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곽 걷기 <2>인왕산… 산 곳곳에 경승과 명소로 가득

서울성곽은 태조 4년(1395) 경복궁, 종묘, 사직단의 건립이 완성되자, 곧바로 정도전이 수립한 도성 축조계획에 따라 수축하기 시작했다. 평지는 토성으로, 산지는 산성으로 축성했다. 성곽을 조기에 완공하기 위하여 1396년 농한기인 1, 2월의 49일 동안 전국에서 11만8천명을 동원하는 대역사를 하기도 했다. 이 때 대부분의 공사를 마치고 가을 농한기인 8, 9월에 다시 전국에서 7만9천명을 동원해서 나머지 공사를 마무리하고 4대문과 4소문을 준공했다.

27년이 지난 세종 4년(1422년) 다시 대대적인 보수 확장공사를 벌였다. 그 해 1월 농한기에 전국에서 약 32만 명의 인부와 2,200명의 기술자를 동원하여 석성으로 수축했다. 당시 서울 인구가 약 10만 명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의 공사였음을 알 수 있다. 이 공사로 인한 사망자수 만도 872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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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들머리에 해당하는 사직공원.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국란을 겪으며 국방의식이 고조되자 숙종은 일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 3군영을 동원하여 또 한번 대규모로 성곽을 정비하고, 나아가 북한산성까지 쌓으며 도성의 방어체제를 정비했다. 이것이 근대이전 의도적으로 헐어내기 전의 서울성곽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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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과정터 안내석.

1899년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 전차를 부설하면서 동대문과 서대문 부근의 성곽 일부가 헐려나갔고, 이듬해는 용산과 종로사이 전차 부설을 위해 남대문 부근을 없앴다.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어서 서대문과 혜화문(동소문)이 헐리며 사실상 평지의 성곽은 모두 철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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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공원을 올라서면 등과정터가 나온다.

1970년대 중반부터 서울성곽 복원계획에 따라 삼청지구, 성북지구, 광희지구, 장충 남산지구, 청운지구가 차례로 복원되고, 70년대 후반과 80년대 들어 삼선지구와 동숭지구가 새 모습으로 단장했다. 복원 가능한 나머지 구간은 성곽 옆 트레킹 코스 조성과 동시에 공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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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등산로가 시작된다. 옛날 통제됐던 시절 사용했던 철창문은 그대로 남아있다.

인왕산은 도성 안에 경치 좋기로 손꼽히던 곳이었다. 조선 후기의 화가인 정선(鄭敾)은 비 온 뒤의 인왕산 경치를 지금의 효자동 방면에서 보고 그린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 국보 제216호)」로, 강희언(姜熙彦)은 자하문 근처인 도화동에서 보고 느낀 「인왕산도(仁王山圖)」로 각각 그 아름다운 경치를 실감나게 표현하여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대표작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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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들어서면 이정표가 있고, 그 옆으로 등산로가 있다.

뿐만 아니라 산기슭 곳곳에는 이름난 인물들과 깊은 인연이 얽힌 곳이 적지 않게 흩어져 있다. 지금 청운초등학교 뒷골목 안쪽의 깊은 골짜기는 백운동(白雲洞)으로 이름 있던 곳이었다. 그 아래는 김상용의 집이 있던 청풍계(淸風溪)였으며, 그 근방에 세심대(洗心臺)가 있어 임금도 찾아 구경하던 곳이었다. 청풍계 청하동(淸霞洞)에서 고개 너머 남쪽은 김수항의 별장이 있었고, 그의 아들 김창업이 살던 옥류동(玉流洞)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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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청에서 잘 정돈한 인왕산 생태경관보전지역 안내판.

그 인근에 송석원(松石園)이라고도 했는데, 평민 시인 천수경(千壽慶)이 거닐며 독서하던 곳이다. 송석원에서 서남쪽 지금의 누상동에는 북촌 제1의 활터 백호정(白虎亭)이 있었고, 고개 너머 지금의 배화여자고등학교 경내 일부는 이항복의 옛 집터 필운대(弼雲臺)이다. 또 사직단 남쪽(사직동 262번지)에는 선조가 태어나 자란 도정궁(都正宮)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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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 따라 오르면서 주변의 기암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도 인왕산 등산 포인트다.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와 함께 도읍을 정할 때 우백호로 삼았던 인왕산 등산로는 사직공원이나 자하문, 홍제동, 부암동 등 어느 곳에서나 쉽게 오를 수 있으나 크게 두개의 종주코스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홍은동 홍지문에서 무악동에 이르는 총 3km 등산로이고, 또 하나는 자하문터널 끝에서 인왕산 정상까지 연결되는 총 2.5km 코스로 도보로 정상까지 50분 정도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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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 등산로가 잘 닦여져 있다.

인왕산 동쪽 모든 등산로의 들머리가 되는 산중턱 위 인왕산길은 종로구 사직동에서 누상동·옥인동을 거쳐 청운동의 창의문으로 이어지는 인왕산 중턱길을 말한다. 총 2.3㎞의 이 길은 북악로 또는 속칭 인왕스카이웨이, 북악스카이웨이(10km)로 불리다가 1984년 11월에 자하문을 중심으로 ‘북악산길’과 ‘인왕산길’로 나누어 이름을 붙였다. 이 길은 1968년 1월 21일 지금은 목사가 된 김신조 북한 무장공비 일당의 침투 이후 수도권 경비와 산책로로서의 기능을 동시에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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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갖가지 형상을 한 기암들이 있다.

인왕산 들머리 중의 한 곳인 사직공원 뒤에는 황학정이 있다. 조선시대 궁술을 연습하던 터였다. 경희궁 안에 있던 시설을 일제 때 이곳으로 옮겼다. 숲으로 둘러싸여 가까스로 보였다. 도로를 따라 올라갔다. 호랑이굴과 범바위 방향으로는 지금 한창 보수공사 중이라 연말까지 출입이 통제된 상태였다. 기존의 등산로를 따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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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으로 올라서면 이정표와 함께 정상이 저 멀리 보인다.

능선에 올라 남쪽으로 성곽 보수하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곳도 한때는 군사통제구역으로 출입이 금지됐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인 1993년 일반에 출입이 허용됐다.

능선 따라 오르는 길은 사방이 확 트여 서울 전체 조망이 가능했다. 능선 바로 옆으로 거무스름한 이끼 낀 섬돌들이 여기저기 보여 오랜 역사를 대변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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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올라가는 등산로.

정상이다. 사방이 완전히 확 트인 정상 삿갓바위에 올라 빽빽이 들어선 서울의 빌딩숲을 내려다 봤다. 갑자기 숨이 꽉 막히는 느낌이다. 빌딩숲은 사람에게 그렇게 갑갑함을 준다. 그 갑갑한 곳에서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 일상을 멀리서 한번 내려다보라. 인생을, 삶을 잠시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하나의 지혜다. 누구나 알 것 같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이 가을에 한번 둘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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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 길이 닦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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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는 성곽복원공사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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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가는 길엔 조선시대 성곽으로 사용된 섬돌들이 그대로 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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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사이로 숲이 우거져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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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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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주위를 바라 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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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 방향으로 성곽이 길게 뻗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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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뻗은 성곽이 북악산과 연결된 듯이 보인다. 마주 보이는 산이 북악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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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으로 하산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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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우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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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밖으로 나온 등산로따라 가면 성곽이 옛날 섬돌과요즘 섬돌로 성벽이 쌓여 있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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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길은 들어가는 길과 마찬가지로 철창문으로 돼 있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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