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2호가 무엇이지요?… 매일 지나치면서 놓치는 문화재


국보 1호는 당연히 남대문인 줄 누구나 알 테고, 그러면 국보 2호가 뭘까요? 그 국보 2호도 남대문만큼이나 도심에 있습니다. 국보 2호 바로 옆에는 보물 3호가 같이 있습니다. 누구나 지나치기 쉬운 자리에 있죠.

바로 탑골공원에 있는 원각사지 10층석탑이 국보 2호고, 그 옆에 있는 대원각사비가 보물 3호입니다. 또 탑골공원은 사적 제354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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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2호인 원각사지10층석탑의 하단부 모습. 특이한 형태의 석탑이다.

탑골공원은 1890년 전후해서 서울에 최초로 만들어진 근대식 공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종 시절이죠. 그런데 탑골공원이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건 1919년 3.1 독립운동의 점화지로서 입니다. 1919년 탑골공원 팔각정에서 낮 12시를 알리자마자 독립선언서를 낭독함과 동시에, 4천여 명의 학생들이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이곳에서 시작된 만세시위는 전국으로 퍼져나갔죠.


그런데 왜 이곳에 원각사지 십층석탑과 대원국사비가 있을까요? 이곳은 원래 세조가 세운 원각사 절터였습니다. 세조가 누굽니까? 조카 단종을 폐위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고 왕위에 오른 비정한 삼촌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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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각사의 창건에 대한 기록을 적은 보물 3호 대원각사비. 원각사10층석탑 바로 옆에 있다.

세조는 단종을 폐위시키고 심리적으로 굉장히 불안했던 것으로 전합니다. 큰아들이 이유도 없이 급사하는 등 가정에 우환을 많이 겪었습니다. 본인도 온 몸에 종기가 번져 오대산 상원사, 속리산 법주사, 남양주 수종사 등 전국의 절을 찾아다니며 기도를 올리곤 하죠. 유교 중심이었던 조선시대에 불교를 매우 숭상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유달리 여러 절에 세조가 많이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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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본 보물 3호 대원각사비.

급기야 경복궁 근처인 현 탑골공원 자리에 원각사라는 절을 창건합니다. 보물 3호인 대원각사비가 원각사 창건 내력을 기록한 비석입니다. 대원각사비 안내문에 적힌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불심이 돈독했던 세조는 양주 회암사에서 분신한 사리를 보고 감동하여 세조11년인 1465년 흥복사 터에다 원각사를 지었다. 이어 1467년 13층석탑이 완성되자 연등회를 열고 낙성식을 거행하였으며, 그 전후사정을 적은 비석을 조성하게 했다. 거북이 모양의 받침돌을 만들고, 그 등 위에 연잎을 새겨 비석 몸돌을 세울 자리를 만들었다. (중략) 연산군 대 궁궐에 인접한 민가를 철거하면서 원각사는 빈 절이 되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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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원각사지 10층석탑은 유리각에 둘러싸여져 있다.

국보 2호인 원각사지 10층석탑은 모양이 특이합니다. 탑 앞에 있는 안내문으로 설명을 대신합니다.

‘亞자 모양의 기단을 세 겹인데, 아래에는 용과 연꽃 같은 무늬를 새겼고, 중간에는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일행이 인도에서 불법을 구해오는 과정을 그렸다. 위에는 부처님의 전생설화와 일생을 조각했다. 법회장면을 새긴 탑의 몸통에는 현판, 용을 휘감는 기둥, 목조구조, 기둥을 두었는데, 마치 하나의 건물 같다. 탑을 만든 재료는 흔치 않은 대리석이며, 독특한 형태와 조각솜씨는 조선시대 석탑의 백미로 꼽힌다. 이 석탑은 고려시대 제작한 경천사 10층석탑(국보 제86호)과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

지금은 국보 2호도 세월에 마모되고, 사람들의 손에 시달려 유리로 전체를 덮어 보호하고 있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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