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다리도 두드려보고 안 건너는 서울대 교수들, 산에는 그냥 올랐다

한국 최고의 지성인들이 산으로 갔다. 그것도 한 달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국내 이름 있는 산은 거의 다 갔고, 매년 해외산행도 빠지지 않고 있다. 갔다 오면 꼬박꼬박 단행본을 발간하고 있다. 보고서 형식의 책이 아니고, 역사와 정보, 상식, 감상문이 총망라된 재미있는 책이다. 2009년엔 <킬리만자로, 하쿠나 마타타>(서울대출판문화원), 2006년엔 <인더스강을 따라 히말라야까지>(서울대출판부)를 냈다. 바로 서울대 교수산악회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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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첫 해외산행지로 K2 트레킹을 갔을 때 K2봉을 배경으로 포터들과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이 왜 산으로 갔을까? 창립당시의 상황을 보면 이해가 된다. 2004년 2월 대통령 탄핵으로 나라가 떠들썩할 즈음 당시 장호완 서울대 교수협의회 회장이 협의회에서 ‘교수들로 구성된 산악회를 만들어 회원들의 건강증진과 친목도모는 물론 폭 넓은 대화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창립을 이끌었다. 단과대학이나 학과, 학부, 전공을 초월하여 같은 등산 동호인들끼리 대화를 자주 가져 본인과 대학, 나아가 사회발전의 기회를 가지고 제공한다는 취지였다.

초대회장은 인품 있는 원로였던 정치학과 최명 교수가 맡았다. 주위에선 그를 주선(酒仙)의 반열에 오른 인물로 평가한다. 술을 많이, 자주 마셔서 그런지 그의 주위에 사람 끊일 날이 없다고 한다. 그의 별명은 낙타. 주선의 경지에 오른 주봉(主峰)과 사람으로 둘러싸인 인봉(人峰)의 쌍봉 낙타에 곧잘 비유된다. 등반대장엔 대학시절 산악회에서 열심히 활동했던 미술대학 정영목 교수와 손병주 교수가 나섰다. 감사는 단지 경영대 교수라는 이유 하나로 김영진 교수가 2005년부터 맡았다. 물론 김 교수도 만만찮은 등산애호가인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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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석 대장이 교수산악회 교수들을 대상으로 올라갈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울대 교수협의회 산하 몇 개 단체가 있다. 비슷한 성격의 테니스회, 바둑 등은 정기적으로 회비를 내며 모임을 갖지만 교수산악회는 서울대 교수 1700여명이 전부 회원이다. 따로 회원을 조직하는 게 아니고 모두가 회원이며, 모두 산행에 동참할 수 있다. 산행 할 때마다 항상 모든 교수에게 메일을 발송한다. 참여자가 많든 적든 산행은 출발한다. 대개 한번 산행에 20여명 참여한다. 교수협의회에서 지원한 경비로 버스를 대절하고, 뒤풀이는 참가한 교수들이 각출해서 계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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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조수헌 교수가 파키스탄 현주민을 대상으로 의료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왼쪽에 앉아서 오른손을 뻗고 있는 사람이 조수헌 교수.

이들이 워킹산행만 하는 게 아니고 고교나 대학 시절 산악반 출신들로 구성된 10여명은 암벽등반을 심심찮게 즐기고 있다. 자연대 김두철 교수나 인문대 오종환 교수 등 경기고 산악부 출신인 ‘라테르네’를 중심으로 북한산과 설악산 리지를 로프에 의지한 채 워킹에서 느끼지 못한 짜릿함을 만끽한다. 특히 유일한 여성인 치과대학 이삼선 교수는 교수산악회에 들어와서 처음 접한 암벽등반에 푹 빠졌다. 자연대 김두철 교수는 “이삼선 교수는 암벽등반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인물”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 교수는 교내에서도 학생들과 어울려 일주일에 한번씩 인공암벽을 즐기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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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봉 암벽 하기 전 잠시 포즈를 취했다. 맨 왼쪽이 치과대 이삼선 교수이고 바로 그 옆이 김두철 교수.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김웅환 교수

국내 산을 다니다 보면 자연히 외국의 산으로도 눈을 돌리게 되는 법. 교수산악회도 창립 1년 반 만에 박영석 대장과 산악인 오희준씨 등과 함께 K2트레킹에 나섰다. ‘아는 길도 물어보고 안 가고,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안 건넌다’는 서울대 교수들이 어떻게 험한 고산에 가게 됐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 미리 정보가 있었더라면 지레 겁먹고 따라나서지 않았을 것”이라고 다들 입을 모았다. 한마디로 ‘초보도 전혀 문제없다’는 솔깃한 유혹에 겁 없이 덜컥 나선 셈이다.

더욱이 당시 회장인 최명 교수는 치안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는 파키스탄 외딴 지역에 동행한 부인을 홀로 내버려 두고 13일간의 트레킹을 떠났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를 정말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최 교수는 출발하자마자 너덜겅에서 넘어져 손바닥이 찢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피가 쏟아져 부인 곁으로 돌아가는 천만다행의 사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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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뒤에 보이는 홈 하나 없는 반들반들한 차바퀴를 달고 있는 짚차로 132㎞나 되는 낭떠러지 같은 길을 달렸다.

치료는 의대 예방의학 조수헌 교수가 했다. 조 교수는 1974년 인턴시절 딱 1년 간 환자를 보고 그 이후론 전공 따라 전혀 환자와 대면한 적 없었다.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마취주사를 놓고 꿰매는 수술을 시도했다. 그래도 의사인지라 무사히 접합을 잘 끝냈다.

당시 K2 갈 때 경영대 김영진 교수도 아찔한 경험을 했다. 파키스탄 스카르두에서 출발지인 아스콜리까지 돌과 모래로 뒤덮인 사막과 다름없는 132㎞ 길을 짚차로 이동했다. 한쪽은 천길만길 낭떠러지이고, 다른 쪽은 사면을 깎은 산이었다. 폭은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았다. 타고 갈 차량의 차바퀴를 우연히 보니, 바퀴홈이 다 닳아 반들반들했다. 갑자기 모골이 송연해지면서 차 타기가 싫어졌다. 그렇다고 걸어갈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탔지만 도착하기까지 7시간 내내 조마조마하며 불안한 마음을 달래야 했다. 김영진 교수와 조수헌 교수는 공히 “지금 가라고 하면 아마 아무도 안 갈 것”이라며 “당시 멋모르고 따라 나선 트레킹이 매년 이어져 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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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 트레킹을 출발하기 전 고사를 지내고 있다.

위험천만한 상황은 이뿐만이 아니다. 사범대 김안중 교수가 2대 회장이었던 2007년 일본 북알프스로 임원산행 갔을 때였다. 여름 장마로 물이 넘쳐흐르고 눈이 녹고 있었다. 곧 위험이 닥칠 줄 모르고 물을 피해 정상을 향해 올랐다. 눈이 녹아 약해진 지반은 급기야 바위와 돌을 쏟아 내렸다. 미처 피하지 못한 김 교수는 그대로 돌에 부딪혀 큰 상처를 입었다. 굴러 내리는 돌은 그칠 줄 몰랐다. 산중이라 통신이 두절돼 연락도 되질 않았다. 일본 구조대와는 연락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통화를 시도했다. 어쩐 일인지 딱 한번 휴대폰이 터졌다. 긴급 상황을 알리고, 구조를 요청했다. 한국에서 연락받은 사람이 일본 구조대에 연락해서 다음날 무사히 하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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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장마로 인한 약해진 지반으로 돌이 굴러내려 상처를 입은 김안중 교수가 휄체어에 앉은 채 귀국하고 있다. 왼쪽 여자가 이순형 교수.

당시 흉부외과 김웅환 교수가 김안중 교수를 응급처치하고 큰 바위 밑에 피신하고 있을 때 상황을 적나라하게 회상했다. “처음엔 바위 내려오는 소리에 무섭고 공포에 질렸으나 워낙 많이, 계속 내려오니 나중엔 오히려 아름답게까지 들리더라.” 바위 내려가는 소리가 아름답게 들릴 정도면 어느 상태일까?

2009년엔 장비 없이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free standing) 세계 최고봉 킬리만자로에 도전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참가할 때부터 망설이는 사람이 많았다. ‘놀거나 여행하는 자리에 따라가서는 후회한 적이 없고, 술 마시는 자리에 따라 가서는 후회 안 한 적이 없다’고 해서 단순히 따라 나선 교수들이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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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파타르 트레킹에서 푸모리를 바라보며 나아가고 있다.

자연대 최우갑 교수는 자신이 극심한 고소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구경하는 것보다 더 이상 재미있는 것은 없다’는 격언을 되새기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최 교수는 킬리만자로 등산 출발 전까지 ‘누군가 1억원을 준다면 포터의 경험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 있게 말 했지만 하산해서는 “절대로 못하겠다”고 킬리만자로 고소고통을 한마디로 대변했다. 포터들이 대단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다시금 떠오르더라는 거였다.

일렬로 서서 정상을 향해 가는 행렬에 앞사람이 방귀를 트면 바로 뒤 사람에게 처음에는 무척 미안한 생각을 하지만 나중에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지나쳤다고 한다. 방귀는 추진을 받아 산행에 도움이 된다고 우스개 소리를 했다. 반면 트림은 역추진으로 자신이 피해를 보니, 입을 아래로 향하던지, 고개를 돌려서 산 아래로 향해야 효과적이라고 말해 한바탕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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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뒤 에베레스트와 오른쪽에 있는 푸모리를 배경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킬리만자로에 학교 산악부 대표로 동행한 미술대 이슬비 양도 “누군가 방귀를 한번 트자, 18명이 일제히 방귀 하모니를 이루게 됐다”고 했다. 그녀는 고소를 극복하기 위해 자이데나를 한 알 먹고 잤더니 숨이 차고 심장이 어찌나 뛰는지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경험을 했다. 아마 남자들이 정력에 좋은 음식을 먹고 잠을 못 자는 그 짝이 아닌가 여겨지더라는 거였다.

그녀는 산행 중 고소 못지않게 귀찮은 일로 소변보는 것을 꼽았다. 일을 보느라 앉았다 일어나면 머리가 핑 돈단다. 그럴 때면 소변밭에 주저앉아 버리고 싶을 정도로 아찔했다고 전했다. 그 순간을 피하기 위해 호흡을 가쁘게 쉬면서 천천히 일어나는 나름대로 요령을 터득했다. 볼 일 보고 가쁜 숨을 내쉬면서 천천히 일어나는 모습이 조금 우습긴 해도 바지를 올리기도 전에 쓰러지면 안 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얼어난 다음에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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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트레킹에 참가한 교수들이 설산을 배경으로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다.

킬리만자로 등산은 교수산악회에 몇 가지 기록을 남겼다. 우선 참가자 전원이 정상을 밟았다는 사실이고, 두 번째로 산행 시 항상 겪었던 사고를 이번에는 무사고로 넘겼다는 점이다.

3대 회장인 김두철 교수는 “이번 산행 전에 개인적으로 인대가 끊어지는 사고를 당해 교수산악회가 매년 겪는 징크스를 깰 수 있었다”며 “앞으로의 산행은 무사고로 진행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몇 안 되는 여성으로 참가한 생활과학대 이순형 교수는 “왜 높은 산에 가려고 하느냐며 항상 낮은 산에 가자고 말했는데, 내가 의외로 고소를 겪지 않고 정상을 밟았다는 사실을 다들 놀라워했다”며 “아마 나이가 드니 머리가 비어서 그런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해 다들 한바탕 웃었다. 이순형 교수는 2006년부터 지금까지 부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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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북알프스 등산에 나선 교수산악회 회원들이 안개가 자욱한 설산 위로 정상을 향해 한 걸음씩 옮기고 있다.

현재 부회장인 의대 조수헌 교수는 산행 시 팀닥터로 비아그라나 자이데나, 레비트라 등 고소증세 완화에 도움 되는 혈관확장제를 항상 준비해간다. 비아그라는 학계에서도 인정받을 만큼 많은 논문이 발표되고 있다고 전했다.

교수산악회가 산행만 하는 게 아니고 여러 곳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해외 산행 때는 기회가 되면 원주민들을 상대로 의료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조수헌 교수가 주로 나서고 있다.

교내에서는 젊은 학생들에게 호연지기를 심어주기 위해 ‘산과 인생’이라는 2학점 교양과목이 개설됐다. 주 강사진은 교수산악회 교수들이 돌아가면서 산과 인생에 대한 얘기와 경험을 들려주면서 실습한다. 개강 첫해부터 학생들의 반응도 좋았다. 수강 정원이 30명이었으나 36명이나 신청했다. 등산을 통해 인내와 극기과정을 가르치고, 캠퍼스를 내려다보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학교에 대한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내년부터 두 강좌로 늘릴 것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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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교수산악회가 돼지머리를 놓고 시산제를 올리고 있다. 이들의 시산제는 9월에 한다.

지난 연말 정기총회에서 경영대 있다는 이유만으로 감사를 맡았던 김영진 교수가 4대 회장을 맡았다. 김 교수는 사실 대학 시절부터 열렬한 산꾼이었다. 재학시절 휴강, 결강이 반복되다보니 자연히 학교 산악반에 가입하여 전국의 산을 누볐다. 유학 후 1982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했을 적엔 학교 개구멍을 통해 관악산을 등산하곤 했다. 연구실에서 능률이 오르진 않을 때 바로 옷을 갈아입고 산을 올랐다고 한다. 지금까지 총 700~800회 이상은 족히 될 것이라 한다. 지난해에는 신입생 모두를 데리고 특전사 1박2일 야간훈련을 했을 정도다.

이들은 교수산악회를 통해 창립 취지대로 다양한 학문을 접하고 시야를 넓히는 계기로 삼고 있다. 조수헌 교수는 “타 단과대학 교수들과의 교류를 통해 지식의 외연을 넓힐 수 있는 기회로 굉장히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며 “자신의 학문적 관점을 벗어나 복합적 관계를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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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테르네 출신인 인문대 오종환 교수가 인수봉 취나드B코스를 오르고 있다.

김영진 교수도 “똑 같은 현상에 대해 약대, 의대, 자연대 교수들이 달리 해석하는 대화를 나누면 상당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순형 교수는 “히말라야에 갔을 때 야크 똥을 원료로 난로를 피웠는데, 전공 교수에 따라 다른 진단과 처방을 내놓았다”며 “지식의 보완기능과 현상을 보는 다양한 시각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임 회장인 김두철 교수는 “교수산악회의 전임 임원들이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여서 그런지 교수 수십여 명이 몰려 다녀도 전혀 비난이나 잡음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며 “이는 일부 핵심멤버들만의 산행이 아니고 누구나 첨가할 수 있는 기회가 항상 열려있고 모두의 참여를 지향하기 때문이며, 또한 참가자들의 면면이 누구나에게 호감을 주기 때문일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산행 전 교수에게 돌리는 메일에서 이전 산행기를 첨부하면 모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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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산악회 암벽팀이 아찔한 설악산 암릉을 지나고 있다.

산을 통해 학생들에게 호연지기와 극기, 인내를 가르치고, 교수들 간에도 단합과 학문적 발전을 도모하는 서울대 교수산악회. 이들을 통해 산에서 서울대 교수 1700여명 전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 올수 있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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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서울대 인공암장 확장 준공식을 치르고 있다. 사진 서울대 교수산악회 제공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2 Comments

  1. 정의창

    04.27,2010 at 5:46 오전

    좋은 글에 대해 감사합니다. 그리고, 외국에 있어 오랫동안 뵙지 못했던 산악부선배님들을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어 또한, 감사합니다.
    본문 내용중 "김웅환"교수는 오기로 정확한 이름은 "김웅한"교수입니다.    

  2. 靑陵

    04.27,2010 at 12:37 오후

    서울대 교수님들의 등산장면을 통해 많은 이야기들과 모습들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소중한 자료 얻어가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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