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스카 문화의 시조인 백제 왕인 박사는 한반도 문화를 수출한 선구자적인 인물이다. 그는 일본 천왕의 초청으로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해박한 경서의 지식으로 응신천왕의 신임을 받아 태자의 스승이 됐다고 한다.
이것이 일본 문화의 일으켜 세우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 그의 후손은 대대로 학문에 관한 일을 맡고 일본 조정에 봉사하여 일본 문화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일본으 역사서인 고서기(古書記)에는 화이길사로, 일본서기에는 왕인이라고 박사의 이름이 나타나 있다.
왕인 박사는 논어와 천자문은 물론, 기술공예의 전수, 일본가요의 창시 등에 공헌함으로써 일본 왕실의 스승이며, 정치고문이 되어 백제문화의 우수성을 알렸다. 일본에서도 일본문화사상의 성인으로 일본 아스카(비조: 飛鳥)문화의 시조가 됐다.
일본인들이 아직까지 왕인 박사의 제사를 올리고 예의를 갖추는 축제를 지내고 있다. 왕인박사의 탄생지에서 매년 4월에 열리는 왕인문화축제에는 일본인 후손들이 왕인 생가터를 방문하기 위해서 몰려온다.
영암에 있는 성기동 유적지로 왕인 박사를 만나러 가보자.
왕인박사 유적지 안내문,
왕안 박사 석상.
한중일 3개국 유명인 1,000명이 왕인 박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한자씩 글자를 새긴 천자 기념비석이다.
천인천자문을 끝에서 봤다. 배의 모양을 형상화 했다고 한다.
앞에서 본 천인천자문.
왕인 박사 동상. 월출산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있다.
왕인 박사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기록돼 있다.
왕인 박사가 탄생한 영암 성기동에 대한 안내.
왕인 박사 묘를 이장해 왔다.
왕인 박사 유허비.
왕인 박사 탄생지에 대한 안내.
왕인 박사 생가터가 있었던 자리에 주춧돌이 그대로 놓여 있다.
왕인지
왕인지에 대한 안내.
왕인 박사가 사용했다는 샘터에 대한 안내.
왕인 박사가 사용한 샘터, 이를 성천이라고 부른다.
성천 올라가는 길.
왕인 박사가 수학했다는 사당. 학이문이다.
왕인 박사 영전을 모신 왕인묘.
Mc
08.16,2009 at 5:20 오후
왕인지의 설명 밑에, 왕인(전373-미상)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전’이란 말이 무슨 뜻인가요? 백제 개국이 BC18년 아니었던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