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이 넘어가고, 경부고속도로 정중앙에 위치한 김천시가 역사와 문화와 풍광과 여유를 담은 새로운 길이 만들었다. 백두대간 황악산(1,111m) 자락을 끼고 도는 김천 직지문화 모티길이다. 황악산은 정상 비로봉을 중심으로 백운봉, 신선봉, 운수봉이 직지사를 포근히 감싸고 있다. 예로부터 학이 자주 찾아와 여러 지도에 ‘황학산’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택리지 등에는 황악산으로 명시돼 있다. 산세는 완만하나 산림이 울창한 산으로 알려져 있다. 봄에는 진달래, 벚꽃, 산목련이 볼만하고, 여름에는 계곡, 가을 단풍이 절경을 이루며, 겨울엔 설화로도 유명하다.
그 황악산을 배산으로 둔 고찰이 직지사다. 직지문화 모티길은 직지사와 대항면 주민센터 중간 지점에 있는 직지초등학교 방향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출발한다. 김천 생활개선협의회 산하 건강연구회 회원 6명과 동행했다. 모두 회장을 지낸 아주머니들이다. 원래 10여명이 참가하려고 했으나 너무 추운 날씨 관계로 나머지는 돌아갔다. 아주머니 여섯 분이 동참하니 혹한이었지만 갑자기 생기가 넘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직지초등학교에서 산머리 입구인 방하치 마을까지는 시멘트로 포장한 좁은 농로길이다. 들판의 바람이 매섭다. 살이 찢어지는 듯하다. 모두들 마스크와 모자로 중무장해 얼굴을 반쯤 가렸다.
방하치마을은 마을 경관이 아름답고, 옛 전통이 살아 쉼 쉬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눈까지 쌓여 더욱 예스런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날씨만 좋으면 한번 돌아보련만. 너무 춥다.
황악산 굽이진 길을 걸으며 마을의 역사를 되새기는 길이다.
방하치마을을 지나 산머리로 들어섰다. 의외로 들판보다 바람이 덜 불었다. 능선이 바람을 막아 주고 있었다. 길은 임도로 널찍했다. 널찍한 길 위로는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엊그제 내린 눈으로 전국이 하얀 세상으로 변했고, 길도 예외가 아니다. 눈 위로는 벌써 누군가 다녀간 발자국이 여럿 나 있다. 모티길이 점차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어가고 있다고 동행한 김천 건강협의회 아주머니들이 전했다.
“아직 완성하지는 않았지만 올 봄 직지문화 모티길이 제대로 모습을 갖추면 수도산에서 가야산까지 이어지는 종주등산과 병행해서 지리산둘레길 못지않은 등산객이나 탐방객이 몰릴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들은 이 길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했다.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도 감추지 않았다.
김천시와 대항면에서는 직지문화모티길이 지역경제에 기여할 것으로 상당한 기대를 하고 있다.
좌우로는 쭉쭉 뻗은 낙엽송들이 큰 키를 뽐내고 있다. 수종은 오동나무, 참나무, 소나무, 낙엽송 등으로 다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작나무도 대규모로 군락을 이뤄 마침 내린 눈과 색깔을 맞춰 반짝이고 있었다.
김천시와 대항면에서 경제수림으로 가꾸기 위해 수종을 한창 바꾸고 있는 듯했다. 지난해 30㏊ 규모의 호두나무를 심었다.
“몇 년 지니지 않아 호두나무와 감나무로 둘러싸인 직지문화모티길을 걸을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기존에 있던 오동나무, 참나무, 낙엽송, 자작나무도 그대로 있고요, 직지문화 모티길이 얼추 끝나는 지점에 있는 돌모마을에서는 벌써 호두나무를 분양하고 있거든요.”
아직 호두나무와 감나무는 묘목수준이었다. 정말 몇 년 뒤에 한번 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묘목들이 얼마만큼의 열매를 맺을 지 벌써부터 궁금했다.
길은 모티길 답게 꼬불꼬불 이어졌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바람이 쌩쌩 불어 온몸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몸으로 들어온 찬바람은 정신이 번쩍 들게 했지만 이내 따뜻한 온기로 변해 체온의 일부가 됐다.
삼거리가 나왔다. 방하마을에서 올라왔다고 해서 방하재다. 길은 산허리로 계속 이어지지만 방하재를 넘어가면 공자마을이 나온다. 한자도 공자와 똑 같은 공자(孔子)를 쓴다. 1700년대 중반 이, 박, 김씨 성을 가진 세 선비가 마을을 개척하여 선비들이 존경하는 공자의 이름을 본 따 공자동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산허리를 감고 도는 꼬불꼬불한 임도 모티길은 해발 600m까지 계속 됐다.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전형적으로 걷기 편한 길이다.
김천 생활개선협의회 산하 건강연구회 회원들이 김천직지문화모티길을 걷고 있다.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3분의2 가량 서서히 오르다가 나머지 3분의 1 가량을 바로 내려간다. 첫 내리막부터 급경사였다. 눈이 쌓여 제대로 내려갈 수가 없다. 전부 조심조심 몸을 반쯤 낮췄다. 아예 미끄러지듯 내려가기도 했다.
길 양쪽으로는 주로 참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참나무의 목재는 다용도로 쓰인다. 대표적인 게 참숮이다. 또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목재로 꼭 참나무를 사용한다. 여기도 예외가 아니다. 참나무로 재배하는 표고 재배지가 나왔다. 조금 더 내려오니 체험마을을 한참 조성 중이다. 산 아래쪽은 이미 조성했지만 산 위에도 만들고 있었다. 주변은 묘목들로 가득했다. 감나무와 호도나무라고 했다. 호도나무를 이곳에서는 추자나무로 부른다고 했다.
돌모마을에 도착했다. 약 200여년 전에 조씨, 류씨 두 선비가 이곳에 들어와 마을을 개척할 당시 돌이 많아 돌모(乭毛)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지금도 마을 뒤에는 돌들이 작은 산을 이루고 있다.
돌모마을은 호두나무를 분양하고 있으며, 전통주막을 복원하는 등 체험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마을 옆으로는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김천 표고버섯도 전국적으로 알아준다고 동행한 아주머니가 자랑했다.
모티길은 돌모마을을 지나 903번 지방도와 연결돼, 이제부터는 차도로 직지문화 모티길의 끝인 직지문화공원까지 가야한다. 등 뒤로 매서운 바람이 불어왔다. 산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춥다. 바람길이 있는 게 다시 한번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등 뒤로 가는 길이 바람재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분명 바람이 넘나드는 고개이리라.
마지막 직지문화공원은 직지사 바로 앞에 시비와 조각 작품, 대단위 야외전시장을 갖춘 시민들 휴식공간이다. 직지문화공원 바로 옆에는 세계도자기박물관이 있어 다양한 도자기와 크리스털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직지문화 모티길은 한마디로 역사와 문화와 걷기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명품코스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천 건강연구회 소속 아주머니 여섯 분과 함께 직지초등학교에서 출발한 직지문화 모티길을 방하치마을을 거쳐 방하재~돌포체험마을~직지문화공원까지 약 10㎞를 춥지만 전혀 춥지 않고 재미있게 답사할 수 있었다. 하산길을 제대로 조성한다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내내 인기 끌기에 전혀 손색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