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쇠의 계절이 돌아왔다. 고로쇠는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마신 대표적인 수액으로, 2월 중순부터 4월 초순까지 전국에 걸쳐서 채취한다. 보통 우수, 경칩에 채취했으나 지구온난화로 채취 시기가 점차 빨라지고 있는 추세다. 올해의 우수는 지난 2월19일, 경칩은 3월6일이다.
현재 마실 수 있는 수액의 대표 수종으로는 단풍나무류와 자작나무류로 크게 나눈다. 단풍나무류는 고로쇠가 대표적이며, 자작나무류로는 자작나무, 거제수나무, 박달나무 등이 있다. 지난 2006년 산림청 임업통계연보에 따른 수액채취 가능한 수종별 분포면적 비율을 보면, 단풍나무 24%, 물박달나무 23%, 고로쇠나무 21%, 박달나무 16%, 자작나무 12%, 거제수나무 4%로 조사됐다.
그러나 채취 수액은 지난 2008년 기준으로 전국 총생산량은 589만ℓ였고 판매액은 139억원이었다. 이중 고로쇠 수액이 581만ℓ, 판매액은 137억원이었다. 시판되는 수액 전체의 99%가량이 고로쇠에서 채취한 사실을 알 수 있다. 2009년에는 겨울가뭄으로 고로쇠 수액 채취가 예년의 절반을 조금 웃도는 수준에 그쳐, 생산량이 367만ℓ, 판매액이 79억원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2010년 올해는 잦은 폭설과 비로 고로쇠 수액 생산이 예년보다 풍부할 것으로 농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잦은 폭설과 비로 올해는 고로쇠 수액이 풍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고로쇠 수액은 예로부터 ‘뼈에 이로운 물’이란 뜻의 ‘골리수(骨利水)’로 불리어 왔다. 골리수에 대한 유래는 통일신라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통일신라 말 도선국사가 광양 백운산에서 좌선(坐禪)을 오랫동안 하고 일어나려는 순간 무릎이 펴지지 않자 옆에 있던 나뭇가지를 잡고 일어나려 했으나 가지가 꺾어졌다. 그 때 꺾어진 가지에서 솟아나는 물방울로 목을 축였다. 신기하게도 이 물을 마신 후 무릎이 펴지고 몸이 좋아져 도선국사가 이 나무의 이름을 뼈에 이롭다는 의미로 골리수로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고로쇠 수액이 뼈에 미치는 약리효과나 그 외 다른 영향에 대한 연구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지금까지 어디에도 없다. 국립산림과학원 강하영 박사팀이 고로쇠를 포함한 수액연구 전문가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이와 함께 속설과는 달리 고로쇠 수액이 과대포장 되어 알려진 부분도 많다.
일반적으로 ‘뼈에 좋다’는 의미 자체에서 보면 도선국사가 경험한 바와 마찬가지로 고로쇠 수액은 칼슘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사실을 암시한다. 고로쇠의 주성분은 다른 수액과 마찬가지로 98%의 물과 2%의 미량요소로 구성돼 있다. 미량 성분 중에는 수목의 세포벽 구축에 필요한 당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아미노산과 미네랄이 각각 200ppm, 그 외 지방산과 비타민, 효소도 극소량 함유하고 있다. 이러한 성분들이 흡수 용이한 형태로 물에 용해되어 있는 점이 수액의 가장 큰 특징이다. 특히 칼슘과 칼륨은 시판되는 미네랄워터보다 20~30배나 많이 함유되어 있다.
수액 중의 미네랄은 일반 물 중의 미네랄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수액 내의 미네랄은 무기 또는 불활성 미네랄이 아닌 유기 또는 활성 미네랄의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인체가 흡수하기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수액은 일반물의 분자구조보다 훨씬 작은 물분자 구조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흡수도 빠르고 동시에 배설을 촉진하는 효과도 얻는다.
강하영 박사는 실험용 쥐를 통해 6주간 매일 고로쇠 수액을 투입한 결과, 골다공증 개선효과와 면역증진효과를 얻었다는 논문을 2009년 발표했다. 하지만 이 실험도 수명이 훨씬 짧은 실험용 쥐를 통제상태 하에서 지속적으로 고로쇠를 투입한 결과를 통해서 얻은 것이지, 사람을 대상으로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직 인간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은 하지 않은 상태다.
강 박사는 “실험용 쥐에 6주간 지속적으로 고로쇠를 투입한 결과를 사람에 비유하면 40년 간 계속 고로쇠를 마신 결과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고로쇠 수액이 좋은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지만 인간 신체에 긍정 영향을 미친다고 속단할 수 없는 것이다. 흔히 알려진 고로쇠 효과인 류마티스, 관절염, 위장병, 신경통, 피부미용, 신장병 등은 검증되지 않은 결과일 뿐이다.
마시는 방법도 속설과는 다르다. 일반적으로 온돌이나 찜질방에서 땀을 흘리며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양을 먹어야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조금씩이라도 지속적으로 마셔야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는 강 박사의 실험을 통해서 확인됐다. 아마 생산업자들의 판매 증진을 위한 홍보효과의 극대화로 잘못 알려진 결과일 수도 있다. 배출이 빠르면 체내의 노폐물을 배출시키는 효과, 즉 의학적으로 이뇨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단기간에 신체의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무리다. 사람들이 마치 한약 한제를 먹고 효과를 기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약은 기본적으로 신체의 기운을 보완하거나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지 치료와는 다른 차원의 처방이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고로쇠 수액을 지속적으로 마시기엔 계절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늦겨울부터 초봄까지 약 50일간 채취하는 고로쇠 수액의 보관방법이나 생산법의 획기적 개선 없이는 연중 마시기는 불가능한 현실이다. 연중 마실 수 있는 고로쇠 수액을 개발할 수 있다면 벌써 기업들이 뛰어들었을 것이고, 생산량이나 판매액도 엄청나게 늘었을 것으로 보인다.
강 박사는 “계절적 한계를 극복하는 고로쇠 생산이나 보관에 대한 연구에 일부 기업이 진행상황이나 제품화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기능성 음료로 시판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로쇠 생산은 실제로 남부지방에서 압도적으로 많다. 2006년의 전남과 경남이 전체 총생산량의 7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중부지방이 고로쇠 채취에 가장 좋은 조건은 갖추고 있다.
먼저 고로쇠 채취의 최적 조건은 최저기온이 영하 4℃까지 내려가야 하고, 최고 기온은 영상 12℃까지 나와야 한다. 즉 일교차가 최소 10℃이상 나야한다는 것이다. 또 큰 일교차가 얼마나 지속되느냐에 따라 생산량이 크게 차이난다.
이러한 조건을 갖춘 일수는 남부지방은 중부지방의 3분의 2밖에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최적의 조건을 갖춘 중부지방에서 고로쇠 평균 채취량은 나무 1본당 연간 20ℓ 내외다. 2009년 수액 채취현황만 보더라도 남부와 전남, 경남의 수액채취 허가본수는 전체 56% 남짓 될 뿐이다.
물론 남부지방이 고로쇠 채취자원이 많은 반면 중부지방은 험한 지역이 많고 눈이 녹지 않아 운반에 따른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생산량에 있어 압도적 차이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재 산림청과 한국수액협회에 신고한 회원은 전국적으로 1,900여 가구에 이르나 실제적으로 약 3,000여 농가에서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웰빙 바람’을 타고 판매량도 생산량보다는 더 큰 비율로 성장하고 있는 현실이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물이나 외국 수액을 탄 고로쇠가 시판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생산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부유물이 뜨는 것은 고로쇠 외 다른 불순물을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생산과정에서의 안전성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공업용 파이프나 비닐을 통해 채취한 수액은 그 속에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이 용해되어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즉 환경호르몬이 고로쇠 수액에 녹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의학계에서는 “고로쇠 물을 맹신하기 보다는 한 계절을 대표하는 특산품으로 부담 없이 즐겨 마시는 물의 한 종류로 인식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기대하고 있다. 고로쇠가 많은 소비자들의 불신을 잠재우고 계절적 한계를 뛰어넘는 생산과 보관방법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서 세계적인 기능성 음료로 각광받을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