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금산, 한국의 3대 기도처 중의 한 곳이 보리암이 있는 산이다. 금산의 예전 이름은 보광산이었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이 산에 보광사를 짓고 보광산이라 불러왔다. 그 후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 산에서 백일기도 끝에 조선을 건국하게 되자 보은의 뜻으로 온 산을 비단으로 두른다는 뜻으로 비단 ‘금(錦)’자 금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금산 정상 가는 길에서 내려다본 한국의 3대 기도처 남해 금산 보리암의 전경.
남해 금산은 금강산의 축소판이라 하여 소금강, 남해금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해발 705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기암괴석을 비롯한 38경의 절경을 자랑하고 있다. 해금강, 지리산과 함께 경남의 3대 명승지로도 꼽힌다.
금산 최고의 절경인 쌍홍문. 두 개의 무지개문이라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해골 같이 생겼고, 다른 한편으로는 마치 귀신 모습 같다. 원효대사가 동굴 속에서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 ‘일체유심조’를 깨달은 그 동굴같은 바위다.
금산 최고의 절경은 쌍홍문이다. 쌍홍문으로부터 금산 38경의 절경이 시작된다. 해골을 닮은 듯하면서도 공룡을 닮은 두 눈을 부릅뜬 쌍홍문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면 사선대와 만장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두 바위는 쌍홍문의 양쪽에 옹성처럼 버티고 서 있다.
쌍홍문의 왼쪽에 자리 잡고 있는 사선대는 옛날 삼신산의 4선녀가 놀다 갔다는 전설을 간직한 바위이다. 그 4선녀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을 도와 왜적을 무찌르게 했다는 설화도 남아 있다.
다시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탑대를 받치고 있는 만장대가 있다. 잡목들에 가려져 천인단애의 웅장함을 제대로 느낄 수 없지만 마치 북한산의 인수봉을 방불케 하는 위용을 자랑한다. 쌍홍문은 어떠한 침공에도 무너지지 않는 천혜의 요새, 철옹성 같다.
금산의 장군암이다. 선운사의 천년기념물과 같이 바위를 타고 오르는 나무가 있다.
거기에다 왼쪽 출입문 바로 앞에는 장군암이 번뜩이는 명검을 차고 버티고 있다. 수문장바위라고도 불리는 장군암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을 만한 명물이 있다. 바로 금산 송악이다.
금산 정상의 망대 입구, 계단을 마주하고 있는 문장암은 정상 길목을 지키는 바위다. 두 개의 바위가 나막신을 나란히 벗어 놓은 형상이라 하여 나막신바위라고도 하고 명필바위라고도 한다.
조선 중종 때 대사성을 지낸 한림학사 주세붕 선생이 쌍홍문을 통하여 정상까지 올라와 금산의 아름다움에 취해 자연암에다 ‘由虹門 上錦山(유홍문 상금산)’ 이라는 글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혹자는 ‘쌍홍문이 있으므로 금산이 최고다’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주세붕 선생이 쓴 글로 알려져 있는 ‘유홍문 상금산’. 무지개문이 있기에 금산이 최고다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망대에 올라서면 금산의 절경과 남해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전국 최고의 일출 명소답게 매년 1월 1일 새벽에는 수천 명의 산행객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물론 금산의 어디에서도 미조 앞바다에서 떠오르는 장엄한 일출의 감동을 맛볼 수 있다. 또한 금산은 여수 돌산도나 남해 앵강만을 넘어가는 일몰의 경관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금산 최고봉 망대. 일출을 보기 위해 항상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망대는 고려시대부터 사용했던 봉수대(熢燧臺)이다. 도기념물 제87호로 지정된 금산봉수대는 왜적의 침입을 알리는 통신시설로서 맑은 날에는 삼천포와 여수는 물론 세존도와 대마도까지 훤히 보이는 금산의 정상에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의 3대 기도처 보리암 해수관음상. 이른 새벽에 벌써 기도를 드리는 사람이있다.
이어 한국의 3대 기도처 중의 한 곳인 보리암이 바로 그 아래에 있다. 보리암 창건설화는 두 가지가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신라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이야기이다. 원효대사가 강산을 돌아보다 금산의 승경에 이끌려 들어오자 온산이 빛을 발했다고 한다.
해수관음상 바로 앞에 삼층석탑이 있다. 기가 워낙 세서 나침반이 방향을 잃을 정도라고 한다. 실제 실험을 해보니 나침반이 방향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
보리암 3층석탑에 대한 설명.
원효대사는 초옥을 짓고 수행하던 중 이곳에 보광사를 지었다. 그래서 산의 이름도 보타산에서 보광산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뒤 보광사에서 백일기도를 올렸던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후 감사의 뜻에서 산의 이름을 금산이라 부르게 했고, 1660년 현종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으면서 보리암이란 새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른 새벽 해수관음상 머리 위로 아직 달이 떨어지지 않아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보리암 앞에는 탑대가 있다. 금산을 오른 관광객이 반드시 들리는 이곳은 금산의 제1전망대로서의 명성도 가지고 있다. 멀리 미조해안의 섬들과 송정해수욕장, 상주해수욕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금산에는 명소가 많아 보통 8경 내지는 10경, 많아야 12경 정도인데 금산은 38경까지 있다.
금산 31경 화엄봉의 모습.
남해 금산 봉수대에 대한 설명.
금산 정상 망대에 많은 사람들이 일출을 보기 위해 추위에 떨며 기다리고 있다.
금산엔 흔들바위도 있다. 실제로 어린이가 밀어도 흔들거린다.
산책길
02.05,2011 at 2:16 오전
남해 금산이란 제목을 보고 들어왔습니다. 오래 전 기억이지만 그냥 평범한 산이었다는 기억입니다. 그러나 정산에서 보는 광경은 전혀 평범하지 않더군요. 너무 멋진 광경이었는데, 아쉬움을 가집니다. 다음에 가시면 바다의 멋진 모습도 보여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소리울
02.05,2011 at 8:30 오후
그러고 보니 산에서 보는 아기자기한 섬들이 보이지 않군요.
세존도, 김만중의 귀양살던 노도 등이 한 눈에 다 보이는….
여러가지 이야기랑 자세한 정보 잘 보고 갑니다.
깨달음(인회)
02.11,2011 at 11:35 오후
제가 마치 산행과 여행을 쫒아 다닌듯 저도 다녀왔습니다.
설명과 함께 다십니 새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