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곽 걷기<1> 북악산… 고려 때부터 주목받은 경복궁 주산

서울의 동서남북을 연결한 4대문 길이는 총 몇㎞나 될까? 서울은 중심에서 지형적으로 북쪽으로 북악, 동쪽에 낙산, 남쪽에 남산, 서쪽에 인왕산으로 연결된 분지 형태다. 풍수로 본 서울의 산수는 진산(鎭山), 또는 조산(祖山)인 북한산에서 주산인 북악(백악)에 연결되며, 낙산(목멱산)이 좌청룡, 인왕산이 우백호, 남산이 주작, 북악산이 현무로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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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 등산 들머리인 청운동 방향 자하문 입구에서 등산객이 출발에 앞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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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동 방향엔 창의문이란 문패가 달려있다.

이 산들을 연결하는 능선에 따라 조선왕조의 도성이 축조되었다. 산 능선의 조금 낮은 곳과 수구 옆 길목에 사대문을 만들어 외부와의 교통로로 이용했다. 총 연장길이는 약 20㎞에 달한다. 그 20㎞를 축성할 당시의 서울은 지금과 완전히 다르다. 이른바 4대문 안과 밖으로 나눠져 생활수준도 차이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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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 출발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본격 계단이 나온다.

지금 서울시에서 조선시대 그 성곽로를 연결하는 사업에 들어갔다. 이미 연결된 구간도 일부 있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졌거나 소실된 구간을 찾아 옛날 모습 그대로 복원시키기로 했다. 복원된 성곽로는 걷기 좋은 길을 만들어 트레킹 코스로 만들고 있다. 아마 머지않아 복원된 서울성곽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성곽을 따라 걷다보면 역사공부와 의식도 생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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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로 주변에 노송들이 우거져 있다.

서울 4대문을 잇는 4개산은 서울 내사산(內四山)으로 북악, 인왕, 낙산, 남산 등이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산이 과거엔 꽤나 의미가 있었고, 지금도 경치가 뛰어난 산이다. 도심 산책코스로 이용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 산의 역사와 유래에 대해서 하나씩 살펴보며 서울의 역사를 다시 한번 느껴보자. 먼저 북악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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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데크로 잘 정돈해 놓았다.

북악은 서울의 주산(主山)으로, 남산에 대칭하여 북악이라 칭했으며, 일명 백악(白岳)·공극산(拱極山)·면악(面岳)이라고 불렀다. 일찍이 고려 숙종 때 지금의 서울 지방에 남경(南京)을 설치하기 위해 그 궁궐터로 명당자리를 찾았다. 숙종 6년(1101)에 최사추(崔思諏)와 윤관(尹瓘) 등은 "삼각산의 면악 남쪽 땅이 그 산세와 수세(水勢)로 보아 옛 문헌에 맞으니, 면악의 주간(主幹)을 중심으로 남향하여 형세에 따라 도읍을 삼음이 마땅하다"고 아뢰어, 마침내 1104년 지금의 경복궁 자리보다 약간 위지점인 지금의 청와대 자리쯤에 궁궐(延興殿)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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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탐방로로 힘든 등산객을 위해 중간중간에 쉼터도 마련해 놓았다.

또 『문헌비고(文獻備考)』 여지고(輿地考) 산천조에도 "백악을 일명 면악이라 한다. 북부에 있다"고 하여 면악이 곧 백악임을 밝혔듯이, 오늘의 북악은 일명 백악이라 불리었고, 고려시대에는 면악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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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곽로가 북악산 자락에 길게 뻗어 있다.

이렇듯 북악은 고려 때부터 이미 왕기(王氣) 서린 산봉우리로 주목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최사추 등이 "이곳이야말로 옛 문헌에 부합되는 곳입니다"라고 한 것을 보면 그 훨씬 이전부터 뭇사람이 높이 우러러보던 명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백악, 즉 북악은 서울의 중심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네 산 가운데에서도 더욱 뛰어나기에 조선왕조가 개국하면서 정궁(正宮)인 경복궁의 주산을 삼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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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엔 백악산이란 비석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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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비석 바로 옆에 등산객들이 쉬고 있다.

한편 백악의 이름은 조선 초부터 백악신사(白岳神祠)가 있었던 데서 연유했다. 태조 4년(1395) 12월에 한성의 북악인 백악산신(白岳山神)을 진국백(鎭國伯)으로 삼아 국가에서 제사를 받들게 하여 그 사당을 백악신사라 하고, 이 신사가 있는 산을 백악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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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에 새겨진 글자에 대한 안내문.

중종 32년(1537)엔 명나라 사신 공용경( 用卿)이 왔을 때 중종은 그를 경회루로 초대하여 연회를 베풀었다. 그 자리에서 왕은 손님을 최선으로 접객하는 풍습에 따라 사신에게 주산인 백악과 서쪽 인왕산(仁王山)의 이름을 지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공용경은 북쪽의 백악을 ‘공극(拱極)’이라 하였다. 공극은 ‘북쪽 끝을 끼고 있다’는 뜻으로 산이 도성의 북쪽에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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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중간중간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

북악은 서울의 지형상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뒷산으로 북쪽에 위치하여 남쪽으로 시가지를 품고 있는 자연지리 및 풍수지리상의 위치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북악은 서울 도성 안 북쪽에 342.4m로 높이 솟아 고려시대 이래로 주목받았고, 조선시대에는 그 남쪽에 궁궐을 지었다. 그 후 오늘날까지 우리 민족사의 중심무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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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산 정상비석 조금 지나면 청운대 비석이 나온다.

서울의 도성은 태조 4년(1395)에 궁궐이 낙성된 뒤 다음 해 1월 기공식과 함께 착공했다. 북악 지역에 북대문인 숙청문(肅淸門, 중종 이후 肅靖門)을 설치하고, 인왕산과 이어지는 안부에는 북소문인 창의문(彰義門)을, 낙산과 이어지는 곳에는 동소문인 홍화문(弘化門)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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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뻗은 성벽이 조선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하다.

북악은 노송이 울창한 경승지로 탐승객이 많았다. 조선 성종 때 성현(成俔)은 서울 성 안에서 울창한 나무와 맑은 물 흐르는 그윽한 경승지로 어느 동네보다 북악의 삼청동을 제일로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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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진 노송 사리오 숙정문이 있다.

그는 "서울 성 안에 명소 중 놀만한 곳으로 삼청동이 가장 으뜸이고, 인왕동(仁王洞)이 그 다음이며, 쌍계동(雙溪洞)·백운동(白雲洞)·청학동(靑鶴洞)이 그 다음 간다"라고 했다. 이 삼청동은 북악의 동쪽 기슭이요, 또 서쪽 기슭의 유란동(幽蘭洞)·도화동 계류에는 대은암·청송당·운강대 등이 있어 풍류와 학문·효행의 명소가 되었다. 삼청동은 산(山淸)·물(水淸)·사람(人淸)의 삼청으로 도성 주민의 각광을 받았다. 그리고 쌍계동 또한 북악에서 좌청룡 낙산(駱山)으로 가는 산줄기 가운데 우뚝 솟은 응봉의 동쪽 계곡을 말하는 것으로 이 또한 북악의 동남쪽 계곡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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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 방향에서본 숙정문.

아울러 1395년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그 북문인 신무문(神武門) 밖 북악 기슭은 궁궐의 후원으로 이용했다. 이곳에는 임진왜란 전에 서현정·취로정·관저정·충순당의 건물이 있었으며, 조선 초기에 이 후원을 상림원이라 부르고 진귀한 동식물을 길렀다. 중종 때는 청문(淸門)·열문(洌門)·탁문(濁門)을 지어놓고 조정의 신하들이 얼마나 소신을 갖고 정사에 임하는가를 확인하기도 했다. 그리고 영조 원년에는 북악의 남서쪽 기슭에 생모 숙빈 최씨의 사당인 육상궁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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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은숲으로 덮여 있다.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한 뒤 후원 둘레에 담장을 마련하고 서쪽에 추성문과 금화문, 동쪽으로 춘생문, 북쪽으로 계무문을 지었다. 그 안쪽으로는 융문당과 융무당을 마련하였으니 바로 이곳이 문·무과의 대과와 알성과거 시험장이었다.

그리고 서쪽 담쪽에는 경농재(慶農齋)라는 건물이 있고, 그 앞에 약간의 논밭이 있었다. 이곳은 임금이 친히 모를 심었던 친경(親耕)의 현장이었다. 그 이외에 오운각(五雲閣)을 비롯하여 금위군의 수궁막과 숙소·마궐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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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 방향을 거쳐 와룡공원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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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은 장기간 통제된 구간이라 성곽이 비교적 원형대로 보존돼 있다.

북악은 1967년까지는 가벼운 등산길이었으나 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공비들이 이곳까지 침투해 온 사건이 발생하여 수도권 경비 강화를 목적으로 차량에 의한 관통도로인 북악산길 속칭 북악스카이웨이를 마련하고 등산길을 폐쇄했다. 그러던 길이 2007년 다시 신분을 확인하고 통행이 재개됐다. 창의문, 즉 자하문 방향과 정릉에서 올라가는 쪽에 안내소가 있어 신분을 확인하고 출입증을 받아 출입할 수 있다.

도심 속에 있는 무심코 지나치는 산의 묘미를 가을에 다시 한번 찾아 역사의 숨결을 느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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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학고 뒤편 와룡공원에서 성곽로따라 내려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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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곽 안내도.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1 Comment

  1. 한국인의 얼

    01.29,2010 at 10:02 오후

    서울에서 살았으면서도 무에 그리 바빴는지 가보지 못했던 산들, 님의 방에서 봅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나중에 고국을 또 방문하면 함 가보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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