ~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까지 이어지는 약 55㎞인 일명 서울 오산종주를 8시간50분 만에 완주하고, 91㎞에 달하는 지리산 태극종주를 18시간 52분 만에, 한라산 성판악~백록담~관음사까지 20㎞를 2시간 40분 만에 종주했다. 인간이 했다고 도저히 믿기지 않은 기록이다. 오산종주는 시간당 6㎞, 태극종주와 지리산 종주는 시간당 5㎞, 한라산 종주는 시간당 7㎞ 가깝게 걸었다. 아니 뛰었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 것 같다. 경보 선수가 잘 닦여진 도로에서 시간당 10㎞ 정도 속도를 내면 수준급이다. 하물며 산길에서 그 정도면 보통 사람 뛰는 속도보다 더 빠르지 않나 싶다. 요즘 말로 한마디로 ‘속보산행의 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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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태극 종주 중에 공룡능선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가능할까 싶어 그를 만나 인터뷰 후 그의 학교 주변 삼성산과 관악산에 함께 올랐다. 초입 길엔 조금 봐주는가 싶더니 이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따라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숨이 바로 턱밑까지 차올랐다. 순식간에 땀범벅이 됐다. 삼성산 반쯤 지나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포기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갑자기 시작한 산행이라 랜턴도 준비되지 않았고, 복장도 정장한 상태였다. 신발만 부랴부랴 빌려 정장에 운동화 차림이었다. 그와 함께 날씨 풀리면 장거리 산행을 한번 하기로 했다. 그에게는 ‘누워서 떡 먹기’겠지만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할 것 같다. 벌써부터 긴장된다.

그와 함께 잠시 간 이 길이 사실 그의 퇴근길이다. 관우중에서 삼성산~관악산에서 연주대 거쳐 사당역으로 하산하는 12㎞에 달하는 코스를 매일 오르내린다. 매일 산에 가고 싶어 그가 개발한 길이다. 오후 4시30분 퇴근 시간 맞춰 남들은 하산했지만 그는 역으로 산으로 향했다. 처음엔 4시간여 걸렸다. 보통 사람치고는 조금 빠른 걸음에 불과했다. 매일 반복해서 하다보니 1년 뒤엔 3시간으로 단축됐다. 시간당 4㎞를 걸은 셈이다. 겨울엔 해가 빨리 넘어가 3시간 걸리는 산행도 길이 어두워져 랜턴이 필요했다. 더 줄여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몇 년을 반복하니, 재작년부터 2시간으로 줄었다. 요즘은 2시간 이내로 걷는다. 시간당 7~8㎞까지 줄어들었다. 겨울에 해가 짧아도 어두워지기 전에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오후 4시30분에 퇴근해서 12㎞ 산행 후 삼성동 집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 7시쯤이다. 사람이 아닌 철인이다, 철인.

그는 원래 단거리 운동선수였다. 선수생활을 할 생각이 없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시작했다. 초등 6년 때 학교에서 달리기 시합이 있었다. 고학년을 중심으로 전교생이 기록을 다퉜다. 그는 학교 대표 선수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학교 대표선수로 뽑혔다. 각 학교가 참가한 교육청 대회에 출전해서도 입상하는 실력을 과시했다. 혜성같이 등장한 무명의 선수였다. 육상 담당 선생과 코치들은 “저 애가 누구냐”고 웅성거렸다. 육상 코치는 선수생활 하라고 닦달했다. 일반 학생으로 중학교에 진학했다. 감독과 코치들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계속 따라왔다. 할 수 없이 중학교 들어와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중학교 땐 전성기였다. 입상 기록도 수두룩했다. 서울체고 특기생으로 진학했다. 전도유망한 선수였다. 최고 기록이 10초9까지 나왔다. 국가대표 선수와 올림픽 출전에 대한 꿈으로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고교 진학해서 키가 커지 않았다. 기록 단축에 한계를 절실히 느꼈고, 선수 생활에 대한 위협과 회의감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이대론 포기할 수 없다’고 스스로 결심했다. 선수 생활이 안되면 공부로 승부를 걸자고 각오를 다졌다. 고교 2년 마칠 때 즈음부터 공부에 매달렸다. 하루 3~4시간씩 자고 공부했다. 특기생이 아닌 일반 학생으로 서울대 사범대 체육교육과에 합격했다. 그의 또 다른 인생의 시작이었다. 그의 또 다른 인생이 산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 계기이기도 했다. 아마 선수생활을 계속했다면 그가 산을 이렇게까지 가까이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대학 2학년 때 같은 과 친구들과 함께 산악반을 조직해 인수봉을 암벽 등반했다. 첫 암벽등반 매력에 흠뻑 빠지면서 암벽과 워킹을 동시에 하며 산을 즐겼다. 방학 때만 되면 어김없이 장거리 산행에 나섰다. 교직 발령 받고나서도 산행은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취미 생활로 더 깊이 빠졌다. 부인과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그가 공식적으로 속한 산악회만도 3개다. 다 이유가 있어 가입했다. 장거리 전문 산악회인 알프스산악회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한달에 한번 정기산행에 빠진 적이 없다. 동호인 중심으로 활동하는 ‘산으로’ 산악회도 가입해 있다. 안내 산악회인 소월 산악회에도 그가 속해 있다. 틈만 나면 산을 찾는 그에게 주로 주말에만 산행하는 동호인 중심 산악회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여기선 주로 장거리 산행을 이용한다. 매번 승용차를 가지고 가기엔 너무 불편해서 안내산악회에도 가입한 것이다.

비공식적으로 그가 속한 관우중에서도 산악회를 만들었다. 매주 수요일 교장 선생님과 산을 좋아하는 선생님을 모시고 삼성산과 관악산을 오르내린다. 회원이 약 20명 가까이 된다. 2007년도에 그가 산에 있었던 날을 체크해 보니, 365일중 3일을 뺀 362일 이었다. 가히 상상하기 힘든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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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산악회 회원이 지리산 종주 시간을 체크한 기록을 들어보이고 있다.

지리산 종주, 한라산 종주, 설악산 종주, 영남 알프스 종주 등 그가 해보지 않은 종주 코스는 거의 없다. 그가 원체 빠르게 산행하다보니 그 주변 사람이 시계로 그의 기록을 정확히 체크했다. 그게 지난해 10월25일 지리산 종주할 때였다. 그를 따라갈 사람이 없으니, 전화로 산행위치를 정확히 연락하기로 하고 출발했다. 중간 구간 시간도 체크하고, 마지막 도착 지점을 알리니, 시침 시간까지 정확히 5시간55분을 기록한 것이다.

그는 “한라산은 속보산행하기엔 딱 적합한 산이다”고 말한다. 그래서 성판악~백록담~관음사에 이르는 20㎞ 거리를 2시간 40분 만에 완주한 것이다.

속보산행 하는 그를 두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숙덕거리는 것도 그는 잘 알고 있다. “산에서 미친 짓 왜 하나” “뛰어다니러 산에 왔나” “속보산행 하면서 자연을 볼 수 있나” 등등의 질문과 비난을 동시에 듣고 있다. 그는 그럴 때마다 대답한다.

“내가 걸음이 빠를 뿐이지. 달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산행기록은 아무 의미도 없다. 산행은 산을 즐기기 위해 오르는 것이지, 기록을 위해서 오르는 것은 아니지 않나고 반문한다. 빠른 걸음이지만 다른 사람 보는 것 이상으로 자연을 즐기면서 걷는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의 산행경력 26년. 가보지 않은 산이 거의 없다. “단지 500m이상 되는 산은 아직 가지 않고 있다. 나중에 나이 들어 체력적으로 힘들 때 다니기 위해서 아껴두고 있다.”

그에게도 목표와 꿈이 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내년 정도에 히말라야 14좌 중 한 곳을 꼭 등정하고 싶다고 했다. 체력적으로 전혀 문제없고, 팀과 비용이 걸림돌이다. 비용이 많이 들어 부인 몰래 적금까지 들고 있다고 살짝 전했다. 팀을 이뤄 간다면 언제, 어느 팀이던 합류하고 싶다고 했다. 그 다음의 꿈은 6대륙 최고봉 등정을 하나씩 이뤄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산악인 중에 오은선을 특히 좋아한다고 묻지도 않았는데 밝혔다.

“40세를 훌쩍 넘긴 적지 않은 나이에 히말라야 14좌 등반을 위해 오로지 산에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고 아름답게 보였다. 그녀를 통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지금 속보산행도 히말라야 14좌중 한곳을 오르기 위한 체력 단련의 한 과정일 뿐이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극복하는 과정으로 산에 오른다고 했다. 거의 전문산악인 수준의 산행 자세다. “땀 흘리고 거친 숨을 내쉬는 순간 느끼는 희열과 목표를 이뤘을 때의 성취감을 맛보기 위해서 산에 오른다. 지금은 아마 중독된 것 같다.”

그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오늘도 퇴근길에 삼성산과 관악산으로 발길을 향한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4 Comments

  1. 강창기

    02.19,2009 at 10:38 오전

    이야 정말 이런 사람이 있다니.
    저두 산을 무척 즐기는 편인데.
    지금 체력이면 충분히 14좌 가능하리라구 봅니다   

  2. 이흥

    02.19,2009 at 11:35 오전

    산타는사람은 남자의힘도 최고입니다.   

  3. 별뫼

    02.19,2009 at 4:51 오후

    신림동에는 관우중이 없습니다. 비슷한 이름을 찾는다면 난우중이 있지요. 적벽대전 영화 보시고 나서 착각하신 게 아닌지..   

  4. 박정원

    02.19,2009 at 5:31 오후

    맞습니다. 관우중이 아니고 난우중입니다. 쓴 사람의 부주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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