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화나 운동화를 신고 인왕산 크랙을 오르는 1959년 경기고 산악부원들. 위험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산이 뭐 길래, 사람들은 산에 왜 다닐까? 아무도 모르고 정답도 없는 화두다. 누가 뭐래도 고교 시절부터 열심히 산에 다닌 사람들이 있다. 산에 너무 열심히 다녀 낙제를 당하기도 했고 집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산에 다닌다.
옛날 비평준화 시절 경기고라 하면 모두가 부러워했던 학교다.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산에 다니고 있는 경기고 OB산악부인 라테르네(LATERNE, 독일어로 빛이나 등불을 뜻함) 회원들에게 ‘왜 산에 가느냐’고 물어봤다. 이 자리엔 라테르네(LATERNE) 회원인 정명식(46회) 전 포스코 회장, 서립규(52회) 우림콘크리트공업 대표이사 회장, 장승필(57회) 전 서울대 공대 교수, 이오봉(57회) 전 조선일보 출판국 사진부장, 김철재(63회) 리프트텍코리아 대표이사, 강영환(75회) 싼타C&S 대표, 구경모(78회) 한국등산지원센터 사무국장이 참석했다.
서대문 안산 대슬랩에서 라테르네 암장 연습.밑에 밧줄을 잡고 있는 사람이 서울대 김두철 물리학과 교수가 확보하고 있고, 강영환 대표가 오르고 있다.
이구동성으로 “막무가내 산이 좋아서, 정복이 안돼서, 정답이 없어서” 등으로 대답했다.
정명식(78) 전 포스코 회장은 ꡒ좋아하는 산을 마음껏 다닐 수 있을 것 같아 대학 학과를 지질학과로 선택하려고 굉장히 고민했다ꡓ고도 했다.
서립규(72) 회장 “건강을 위해서, 기록을 위해서 산에 가는 건 맞지 않은 얘기다. 등산이 과연 스포츠냐의 문제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산은 정신적인 부분이며, 사람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 산은 고향인 것이다.”
장승필(67) 교수 “산에 가서 금방 얘기하던 친구가 조난당할 때를 몇 번 보니 죽고 사는 문제가 크게 느껴지지 않더라. 생사의 문제가 구분이 잘 안되는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죽기밖에 더 하겠어’라는 배수진을 치고 대하니 자신감이 생기더라. 뿐만 아니라 산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대인관계에서 겸손의 미덕도 가르친다. 산에 오르면서 집중력이 생기는 건 덤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장 교수는 고교 시절부터 암벽 전문가다. 대학 입학 후 한국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정을 꿈꿨으나 아쉽게도 독일 유학 시절 고상돈의 에베레스트 등정 소식을 듣고 그 꿈을 접었다. 지금도 한달에 두세 번 이상씩 산에 오른다. 라테르네 회원과 오르기도 하고, 가끔 혼자서 산에 간다. 고교 선배인 서립규 회장과 둘이 산행하다 북한산에서 마주친 적도 있다. 그만큼 산에 자주 간다는 얘기다.
김철제(62) 대표 “등산의 본질은 일종의 도전이다. 인간은 도전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래서 산에 계속 다닌다.”
강영환(49) 대표 “영원히 풀지 못하는 숙제다. 결론 없으니 그래서 계속 다닌다.”
40대부터 70대까지 산에 가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100인 100답이 아마 다 다를지 모른다. 그만큼 산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모두 자신은 왜 산에 가는지 한번 돌아보자. 명상하는 자세로 산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 산이 조금 더 다가올 것이다.
라테르네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산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왼쪽부터 구경모 국장, 김철재 대표, 장승필 교수, 정명식 회장, 서립규 회장, 강영환 대표, 이오봉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