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화산 폭발가능성 80%”… 1000년·100년·12~13년 세 주기설 모두 겹쳐

백두산 천지화산이 2002년부터 더욱 활성화(activity)해져 2014~2015년쯤 다시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같은 주장의 근거는 최근 백두산의 잇따른 지진으로 1999년 백두산 인근에 화산관측소를 설치한 중국학자들의 연구조사결과에 따른 것이다. 부산대 윤성효 교수는 중국 지질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소개하면서 2009년 5월 25일 4.7규모의 지진과 2010년 2월 18일 두만강 하류 러시아와 중국 국경 부근에 6.9규모의 강진이 발생하면서 백두산 지하의 마그마를 자극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발표했다. 마그마의 자극은 화산분화를 촉발하는 직접적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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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가 1000년, 100년, 12~13년 주기 등 세 가지 주기가 동시에 겹쳐 몇 년 내 다시 분화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주목을 받고 있다.

백두산 화산폭발 추가 정황으로는 지난 2002년 6월 중국 동북부 왕청현에서 규모 7.3의 지진과 백두산 천지의 지형이 조금씩 솟아오르는 현상, 그리고 과거 946년과 947년 분화한 백두산이 세계 화산폭발기록 역사상 가장 큰 규모였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백두산 화산분화는 지구 유사이래로는 세계 5번째 안에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 교수는 “원래 중국학자들은 백두산 화산분화의 특성에 따라 2004년이나 2005년쯤 백두산 천지분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냥 넘어가 매우 안도하더라”며 “그러나 2002년 이후 더욱 활성화해진 마그마 활동이 2014년이나 2015쯤 분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확신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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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지진과 화산가스 방출로 백두산 나무들이 말라죽고 있다. 재분화의 전조들이다.

백두산 화산 분화 가능성은 개별 분화가 갖는 주기에 의해서도 나타난다. 백두산 분화는 946년과 947년에 폭발한데 이어 1014~1019년, 1122년, 1176년, 1199~1201년, 1217년, 1373년, 1401~1406년, 1597년, 1668년, 1702년, 1903년 분화한 기록이 나온다. 이는 시기적으로 정확하게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대략 큰 주기는 1000년, 작은 주기는 100년, 세부 주기는 12~13년 단위로 크고 작은 분화가 있었던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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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에는 화산폭발의 전조로잇따른 화산가스가 용출하고 있다.

백두산은 지금 이 세 주기가 겹치고 있는 사실에 화산학자들은 주목하고 있다. 중국 국가지진국 웨이하이취안((魏海泉) 박사는 “화산이 100년 내 재폭발 할 가능성은 100분의 10~20정도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는 것이다. 중국의 원로학자인 중국과학원 류제치 박사가 백두산의 1000년, 100년 주기설을 주장한 학자이다. 이 세 주기가 겹치면 분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80%이상 된다고 주장한다.

윤 교수는 이어 “분화규모나 시기, 장소 등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마그마의 수직구조를 제대로 파악해야한다”며 “백두산 지하 약 10㎞, 20㎞, 27㎞, 32㎞ 등 4층으로 돼 있는 단층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지하 10㎞밑에 있는 마그마가 폭발한다면 아마 1,000년 전에 있었던 분화규모가 재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지하 10㎞의 마그마는 천지 바닥 2㎞ 안까지 접근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이는 분화징조로 충분하다는 게 윤 교수의 의견이다.

백두산 분화의 또 다른 전조도 있다. 1990년대 중반에는 백두산 주변의 지진활동이 왕성해지면서 중국학자들은 재분화를 경고했고, 그 결과 1999년 중국이 백두산에 화산관측소를 설치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백두산 주변에서만 빈번하게 군발지진이 발생하더니 2002년 말부터 지진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2002~2003년엔 한달 평균 270여회 발생하던 군발지진이 그 이후엔 300회까지 육박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규모가 더욱 커진 사실이 중국의 화산관측소 자료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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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화산폭발의 흔적들이 수백 년이 지나도 계곡과 산사면 곳곳에 그대로 남아있다.

윤 교수가 지적한 1000여 년 전 백두산 천지분화는 화산폭발지수(VEI)가 7.4로, 인류가 화산폭발을 기록한 이래 가장 큰 규모로 꼽히고 있다. 화산폭발지수는 화산폭발의 지속시간, 분출물의 높이 및 양 등을 종합해 화산폭발의 강도를 나타내는 수치로, 지수 1이면 소규모, 2~3이며 중규모, 4이상이면 대규모 폭발로 분류한다.

당시 백두산 화산분화 기록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자.

<고려사> 세가(世家) 권지2에 따르면 ‘고려 정종 원년 是歲天鼓鳴赦(시세천고명사)’라고 나온다. 946년 ‘이 무렵 하늘에 고동소리가 들려 사면했다’는 뜻이다.

일본의 흥덕사연대기에 ‘天慶九年十月七日夜白灰散如雪(천경9년10월7일야백재산여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946년 화산재가 마치 눈과 같이 내렸다’고 전하고 있다.

일본약기(日本略記)엔 ‘正月十四日庚子此日空中有聲如雷(정월십사일경자차일공중유성여뢰)’이라고 적혀 있다. ‘947년 2월 7일에 하늘에서 마치 천둥과 같은 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4.압록강(대협곡) 화산회류 퇴적층.JPG

10세기 백두산 분화로 생긴 압록강 상류 대협곡에 있는 화산재 퇴적층.

위의 기록은 946년과 947년 2년 연속 화산 분화했다는 기록이다. 946년은 1차 폭발로 플리니식 분화가 일어나 화산재까지 뿜어내고 있었던 상황을 보여주며, 947년 2월7일엔 마그마의 최대 분출로 화산이 폭발해서 거대 화쇄류 분화가 일어난 상황을 말하고 있다. 2년 연속 일본에까지 그 영향을 크게 미친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일본 화산학자들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백두산이 10세기 중반에 대규모 분화를 일으켰을 때 분출물 량은 83~117㎦로, 지난 아이슬란드 화산폭발의 1천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와 같이 화산재의 피해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것으로 지적했다. 화산재는 최첨단 정밀기계산업에 치명타를 가한다고 알려져 있다. 화산재가 비행기나 차의 엔진에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엔진에 공회전을 일으키게 만들고, 급기야 오작동이나 정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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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기 때 분출한 백두산 화산분화로 인한 화산재가 일본 북부 아오모리 지방에 아직까지 퇴적층으로 쌓여 있다.

지난 1991년 필리핀의 피나투부 화산이 분화했을 때 미군 클라크 공군기지를 옮겼다. 이는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화산재의 영향으로 제트기가 엔진 정지 우려로 이륙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윤 교수는 강조했다.

윤 교수는 화산재와 마그마분출에 이어 천지에 있는 20억t의 물에도 주목했다. 백두산은 4000여 년 전과 1000여 년 전에 폭발적인 대분화가 일어나면서 성층화산체의 꼭대기 부분이 파괴, 함몰돼 거대한 호수가 만들어졌다. 천지 내에는 크게 3개의 분화구가 있는데, 이 중 2개가 946년과 947년의 대폭발 당시에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백두산 천지의 모습은 불과 10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얘기다.

천지의 20억t의 물이 1000여 년 전의 분화 규모로 마그마와 함께 분출하면 반경 100㎞는 초토화 된다고 보면 된다. 막대한 양의 암석조각, 화산재, 가스, 물 등이 뒤섞여 계곡이나 산비탈을 타고 내리면서 주변 식생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8.946년 화산재와 부석층.JPG

10세기에 분화한 백두산 화산재와 부석층이 당시의 엄청난 폭발규모를 짐작케 해준다.

윤 교수는 “북한의 붕괴와 상관없이 남한도 화산재와 화산비의 영향권에 들 수 있다”며 “정부 차원의 화산에 대한 국가경보체계와 국민행동지침을 미리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000여 년 전의 백두산 화산폭발로 발해의 멸망설도 있다. 이는 지질학자와 역사학자 간의 논란이 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역사학자들은 발해의 멸망은 926년으로 백두산 화산폭발은 946년과 947년인데 시기적으로 맞지 않아 직접 관련이 없으며 설득력도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고려의 엘리트 이주민들이 건국한 발해가 별다른 이유도 없이 200여 년 만에 멸망한 이유에 대해서는 미스터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이에 대해 윤 교수를 포함한 지질학자들은 반박한다.

“역사학자들의 주장은 화산활동의 특성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백두산은 대폭발을 일으키기 수십 년 전부터 분화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농작물 냉해와 기근이 발생해 민심이 국가를 떠나 있었다. 이로 인해 거란이 별다른 전쟁 없이 쉽게 발해를 접수할 수 있었다. 이 같은 기록은 중국 역사서 <요서>에 ‘이심’이라고 나온다. 이심은 ‘국민들 마음이 국가를 떠났다’는 의미다. 역사학자들도 사건의 전후맥락을 잘 봐야한다.”

화산 분화의 영향은 냉해와 기근, 화산재의 영향뿐만이 아니라 기온을 떨어뜨리기까지 한다. 1883년 인도네시아 크라카토아 화산 분화 후 그 다음해 여름이 없었다고 한다. 미세한 화산재가 대기 성층권에 올라가 태양복사열을 줄이는 영향을 미친다. 이로 인해 일시적으로 한랭화를 초래해 모든 동식물에 심각한 피해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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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기 폭발한 백두산 화산으로 백두산 일대가 허연 화산재로 뒤덮였다.

1000여 년 전 백두산 분화가 일어났을 때 중국 광동성에서 여름에 동사자가 발생했다는 기록도 있다. 여름 동사자는 평상시 기온이 26℃ 전후를 기록하다 갑자기 일시적으로 2~3℃나 3~4℃ 낮아지면 그 날씨조건에 맞지 않아 견디지 못한 사람은 동사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필리핀 피나투부 화산분화 후 북반구 기온이 평균 0.5℃ 떨어졌다는 사실은 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외에도 산성비가 내려 토양을 산성화 시켜 식물성장을 억제하는 등 미치는 영향을 실로 매우 크다.

엄청난 피해를 미칠 백두산 분화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 일까?

윤 교수는 “1000여 년 전의 규모와 비슷하다고 가정했을 때 북한의 붕괴와 상관없이 반경 100㎞ 정도는 직접 피해를 입을 것으로 보여 지며, 마그마의 엄청난 폭발로 천지에 있는 20억t의 물이 함께 쏟아지면 주변은 가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피해규모가 클 것”이라며 “화산재는 보통 편서풍의 영향으로 함경도와 일본 북부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등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람의 방향은 항상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경우의 수는 희박하지만 북풍이 불 땐 강원도와 경기도 일부가 영향권에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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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부터 백두산 지진과 횟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그래프.

화산 분화는 직접, 간접 피해는 엄청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도 있다. 먼저 토양을 비옥하게 해줘, 식물 성장에 중요한 자양분을 남긴다. 뿐만 아니라 용출하고 남은 마그마는 땅 속에 머물러 지열발전소에 이용되는 경우도 있다. 현재 일본과 뉴질랜드에서는 실제로 지열발전소로 상당량의 전력을 확보하고 있다.

윤 교수는 “우리 국민들은 화산에 대한 준비교육이 전혀 돼있지 않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화산재 경보체계를 만든다든지 하는 등의 국가차원의 지침과 교육을 마련해야 한다”며 “화산재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나 화쇄류의 흐름과 파급효과 등을 교육시키고, 기상청에서는 화산전담팀을 만들어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사진 윤성효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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