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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만에 개방 가야산 만물상… 만물의 형상 띤 ‘자연의 교향악(岳)’이고 기암괴석 향연


국립공원 지정이후 38년 만에 등산로를 개방한 가야산 만물상. 한마디로 ‘기암괴석의 향연’이고 ‘자연의 교향악’이었다. 코끼리바위, 돌고래바위, 기도바위(일명 부처․불상바위), 두꺼비바위, 쌍둥이바위 등 갖가지 모양을 한 바위가 지천에 뽐내는 듯 널려 있다. 기도바위는 아직도 기도가 끝나지 않은 듯 세상을 등지고 면벽 좌선하는 모양이다. 수천 년의 세월을 버텨온 그 자세가 언제쯤 끝이 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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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만에 개방한 가야산 만물상 능선은 만물의 형상을 띤 기암괴석의 향연장을 방불케 했다.

코끼리바위는 몸통을 감추고 수줍은 듯 길쭉한 코만 드러내고 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다. 가만히 턱을 괸 형상의 얌전한 돌고래바위가 있는 반면, 마치 먹이를 달라는 듯 점프를 하는 듯한 모습도 있다. 두꺼비바위는 원체 덩치가 큰 녀석이라 옆을 지나쳐도 그 형체를 금방 알아차릴 수 없다. 한참을 지나 뒤돌아봐야 제대로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그 외에도 광개토대왕비석 같이 생긴 바위, 쌍둥이바위 등등 그 형상은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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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겁의 세월동안 면벽좌선하는 듯한 모양을 띤 불상바위.

비바람에 깎이고 씻긴 기암괴석들은 억겁의 세월을 대변하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꿋꿋하게 살았노라’고. 그 긴 세월동안 각각의 바위들은 마치 ‘자연의 교향곡’이라도 켜는 듯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는 모습으로 거듭났다. 스스로 ‘교향악’이라고 불러달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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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바위.

만물상 능선의 백미는 그 능선 끝 지점에 있는 상아덤까지 계속된다. 상아덤에 올라서면 만물상의 모든 형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한참을 이리저리 뜯어본다. 이쪽, 저쪽으로 방향을 돌아가며 살펴본다. 카메라 셔터를 아무리 눌러도 지겹지 않다. 그런 만 가지 형상을 한 만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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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왕비를 닮은 비석바위.

가야산은 원래 통일신라시대 최고의 천재 고운 최치원 선생의 산이었고, 예로부터 오대산, 소대산과 더불어 삼재(三災, 화재․수재․풍재)를 피할 수 있는 깊은 산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귀중한 유산 팔만대장경도 첩첩산중 깊은 곳, 가야산에 보관했던 것이다. 또 <여지승람> 권30에 옛 기록을 빌어 ‘가야산의 모양새는 천하에 으뜸이요, 지덕이 또한 비길 데 없다(古記云伽倻山形絶於天下之德雙於海東)’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로부터 명산으로 꼽힌 기록은 곳곳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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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구치는 자세의 돌고래바위.

가야산의 대표적 인물인 최치원은 당나라 과거시험에 합격한 뒤 반란을 일으킨 황소를 글로서 격퇴한 ‘토황소격문’으로 신라에서보다 당나라에서 더 유명해진 인물이다. 고향이 그리워 17년간의 당나라 생활을 접고 귀국한 고운 선생은 6두품 집안 출신으로 엄격한 골품제 사회였던 신라의 신분장벽에 막혀 더 이상 오르지 못하자, 세상을 등지고 이곳저곳 떠돌다 마지막 입산한 곳이 바로 가야산 홍류동계곡 이었다. 홍류동계곡 주위엔 지금도 그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만큼 깊었으니 당연히 삼재를 피할 수 있었던 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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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같은 바위가 나란히 서 있어 쌍둥이바위.

고운 선생이 가야산의 깊은 계곡과 흐르는 물을 노래한 시 ‘題伽倻山讀書堂(제가야산독서당, 가야산 독서당에서)’가 있다.


미친 듯이 포효하는 물이 층층 바위돌을 치니 / 아주 가까운 곳의 사람의 말소리조차 구별키 어렵네 / 시비 가리는 소리 귀에 들릴까 두려워 / 일부러 흐르는 물더러 온 산을 돌게 하였네

狂噴疊石吼重巒(광분첩석후중만) / 人語難分咫尺間(인어난분지척간) / 常恐是非聲到耳(상공시비성도이) / 故敎流水盡籠山(고교류수진농산)


그러나 세월은 흘러 깊은 계곡과 산은 허리가 잘려 동강나고, 다리와 팔은 찢겨져 나뒹굴어, 그 옛날 심산유곡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산허리까지 차가 올라가고 여러 등산로는 사람들의 발길을 받아들이고 있다. 안타깝지만 이 또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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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 유난히 주름이 많아 일명 주름바위.

1972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개방하지 않았던 만물상 등산로도 38년 만에 처음으로 속살을 드러냈다. 그동안 뭘 감추고 있었으며, 과연 어떤 모습일까?

지난 7월 7일 가야산 국립공원 가천분소 변정수 분소장과 김지연씨의 안내로 만물상 코스를 답사했다. 변 소장은 “만물상 코스 개방은 이번에 했지만 그동안 불법적으로 다닌 등산객이 제법 있었다”며 “이들을 정상 등산로로 유도하고, 예상치 못한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등산로를 정비하고 안전하게 등산객들이 다닐 수 있도록 개방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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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가 앞모습만 살짝 보인 코끼리바위.

이들과 함께 만물상 코스로 출발했다. 가천분소 탐방지원센터에서 기존에 다니던 용기골 등산로 방향은 오른쪽이고, 왼쪽으로 정비된 돌계단이 만물상 등산로라고 안내하고 있다. 바로 오르막길이 시작됐다. 직원 김지연씨는 “약 1㎞남짓 계속 오르막길이라 조금 힘들지만 그 이후부터는 무난할 겁니다”라고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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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가천분소에 근무하며 홍보를 맡고 있는 김지연씨.맑은 표정이 사람을 편하게 한다.

시작부터 가파른 길이 계속됐다. 그런데 개방한 지 불과 한달 남짓밖에 되지 않은 등산로가 제법 오랜 시간 사람이 다닌 길 같아 보였다. 변 소장은 “옛날에 있었던 길이고, 그동안 불법적으로 다닌 등산객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르막길이지만 우거진 숲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대부분 참나무 종류의 활엽수라 햇살을 빠짐없이 잘 막았다. 변 분소장은 “옛 문헌에 의하면 백운동 지역은 잣나무로 유명하다고 했는데, 지금 잣나무는 간혹 눈에 띄는 정도이고, 대부분 활엽수여서 가을에 특히 단풍이 좋다”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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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가천분소 탐방지원센터에서 왼쪽으로 가는 길이 만물상 가는 코스다.

모처럼 전망 좋은 쉼터가 나왔다. 해발 550m쯤 되는 탐방지원센터에서 계속 오르다 해발 954m 지점에서 사방이 확 트인 조망처를 처음 만났다. 서쪽으로는 완만한 능선의 가야산이지만 오르고 있는 북쪽과 동쪽은 바위산이 우뚝 우뚝 솟아 마치 키 경쟁이라도 하는 듯했다. 방향에 따라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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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만물상 방향으로 올려다 봤다.

만물상 코스도 출발부터 1㎞남짓까지는 숲속길이지만 그 뒤부터 각종 암벽사이로 난 길로 가야만 한다. 위험한 구간은 나무데크로 정비가 잘 돼 있었다. 암벽 능선 아래로는 완전 낭떠러지다. 사진작가들이 만물상의 아름다운 기암 모습을 담기 위해 간혹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고 변 분소장이 귀띔했다.


등산로 바로 옆 바위와 바위를 조그만 돌들이 연결하고 있었다. 가야산성 이었다. 산성이 둘러싸고 있는 내부 계곡은 도저히 사람이 기거할 만한 장소가 못돼 보였다. 그런데 어찌 이런 곳이 산성이 있을까? 현재까지 조사된 바로는 축성 시기와 목적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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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따라 가야산성의 축성흔적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엔 ‘석축주위 1만5935척(4828m), 높이 5척(15m)인데 반은 퇴락했다. 성내에는 계곡 6개소와 10개의 샘이 있으며, 평탄하고 험한 것이 반반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원래부터 평탄하지 않은 지형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또 <성주목읍지>와 <성산지>에 따르면 ‘1594년(선조 27)에 여러 지역 의병장들이 이 성에 의지하여 적의 침입에 대비하였고, 제찰사 이원익이 조정에 건의하여 승장 신열을 시켜 가야산성을 다시 고쳐 쌓게 하여 주민들이 병란을 피하게 했다. 이 때 신열이 이 성의 남문을 건립하였는데, 후일 이항복이 문루에 ’액부초(扼捬醮)‘라는 현판을 만들어 붙였다’고 전한다.

산성은 분명히 있었던 것 같은데 외곽으로는 도저히 적이 침입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등산로 옆 산성에서 밖을 내려다보면 수백 미터 낭떠러지였다. 한마디로 완전 철옹성이었다. 하지만 내부는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성 안에는 용기사, 백운암, 일요암 등의 터전이 남아 있으나 전부 조그만 절이다. 그런 산성을 따라 등산로는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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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은 온갖 기묘한 자태를 한 모양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만물상의 자태를 서서히 드러냈다. 하나, 둘씩 드러낸 암벽은 수천, 수만 년의 풍상을 견딘 기기묘묘한 모습으로 서로 뽐내는 듯했다. 평일인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치면서 전부 감탄을 절로 자아냈다. ‘자연의 교향악’ 앞에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기암의 향연에 등산객들은 발길을 멈춰 산행 속도는 더욱 늦어졌다. 늦어진들 어떠리. 흔치 않은 기암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 지도 모르니. 다들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긴 채 향연을 즐겼다.


만물상의 끝은 상아덤이다. 상아덤에 올라서면 만물상이 시원스레 늘어서 펼쳐진다. 두루마리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형상들이다. 발아래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만물상의 ‘험난한 코스를 어떻게 지나왔을까’ 싶다. 실제로 그리 위험한 길은 아닌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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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덤에 대한 설명.

상아덤이 바로 가야산의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가야산 여신(산신)인 ‘정견모주(正見母主)’와 하늘신(천신) ‘이비하(夷毗訶)’가 노닐었다는 전설이다. 성스런 기품과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정견모주는 가야산 자락에 사는 백성들이 우러러 받드는 여신이었다. 여신은 백성들에게 살기 좋은 터전을 닦을 큰 힘을 얻기 위해 밤낮으로 하늘에 소원을 빌었다. 그 정성을 가상히 여긴 하늘신 이비하가 오색구름 수레를 타고 상아덤에 내려왔다. 천신과 산신의 만남이었다. 천신과 산신은 성스러운 땅 가야산에서 부부의 연을 맺고, 옥동자 둘을 낳았다. 형은 아버지 천신을 닮아 얼굴이 해와 같이 둥그스름하면서 불그레했고, 아우는 어머니 여신을 닮아 얼굴이 갸름하고 흰 편이었다. 형은 대가야의 첫 왕인 ‘이진아시왕’이 됐고, 동생은 금관가야국의 ‘수로왕’이 됐다. 최치원이 지은 <석순응전(釋順應傳)>과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대략의 줄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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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덤 정상에 한 등산객이 올라가 있다.

상아는 여신을 일컫는 옛말이고, 덤은 바위를 가리킨다. 따라서 상아덤은 하늘의 여신이 사는 바위란 뜻이다. 그 바위위에 지금 올라섰다. 천신과 산신이 만난 그곳이며, 가야산 정기가 서린 곳이다. 괜히 숙연한 마음이 든다. 어디로 내려왔으며, 어디서 만났을까, 요리조리 살펴봤다. 신들의 흔적이 인간의 눈에 보일 리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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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벽좌선을 하고 있는 불상바위는 언제쯤 끝이 날 지 알 수 없다.

사방이 내려다보인다. GPS 고도상으로 1160m였다. 물론 동북쪽으로 가야산 정상 상왕봉(일명 우두봉 1430m)과 바로 그 옆 최고봉 칠불봉(1433m)이 더 높은 봉우리지만 별로 높아 보이지도 않았다. 상아덤은 따로 떨어진 독립 봉우리로, 신이 내린 정기를 받아 기암괴석의 만물상 형상을 다스리고 있는 듯했다.

가야산에는 고운 최치원 선생뿐만 아니라 조선 중기 영의정을 지낸 이항복도 있다. 그도 가야산을 보고 ‘伽倻山中作(가야산중작, 가야산 속에서 짓다)’이란 시를 남겼다.


창연한 저문 빛은 서리 낀 등나무에 내리고 / 초승달은 숲에서 나오고 서산의 해가 진다 / 묻노니 너 산중의 늙은 나무 정령아 / 오늘 밤 응당히 최 고운이 지나는 것을 보았지 않으냐

蒼然暮色來霜藤(창연모색래상등) / 新月出林西日下(신월출림서일하) / 問爾山中老樹精(문이산중로수정) / 今宵應見孤雲過(금소응견고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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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은 예로부터 수재, 풍재, 화재를 피할 수 있는 삼재의 산으로 알려진 깊은 산이었다.

최치원과 이항복, 시대는 다르지만 그 시대 최고의 천재들로, 가야산을 배경으로 수백 년을 뛰어넘는 인연을 맺어 지금까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그 가야산이 만물상을 지나는 등산객을 대상으로 다시 한번 최치원과 이항복을 떠오르게 하고 있다. 덤으로 만물상의 기암괴석이 향연을 펼치고 교향악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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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 시작 지점이자 끝 지점에 가야산에 대한 안내판이 있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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