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석탑은 언제, 무슨 이유로 쌓기 시작했으며, 어느 산에나 보이는 돌탑은 또 쌓았으며, 석탑과는 무슨 관계가 있고, 차이점은 무엇일까?
석탑의 유래는 인도 말로 스투파(stupa)라고 하는 부처님의 묘지에서 비롯된다. 부처님의 장례가 끝난 뒤 그 사리를 8대 부족국가에 분배하고, 사리를 봉안할 불탑을 건립했다. 불탑 속에 부처님의 사리와 관련 유물을 보관하면서 본격 석탑을 쌓기 시작했다. 지금 고승의 사리를 안치한 부도(浮屠)와 같은 성격이었다.
월출산 도갑사에 있는 석탑. 부처님의 묘지에서 유래한 석탑은 진신사리와 유물 보관장소로도 활용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오기 전인 3~4세기까지는 석탑이나 불탑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그 이후부터 전국에서 일제히 석탑이 등장한다. 석탑 속에는 고승의 진신사리뿐만 아니라 불교 관련 유물도 함께 보관돼 지금 많은 보물이 석탑 속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유명 사찰의 석탑 속에는 특히 중요한 유적들이 많이 발굴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와 같이 석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는 대상으로 출발하며, 불교의 문화양식으로 발전해왔으나 요즘은 장식용으로 건립하는 경우가 많다. 초기의 목적이 변질된 것이다.
불교 이전 우리나라의 장례는 고인돌이나 돌로 덮어 매장하는 방식과 흙으로 매장하는 방식 등 계층에 따라 다양했다. 고창이나 강화도 등에서 발견되는 고인돌은 세계적인 고분 유적으로 고고학자들의 많은 관심을 끌고 있기도 하다.
돌탑은 어느 산에서나 쉽게 볼 수 있으며, 호신용, 무기용, 방어용 등 다양하게 활용했다.
산에 가면 어디서나 볼 수 잇는 석탑과 비슷한 돌탑은 석탑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돌탑은 석탑의 목적과 달리 군사용이었고, 보호용이었고, 안전 기원용으로 발전했다.
돌탑은 선사시대 이래 험준한 고갯길에 무더기로 쌓았다가 맹수를 만나면 돌을 사용하여 물리쳤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다시 돌무덤을 쌓아놓았던 데서 유래한다. 일종의 신체 보호용이었고, 방어용으로 사용한 돌무덤이었다.
옛날에 우리나라에는 돌을 던져 전투를 하는 석자군(石子軍)이라는 군대가 있었다.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서 앞치마로 돌을 날라 석전石戰)으로 왜군에게 큰 피해를 입힌 석전 기록은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정월 대보름과 단오절의 돌팔매 놀이는 편싸움 또는 석전이라고 하는데, 고구려와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 왕이 직접 참관한 기록까지 나온다. 신라시대 석역당(石役幢), 고려 때 석역군(石役軍), 조선시대 척석군(擲石軍)은 모두 석자군과 같은 군편제 였다.
무덤의 또다른 형태인 고인돌.
그 후 다른 병기의 발달로 원시의 돌무기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으나, 사람들은 오랜 세월의 습관대로 길가의 돌무더기를 보존해왔으며, 여행길에 맹수나 산적들로부터 안전을 기원하는 역할을 대신했다. 즉 돌무더기가 마을의 석성황(石城隍)이라 부르며, 두렵고 공경하는 대상으로 발전했다.
우리나라에서 돌탑을 가장 많이 쌓은 고승관 교수는 “돌탑은 마을의 수호신이었고, 전쟁이 나면 무기로 사용한 걸로 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