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태산을 다녀와서 <4>-문학에 나타난 태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연은 시인들에게 아름다운 소재다. 하물며 중국인들에게 최고의 산으로 꼽히는 태산은 오죽하랴.역대 황제들뿐만 아니라 유명 시인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시인들은 자연을 보고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 시심이 본능적으로 솟아오른다. 굳이 시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하물며 태산이다. 모든 중국인들이 우러러보는 산이다. 내로라하는 시인이면 분명 작품을 남겼을 법 하다. 어떤 문인들이 어떤 글을 남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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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봉이다.

중국 문학 중에 으뜸으로 꼽히는 당시(唐詩)는 우리나라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두보(杜甫)는 당대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불린다. 한때 시성으로까지 추앙 받았다. 그는 태산에 올라 그 유명한 ‘망악(望嶽)’을 지어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다. 그가 노래한 태산이다.


대종부여하(岱宗夫如何) 태산은 과연 어떠한 산인가?

제노청미료(齊魯靑未了) 제․노에 걸쳐 푸른빛이 끝없도다

조화종신수(造化鍾神秀) 천지에 신령함과 빼어남 모두 모아

음양할혼효(陰陽割昏曉) 산의 음지와 양지가 황혼과 새벽을 가르구나

탕흉생층운(蕩胸生層雲) 가슴 호탕하게 뭉게구름 피어나고

결자입귀조(決入歸鳥) 눈가 찢어질 듯 저 멀리 돌아가는 새

회당능절정(會堂凌絶頂) 언제든 가파른 꼭대기에 올라가 본다면

일람중산소(一覽衆山小) 한번 둘러보매 뭇 산들 모두 작게 보이리


1, 2구는 멀리서 본 태산, 3, 4구는 가까이서 바라본 산, 5, 6구는 산허리에서, 7, 8구는 산 정상에서 뭇 산들을 굽어보겠노라는 두보의 다짐이다. 이 시는 두보가 29세쯤 되었을 때 과거에 떨어져 관직에 진출하지 못하고 제․노 일대를 여행하면서 쓴 작품이다. 아직 젊은 패기에 찬 모습을 보여준다. 뭇 산들은 소인배, 즉 관료를 말하며, 자신은 태산으로 기필코 관직에 올라 그들을 내려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두보에게 있어 태산은 선계(仙界)의 세상이 아닌 현실을 잘 헤쳐 나가도록 격려해 주는 인간적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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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봉도 역시 암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반면 두보와 쌍벽을 이루는 이백은 태산을 선계의 세계로 나타내고 있다. 이백은 ‘유태산(遊泰山)’이란 제목의 연시로 육수를 지었다. 첫 수를 대략 한번 보자.


사월상태산(四月上泰山) 사월에 태산에 오르니

석평어도개(石平御道開) 돌이 평평하니 황제가 갔던 길이라네

육룡과만견(六龍過萬堅) 여섯 용이 만개 골짜기를 건너

간곡수자회(澗谷隨紫廻) 계곡물 따라 휘감아 돌도다

…중략…

옥녀사오인(玉女四五人) 하늘나라 너댓 명의 옥녀가

풍요하구해(搖下九垓) 바람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네

함소인소수(含笑引素手) 웃음 머금고 하얀 손 당겨서

견아유하배(遣我流霞杯) 나에게 유하주 술잔을 남겨주네

계수재배지(稽首再拜之) 고개 조아려 재배하니

자괴비선재(自塊非仙才) 스스로 신선될 재주 아닌 것이 부끄럽다

광연소우주(曠然小宇宙) 마음을 활짝 열고 온 우주를 작게 보며

엽세하수재(棄世何愁哉) 인간 세상 버리니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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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바위다.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아슬아슬한 철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이백은 태산의 경치를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자연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다가 후반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삽입하여 인간 세상을 떨쳐 버리겠다고 읊고 있다. 이런 수법은 전통적인 산수(山水)시의 형태다. 이후의 2수부터 6수까지도 1수와 비슷한 형태로 진행된다. 전반부에는 태산의 경치를 묘사하고, 후반부에서는 신선을 등장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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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은 대부분 악산이라 바위가 많다.

이백이 신선세계를 희구하는 열망에 대하여 원나라의 이간(李簡)은 이백이 삼선산과 같은 선계를 희구하기는 했지만 안기생과 같은 전설상의 선인을 만나지 못했다고 꼬집고 있다.


이백불우안기생(李白不遇安期生) 이백은 안기생을 만나지 못하였는데

안득우익비봉영(安得羽翼飛蓬瀛) 어찌 날개 얻어 삼선산으로 날아갔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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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모양이 용이 뿔과 같이 닮았다 해서 붙여진 용각산.

명나라의 이반용(李攀龍)이 쓴 ‘태산편’에서도 옥수, 영액, 영지 등의 선계 표현을 쓰며 태산을 인간이 사는 세상이 아닌 세계로 착각하고 있다.


선인각옥수(仙人攬玉樹) 선인이 옥수를 잡고 흔드니

수발생청풍(須發生淸風) 모름지기 맑은 바람이 불어온다

영액비루원(靈液飛淚湲) 영액은 날듯이 졸졸 흐르고

지초여고봉(芝草如蓬) 영지 풀은 고봉처럼 떠다닌다

이와 같이 태산은 선계와 속계를 넘나들며 문인들의 작품 소재가 됐다. 신선을 만나고 싶은 문인은 그들대로 감정을 태산에서 풀었고, 자연경관에 감탄한 문인은 자연 그 자체를 시로 옮겼다. 태산의 자연경관을 노래한 시들 중 금나라 원호문은 ‘등악(登嶽)’에서 일출 광경을 보며 전설과 연결시켜 표현했다. 명나라 성주도 같은 제목에서 세월의 무상함과 역사의 영고성쇠는 자신의 인생역정과 무관하지 않음을 읊으며 한탄하고 있다.


진비무자명공재(秦碑無字名空在) 진의 무자비는 헛되이 이름만 남았고

당각마애소자봉(唐刻磨崖蘇自封) 당의 마애석각은 저절로 이끼가 덮었다

추격궁반상왕사(追客窮攀傷往事) 쫓겨난 나그네가 산에 올라 옛일에 마음 상하고

불승비골수강풍(不勝痺骨受剛風) 야윈 몰골을 이기지 못한 채 거센 바람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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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담 저수지다.남녀노소, 계절 상관없이 수영을 즐긴다. 여자는 대부분 할머니들이다.

당대의 시인 이섭은 진 시황제의 비를 피하게 한 나무에 9급작에 해당하는 ‘오대부’라는 작위를 하사한 데 대해 인간으로서의 소나무에 대한 감탄과 인간의 비애를 동시에 나타냈다.


운목창창수만주(雲木蒼蒼數萬株) 구름처럼 푸르고 푸른 나무가 많건만

차중언명역응무(此中言命亦應無) 이 가운데 명령을 내려도 응하는 것이 없구나

인생부득여송수(人生不得如松樹)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각우진봉작대부(却遇秦封作大夫) 대부에 봉해지는 소나무보다 못 하는구나


명나라의 방효유(方孝儒)는 ‘하일등대(夏日登岱)’에서 봉선대를 노래하고 있다. 방효유는 진한시대에 봉선의식을 행하던 봉선대를 바라보며, 하늘에 가장 가깝다고 여긴 태산 정상에서 벌어지던 성대한 의례를 상상하며 천지를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그렸다.


진한구봉현벽낙(秦漢舊封懸碧落) 진한의 옛 봉선대가 푸른 하늘에 걸려 있고

건곤승개점부구(乾坤勝槪點浮) 천지간 승경이 물거품처럼 생겼다 말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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훅룡담 저수지조금 위에 흑룡담 폭포가 있다. 제대로 물이 흐르면 장관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문인 중에서도 태산을 노래한 시인이 있다. 조선 전기의 문인이자 서예가였던 양사언(楊士彦)이 시조를 썼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泰山雖高是亦山(태산수고시역산)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만 登登不已有何難 (등등불이유하난)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世人不肯勞身力 (세인불긍노신력)

뫼만 높다 하더라 只道山高不可攀 (지도산고불가반)

시조는 한글로 썼지만 후대에 누군가 5언절구 한시로 옮겼다.양사언은 태산 시조에서 사람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일지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교훈을 태산에 오르는 것에 비유하여 시사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접 실천하지도 않고 어렵다는 생각만으로 도중에 포기하거나 기피하려고 한다는 점을 꼬집고 있다. 그는 해서와 초서 등 글씨에도 능하여 안평대군(安平大君), 김구(金絿), 한호(韓濩)와 함께 조선 전기 4대 서가로 알려져 있다.

태산은 이와 같이 많은 문인들이 작품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식 속에서 태산은 이미 굳게 자리 잡고 있는 듯 보인다. 우리가 쓰는 일상 언어에서 비유적으로 잘 드러나고 있다.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질 땐 ‘갈수록 태산이다’라든가, 차근차근 모으는 것을 비유한 ‘티끌 모아 태산’, 걱정도 태산, 태산 같은 은혜, 입이 태산같이 무겁다, 태산을 알아보지 못 한다 등등은 태산이 마치 우리의 한 지명같이 친숙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우리에게 너무 친숙한 태산이다. 한번 가 보시라.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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