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시인’이라 불리는 시인이 있다. 시인 이원규다. 서울에서 기자생활을 청산하고 지리산에 입산한 지 어느 덧 10년이 훌쩍 지났다. 올해로 만 11년째다. 지리산에 입산해서는 벌써 5번째 책을 냈다. 시집도 있고, 산문집도 있다. 다 그의 지리산 생활에서 우러나온 내용을 담았다. 그의 지리산 생활은 다음에 산행 화제 인물로 다루기로 하고, 그가 담은 지리산의 봄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지리산의 3대 명당으로 알려져 있는 운조루에 봄이 찾아오는 중이다. 목련이 피고 있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이른 봄 첫 매화가 활짝 피었다. 이렇게 지리산의 봄은 시작되고 있다.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봄의 전령 섬진강 황어다. 황어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봄이 오고 있다는 증거다.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누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이른 봄 노고단의 설경. 정상 인근에 아직 눈이 채 녹지 않은 상태로 산 아래쪽의 노송과 잘 대비된다.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복사꽃이피고 있다. 활짝 피면 완연한 봄을 느낄 수 있다.
진실로 지리산에 오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초봄 양지꽃이 꽃망울을 활짝 터뜨렸다.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지리산 계곡에도 봄은 찾아오고 있다. 계곡 얼음은 녹고 주변 철쭉은 꽃을 피우고 있다.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제발 오지 마시라
지리산 연하천 대피소에 걸려있는 그의 대표작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다.
봄에 꽃이 피는 양푼쟁이꽃. 개불알풀꽃이라 부르기도 한다.
쌍계사 벚꽃 10리길에도 벚꽃이 만개했다.
5월에 들어서면 자운영도 울긋불긋 핀다.
봄에 피는 갸날픈 민들레도 눈에 들어온다.
김인숙
03.02,2009 at 11:26 오전
벌써 성급한 봄꽃 지리산에 투명한 웃음 보이나요? 내 여덟 사랑처럼 급하나요.
운정
03.03,2009 at 9:33 오후
남도엔 하얀 자운영도 있나 봅니다.
지리산엔 언제든 가고 싶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