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령길, 도심 속에서 역사의 뒤안길에 있던 그 길이 다시 시민의 품으로 완전히 돌아왔다. 68년 1월 21일 ‘김신조 침투사건’으로 통제된 지 41년, ‘서울 도심의 DMZ’로 불리며 북한산의 마지막 남은 생태보고가 그 모습을 수줍은 듯 설레며 드러냈다.
부산에서 딸네집에 둘러보러 왔다가 우이령길 걷기 위해 온가족 탐방객들.
국수나무와 산벚나무, 진달래, 철쭉 등이 군락을 이루고, 리기다소나무와 참나무 등도 하늘을 향해 키 경쟁을 하는 양 쭉쭉 뻗어 있었다. 관목과 교목, 침엽수와 활엽수가 적절히 조화를 이뤄 건강한생태숲을 뽐내고 있었다. 40년 넘게 간직해 온 우이령숲길의 아름다운 자태다.
우이령길이 지난 7월 중순 시민들에게 전면 개방되자 탐방객이 갑자기 쏟아졌다. 주말 하루 방문객이 15,000명에 달했다. 평일에도 3,000명을 훌쩍 넘겼다. 7월 말까지 방문객이 10만 명에 달했다.
마사토로 복토해 걷기 좋은 길로 만들었다.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많다.
생태는 보존하기 힘들어도 망가지는 건 순식간이다. 공단에서 부랴부랴 보존대책을 세웠다. 7월 27일부터 다시 사전예약제로 전환했다. 우이동과 경기도 양주 교현리에서 하루 390명씩 총 780명만 입장시키기로 했다. 평일 평균 탐방객이 200여명으로 줄었다. 우이동과 교현리 양쪽 입구에 공단사무실을 설치하고 직원들을 상주시켰다. 에코가이드도 있어 원하면 누구나 우이령숲길에 대한 생태 해설도 듣도록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걷기 좋은 길로 다졌다.
우이령길은 수천 년 동안 북한산과 도봉산의 경계를 지켜왔으며, 서울 우이동과 경기도 양주를 가장 단거리에 연결하는 오솔길로서 많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역사기록의 흔적을 찾기 힘들지만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엔 이름 없이 길만 표시돼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우이령길엔 특히 관목으로 국수나무가 많다.
우이령이란 이름은 남쪽 북한산과 북쪽 도봉산의 능선이 고개를 중심으로 ‘소의 귀’처럼 죽 늘어졌다고 해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우이령이란 이름이 삼각산이란 이름을 유래케 했다는 해석도 있다. 북한산 이전에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삼각산은 ‘세 부리’ 또는 ‘세 귀’에서 온 말로 보기도 한다. 부리는 뿔로 바뀌어 삼각이란 말로 뜻 옮김 했고, 쇠귀(牛耳)가 세 귀로 전음 되고, 귀는 모퉁이에서 뿔로 뜻 옮김하여 세 개의 봉우리가 있는 삼각산으로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 보면 우이령의 역사는 삼각산보다 더 오래됐다고 볼 수 있다. 오래된 만큼 많은 역사를 간직할 법하지만 기록이 없다.
걷기 좋게 숲이 햇빛을 가려주고 있다.
그 길이 역사의 전면에 떠오른 것은 한국전쟁부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픈 상처를 안고 출발한 것이다. 작은 오솔길에 불과하던 좁은 길이 6․25를 거치면서 미군 공병부대에 의해 수송도로로 확대됐다. 우이령 정상(330m) 영문비석엔 ‘이 도로는 미군 36공병단의 공병도로로 109공병대대와 102공병대대에 의해 1964~1965년에 건설됐다’고 쓰여 있다. 1965년 개통 이후에도 사람들 왕래는 자유로웠다.
우이령길 남아있는 야생동물의 흔적들.
그러나 한국전쟁의 깊은 상처는 김신조와의 악연으로 이어졌다. 무장간첩 김신조 일당은 하필 우이령길을 통해 침투하여 자하문을 넘어 북악산에서 국군과 교전을 벌이다 일망타진됐다. 이후 우이령길과 북악산은 전면 통제되고 인적이 끊긴 역사의 단절상태로 들어갔다. 인간의 기준이다. 우리 역사와 궤를 같이 하는 우이령길의 아픈 역사이기도 하다.
반면자연의 상태에서 보자면 살맛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인간의 침범은 균형을 무너뜨리고 생태환경을 악화시킨다. 어차피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 불가능하면 인간과의 단절이 더 나을 것이다.
걷기 좋은 길의 연속이다.
오랜 단절은 관계를 소원하게 만드는 반면 한편으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지난 7월 중순 40여년 만에 속살을 드러내자마자 탐방객이 모인 것도 분명 호기심이나 신비감 같은 이유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40여년 만에 선보인 속살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지난 7월 30일 사전예약제로 바뀐 우이령길을 탐방했다. 우이동 공단사무실 바로 아래 우이계곡 주변에 즐비한 음식점엔 몇 차례 가본 적 있었지만 당시엔 위로는 군 통제구역으로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었다. 지금 그 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신비감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공단사무실 바로 위 전경부대까지 시멘트 포장도로가 돼 있었다. 오래 전 포장한 도로였다.
양주 쪽으로도 잘 정돈 돼 있다.
사무실 바로 앞엔 30m 가까이 되는 키 큰 소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그 중 한 나무에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Ⅱ급인 새흘리기가 까치둥지에 알을 낳고 부화해서 새끼를 기르고 있었다. 참 경사스런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마침 아직 털도 없는 새끼가 머리를 삐쭉 내밀어 어미 먹이를 기다리는 듯 모습을 보여줬다. 새흘리기가 둥지를 틀고 새끼를 기른다는 자체만으로도 생태가 복원됐다고 볼 수 있는 증표였다.
멸종위기 동식물 2종인 새흘리기가 우이동 안내사무소 바로 앞 소나무 위 까치집에 새끼 부화에 성공했다. 둥지에서 고개를 삐쭉 내밀고 있다.
전경부대를 지나자 잘 정돈된 마사토 흙길이 쭉 뻗어 있었다. 가는(북쪽) 방향으로 교현리 4㎞, 석굴암삼거리 2㎞, 소귀고개(우이령) 1㎞, 올라온(남쪽) 방향으로 우이동 0.5㎞란 이정표가 붙어 있었다.
동행한 한상기 공단 에코가이드는 “군 수송차가 다니느라 울퉁불퉁한 길을 사람 다니기 편하게 마사토로 복토를 해서 다졌다”며 “많은 사람들이 맨발로 다닐 정도로 부드럽게 했으며, 중간 중간에 야생화단지 3곳과 쉼터도 마련해 탐방객이 경관을 즐기며 쉬어가도록 조성했다”고 밝혔다. 평일인데도 제법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대부분 맨발로 가고 있었다. 방학이라 부모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같이 걷고 있었다. 어머니와 동생과 같이 왔다는 고교 2년생 김준호(18)군은 “공부만 하다 처음 개방했다는 우이령길을 와보니 느낌이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며 “숲과 생태를 모두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고 흡족해 했다.
대전차 장애물로 만든 콘크리트 진입장벽. 전쟁의 아픈 상흔이다.
출발한 지 50분 만에 우이령길 정상인 소귀고개에 도착했다. 분단의 상흔과 아픈 역사의 현장이 나타났다. 유사시 대전차 진입을 막기 위해 길 양쪽 10m가량 콘크리트덩어리를 쌓아놓은 장애물이었다. 탐방객들도 시대의 아픔을 같이 한 이 흔적 앞에서 사진촬영에 분주했다.
대전차 장애물 안내판에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다.
고개를 넘으니 큰 공터가 나왔다. 군 훈련장으로도 이용했을 법한 크기였다. 길 양쪽으로는 진달래 자연군락지가 쭉 펼쳐져 있었다. 진달래 피는 4월이나 5월쯤 오면 더 좋을 성 싶다. 우이령고개 남쪽으로는 소나무 군락지가 눈에 많이 띄었으나 북쪽 교현리 방향으로는 신갈나무와 졸참나무 등 참나무가 우성을 점하고 있었다. 이것도 어쩌면 숲의 천이과정일 것이다.
도봉산 오봉 다섯 개의 봉우리가바로 눈앞에 선명하게 펼쳐져 있다.
길 양쪽으로 도봉산과 북한산을 한번씩 바라보며 다시 걸었다. 두 개의 산을 가르는 계곡길이지만 도봉산 쪽으로는 조망이 확 트였다. 오봉이 뚜렷하게 보였다. 맞은 편에 있는 북한산 상장능선에서 5명의 장사가 힘자랑으로 바위를 던져 제일 멀리 간 사람이 원님의 외동딸을 차지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그 오봉바위(660m)다. 바로 앞에 있는 듯하지만 높이가 우이령 딱 2배다.
오봉의 유래에 관한 안내판.
마침 저기서 맨발로 오는 할머니가 보였다. 느낌을 물었다. “뉴스에서 우이령길을 개방했다는 소식 듣고 알았는데 와보니 너무 좋네요. 서울 도심에서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곳에 이렇게 걷기 좋은 길이 있다니, 경치도 좋고 전부 다 좋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페트병 2개 들고 왔는데 물이 모자랐어요. 맨발로 걷고 발 씻을 물도 없고요. 이것만 해결된다면 자주 오고 싶네요.”
부산에서 딸네 집에 둘러보러 왔다가 딸과 같이 산책 나왔다는 조복자(66)씨의 말이다. 교현리로 그냥 넘어가려 했으나 너무 좋아 왕복으로 돌아오고 있는 길이라고 했다. 할머니의 딸 서은경(35)씨도 멀지 않은 관악구에 살고 있었다. 집에서 가까운 관악산보다는 어머니와 편하게 걷고 싶고, 처음인 우이령길을 찾았다고 했다. 천천히 걸으면서 사진도 찍고 경치 구경하며 4시간 이상 걸렸지만 아직 1시간 더 걸릴 것 같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3대가 함께 걸을 수 있는 길이 우이령길 이었다.
출발한 지 2시간이 좀 안 돼 석굴암 갈림길이 나왔다. 석굴암에 가는 사람들은 예약 없이 신도증만 있으면 출입이 가능하다고 했다. 갈림길 앞엔 커다란 공터와 아주 오래 됐음직한 저수지가 있었다. 공터엔 석굴암 가는 사람들의 차들이 주차해 있었다.
석굴암을 멀리서 바라보며 교현리로 바로 내려갔다. 30분쯤 뒤 교현리 도봉산 송추분소 사무실에 도착했다. 정확히 3시 10분이었다. 우이동 사무실 입구에서 출발한 지 2시간 남짓 소요됐다. 걷기엔 안성맞춤인 길이었다. 특히 데이트 하는 남녀나 노약자나 어린이에겐 적격이었다. 정상을 오르는 등산객들에게는 성에 차지 않을지 몰라도 가벼운 산책과 걷기 위해서 찾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길이었다.
Tip: 우이령길 탐방하려면 공단 홈페이지 통해 하루 직전까지 예약해야
우이령길은 총 6.8㎞로, 경기도 교현리 방향이 3.7㎞, 우이동 방향이 3.1㎞다. 우이동에서 출발한다면 우이동 공단사무실까지 거리가 1.7㎞다. 사무실에서 소귀고개까지는 불과 1.5㎞가 채 안된다. 점심 싸들고 와서 쉬엄쉬엄 가더라도 편도 3시간 잡으면 된다. 예약은 국립공원 홈페이지(http://ecotour.knps.or.kr)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이용일 기준 15일 전부터 탐방 하루 전 오전 10시까지 예약을 마쳐야 한다. 인터넷 예약한 뒤 탐방할 때는 예약확인증과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호우 등이 입상이 통제되는 경우엔 탐방이 자동적으로 취소된다. 탐방인원은 송추와 우이분소에서 각각 390명씩 하루 총 780명으로 제한한다. 출입은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가능하며, 오후 4시까지는 탐방을 마치고 하산해야 한다. 공단은 여름철 시범운영을 거친 뒤 9월부터 매주 1회 자연해설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등 탐방서비스 수준을 높여나갈 계획이다.
필승코리아
08.31,2009 at 1:53 오후
이런 정보는 상당히 유익한것 같습니다. 조선일보 감사합니다.
manbal
09.02,2009 at 12:20 오후
사전예약제로 바뀌었군요.
친구들과 함께 가보고 싶은 곳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