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淸凉山)은 경북 봉화군 명호면과 재산면, 안동시 도산면과 예안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어 예로부터 소금강으로 불려진 명산이다.
기록에 의하면 청량산은 고대에는 수산(水山)으로 불려지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청량산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조선시대 풍기군수 주세붕이 청량산을 유람하며 명명한 12봉우리(일명 6.6봉)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류희지가 김생굴을 보고 시를 한 수 남겼다.
신라 김생이공부를 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김생굴.
김생굴 바로 옆에 김생폭포가 있다.
높이는 870m로서, 산세가 수려하여 소금강(小金剛)이라고도 불렸다. 최고봉인 장인봉(丈人峰)을 비롯하여 외장인봉(外丈人峰), 선학봉(仙鶴峰), 축융봉(祝融峰), 경일봉(擎日峰), 금탑봉(金塔峰), 자란봉(紫鸞峰), 자소봉(紫宵峰), 연적봉(硯滴峰), 연화봉(蓮花峰), 탁필봉(卓筆峰), 향로봉(香爐峰) 등의 열두 봉우리가 절경을 이룬다.
그중에서도 금탑봉 오른쪽의 절벽인 어풍대(御風臺)를 최고의 경치로 꼽는다. 그 밖에도 신선이 내려와서 바둑을 두었다는 신선대, 선녀가 가무 유희를 즐겼다는 선녀봉을 비롯하여 뛰어난 절경이 많다. 낙동강이 이 산의 서쪽 기슭을 흐르며, 반곡 폭포(盤谷瀑布), 산북 폭포(山北瀑布) 등의 폭포를 이루고 있다.
청량정사 안내문.
청량정사의 모습.
청량정사 바로 밑에 청량사가 있다.
청량산에는 지난 날 연대사(蓮臺寺)를 비롯한 27개의 절과 암자의 유지가 있었으며, 지금은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는 청량사 유리보전(琉璃寶殿)과 응진전(應眞殿)이 남아있다. 또한 퇴계 이황이 공부한 장소에 후학들이 세운 청량정사(淸凉精舍)와 통일신라시대 서예가 서성(書聖) 김생(金生)이 글씨공부를 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 김생굴(金生窟), 대문장가 최치원이 수도한 고운대(孤雲臺)와 독서대(讀書臺) 및 풍혈대(風穴臺),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쌓았다는 산성과 은신한 것으로 알려진 유명한 오마대(五馬臺)와 공민왕당(恭愍王堂) 등이 있다.
기기묘묘한 봉우리가 많다. 그래서 주세붕이 청량산 6,6봉이라고 했다.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와서 쌓았다는 산성이 저 멀리 보인다.
청량산의 남쪽 봉우리들이다.
조선 시대에는 퇴계 이황(李滉)이 도산 서원을 근거로 하여 후학을 가르치며 학문을 연구하다가 수시로 청량산으로 들어가 수도하였다고 한다. 그는 ‘청량산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 산을 매우 사랑하여 이 산에 관한 51편의 시를 남겼고, 〈청량산록발(淸凉山錄跋)〉이라는 글도 지었다. 또 청량산을 ‘오가산(吾家山)’이라고도 하였는데, 퇴계 이황이 거처하며 학문을 연구하던 자리에 후인들이 기념으로 세운 청량정사(淸凉精舍)라는 건물이 지금도 남아 있다. 이곳의 특산물로는 송이버섯과 대추가 있으며 예로부터 대궐이나 사찰 건축재로 이용된 춘양목(春陽木)이 유명하다.
자소봉 정상엔 주변 사방을 둘러볼 수 있게 망원경을 설치해 놓았다.
실제 자소봉이다. 사람들이 올라갈 수 없어 바로 그 옆에 봉우리와 망원경을 설치해 놓았다.
자소봉에서 정상 방향으로 1킬로쯤 떨어져 있는 탁필봉. 여기도 올라갈 수 없어 봉우리 옆에 정상 비석을 설치해 놓았다.
청량산에 얽힌 퇴계와 주세붕의 재미있는 일화 한토막이 있다. 주세붕이 청량산의 중국식 봉우리 이름을 우리식으로 바꿔 명명한 사실과 관련 있는 것이다.
퇴계는 1552년 명종 7년에 주세붕의 <청량산 유산록>에 발문을 다음과 같이 붙였다.
‘위대하여라, 선생이 이 산에 얻은 것은! 홍몽한 상태로부터 음양의 기운이 나뉘어 높은 하늘과 깊은 바다의 기운이 형체를 응집한 이래로 몇 천만 겁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하늘이 갈무리한 승경과 땅이 감추어 둔 기이한 구역이 바로 선생의 글을 기다려서야 나타나게 되었으니, 이것이 어찌 이 산으로서는 커다란 만남이 아니었겠는가? 하물며 이 산의 여러 봉우리들이 모두 불경의 말과 여러 부처의 음란한 이름들을 지니고 있었던 것은 정말로 이 선경의 모욕이요, 우리 유학자의 수치였다. 선생이 일일이 고쳐 주시고, 통렬하게 씻어내어 주셨으니, 그로써 산신령을 위로하고 정채(精彩)를 빛나게 하신 업적이 얼마나 크냐!’
주세붕은 퇴계의 글을 보고 ‘정말 어린아이나 아낙네가 지을 만한 그런 글이다’라고 깎아내렸다. 하지만 퇴계는 그 점에 한마디 언급 않고 주세붕을 선배로서 깎듯이 예우했다. 넉넉한 인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청량산은 1982년 8월에 경상북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07년 3월에 청량사 주변지역을 중심으로 공원 일부가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 23호로 지정되었다.
제일 뒤에 보이는 봉우리가 정상이고, 바로 그 아래에 봉우리와 봉우리를 연결하는 하늘다리가 있다.
청량산 명물인 하늘다리.
하늘다리에 대한 안내판.
하늘다리에서 주변 경관을 조망.
하늘다리에서 남쪽으로 기암절벽이 두루마리같이 펼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