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해안을 걷는 길을 통해서 즐길 수 있다면? 그것도 내리쬐는 햇빛을 피해 시원한 곰솔이나 숲속길을 걸으며 감상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비 오는 해변을 곰솔숲 사이로 걷는다면? 혹시 이런 길을 찾는다면 태안에 가보라. 태안에 그런 길이 생겼다. ‘태안해변길’이라는 아름다운 길이 6월 23일 개통했다.
야생화가 만발하고 황톳길 같은 모래길 위로 걷는 태안해변길에 오두막이 운치있게 있다.
태안은 26개의 해수욕장과 유인도 4개 포함 72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약 230㎞에 이르는 리아스식 해안선을 따라 30여 개의 해변이 포도송이처럼 엮어져 있는 해안형 국립공원이다. 아름다운 갯벌․해안사구․해넘이 등 빼어난 자연경관과 다양한 동․식물이 어우러져 독특한 해안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해변길 곰솔숲이 마치 깊은 산속의 오솔길을 걷는 분위기와 흡사하다.
그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해변길을 만들었고, 앞으로 몇 개 코스를 더 만들 예정이다. 학암포~만리포까지 28㎞의 ‘바라길’, 만리포~몽산포까지 38㎞의 ‘유람길’, 몽산포~드르니항까지 13㎞의 ‘솔모랫길’, 백사장항~꽃지항까지 12㎞의 ‘노을길’, 꽃지~영목항까지 29㎞의 ‘샛별바람길’ 등 총 120㎞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중 솔모랫길 13㎞와 노을길 12㎞가 6월 23일 개통, 여름 해안을 찾거나 걷기를 좋아하는 도보여행객들에게 맞춰 새로이 선보였다.
천연 염전도 나온다. 천연 염전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도 있다.
솔모랫길의 출발지점은 해변길 탐방안내센터가 있는 몽산포해수욕장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커다란 안내센터와 함께 이정표가 갈림길마다 길을 안내하고 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안내판을 구비, 첫 방문객들조차도 전혀 길을 헤맬 일이 없다.
몽산포해수욕장엔 학암포와 더불어 연중 무휴 야영․취사 허용지역으로 캠핑족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널찍한 주차장도 있어 평일인데도 벌써 곰솔 숲에서 텐트를 치고 즐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국립공원관리공단 박기연 부장과 김태 과장은 “태안해변길은 곰솔 숲과 오솔길 숲속에 있는 모래 위로 걸어 흙 위를 걷는 다른 길보다 무릎 관절에 훨씬 무리가 덜하다”며 “이 사실은 정형외과 의사들도 인정하며, 한국의 다른 길과 차별화 되는 점”이라고 특징을 설명했다.
태안해변길 모래 위 이정표가 있고 서해바다가 보이는 길을 걷고 있다.
해안 주변에 있는 곰솔은 방풍림으로 심어놓은 나무들이다. 해안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심었다. 우리나라 해안 어디서나 볼 수 있으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방풍림도 있다.
출발한지 1㎞도 되지 않아 바다와 관련된 노래 안내판이 붙어 있다. 은희의 ‘등대지기’ 높은음자리의 ‘바다에 누워’ 등이 가사와 함께 QR코드가 있어, 스마트폰으로 음을 들으며 따라 부를 수 있도록 돼 있다. 문명을 이용한 ‘이정표의 진화’다.
개통식이 열리는 기지포해수욕장엔 이렇게 낭만적이고 분위기 있는 곰솔길이 있다.
곰솔숲 사이엔 곰솔과 적송 비교 이정표도 있다. 곰솔은 바닷가 모래땅에 자라며 잎의 길이가 9~14㎝정도고, 억센 진한 녹색의 잎에 줄기가 20m 가량 된다고 소개하고 있다. 반면 적송은 주로 내륙 산지에 자라며 8~9㎝의 잎 길이에 연한 녹색의 잎을 가지고 줄기는 35m 정도 자란다고 적혀 있다.
해변길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햇빛 내리쬐는 땡볕에 땀을 뻘뻘 흘리며 걷는 길을 떠올리는데, 태안해변길은 전혀 그렇지 않다. 마치 어느 산속 숲속길을 걷는 듯한 기분이다. 사람들 걷는 발자국 소리에 놀라 뀡이 갑자기 푸드득 날아오르는 그런 길이다. 모래길에서 이런 녹음이 우거진 숲을 만날 수 있는 것도 대단한 행운이다.
태안해변길 이정표다. 이 이정표만 따라가면 길을 잃을 우려는 없다.
곰솔 숲을 지나자 다양한 야생화가 언듯언듯 보이더니 짙은 분홍색의 꽃을 피우는 해당화 군락이 나왔다. 해당화는 바닷가 모래땅에서 흔히 자라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꽃은 장미와 무궁화 중간쯤 되는 모양과 색깔을 보인다.
메밀밭을 지나 왼쪽으로 잠시 논길로 이어졌다. 오른쪽 숲으로는 마침 고라니가 모습을 살짝 비추더니 불청객을 발견하고 이내 숲속으로 후다닥 몸을 숨겼다. 해변길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닌 산속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을 태안해변길을 걸으며 보고 있다. 뿐만 아니다. 아카시나무의 향긋한 꽃향기와 참나무, 곰솔과 다양한 야생화 등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구성원들이 제각각 뽐내고 있다. 아카시나무 꽃은 꽃잎을 길에 떨어뜨려 꽃길을 만들었다. 그 위를 사뿐히 즈려밟으며 가고 있다.
모래길 위에 다시 솔가리가 쌓여 더욱 푹신한 길을 만든다.걷는 기분도 상큼하다.
논에 물을 대는 배수로 웅덩이엔 갓 태어난 듯한 천둥오리 새끼들이 어미품을 떠나지 않고 옹기종기 모여 있다. 참 보기 드문 모습이다. 숨을 죽이고 있던 어미는 인기척에 놀라 퍼드덕 날아가 버렸다. 졸지에 어미를 잃은 새끼들은 날지도 못하고 “짹~짹~짹~” 소리만 연발했다.
졸지에 어미를 잃은 천둥오리 새끼들이 어미를 찾아 짹짹 거리고 있다.
김 과장은 “태안은 총 31개의 해변이 있으며 그 중 26개가 국립공원 내에 있습니다”며 “직원이 26명인데 1명 당 해수욕장 하나씩 담당하다보면 여름엔 완전히 녹초가 됩니다”고 했다.
청포대해변에서 남쪽으로 10여분 가면 별주부전에 나오는 그 자라가 토끼를 놓치고 돌아갈 수 없어 돌이 된 덕바위(자라섬)와 토끼가 도망간 고갯길인 노루미재 등이 나타난다. 자람섬 입구에 별주부전 유래를 비석에 새겨 설명하고 있다.
태안해변길에 있는 해당화 군락지를 공단 박기연 부장이 설명하고 있다.
바로 그 앞에는 독살이 있다. 한자어로는 석방렴(石防簾)이라 한다. 독살은 한마디로 하면 돌그물이다. 밀물 때 들어온 고기가 썰물 때 돌뚝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든 서해의 전통적인 고기잡는 방법이다. 남해의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서 멸치를 잡는 죽방렴과 똑 같은 것이다. 선조의 지혜가 돋보이는 자연 어로법이다.
몽산포~드르니항까지 솔모랫길 13㎞ 끝 지점에 거의 다다랐다. ‘드르니’란 말은 맞은편 안면도 섬에서 배를 타고 사람들이 계속 들어온다 하여 ‘들온이’라 했는데, 발음 나는 대로 ‘드르니’로 변했다고 한다.
드르니항은 지금 한창 공사 중이다. 바로 바다 건너 백사장항까지 순수 인도교를 만들기 위한 작업이다. 공단에서 예산만 무려 300여억 원을 들였다. 드르니항에서 백사장항까지 둘러가는 길은 무려 5㎞가 넘는다. 그 길을 불과 500~600m로 줄이고 있는 것이다.
가볍게 산책하러 나온 사람들도 많다.
백사장항은 노을길의 시종점이다. 이제부터 꽃지로 간다. 꽃지 해변길이 끝나자마자 바로 나무데크로 정비된 야트막한 산길로 올라간다. 전형적인 참나무 숲속길이다. 해변과 불과 몇 미터 떨어져 있지만 참으로 다양한 길을 만난다. 무심코 지나던 길을 유심히 쳐다보니 세상이 달라 보이는 격이다.
곧 이어 조성 중인 노을길전망대가 나왔지만 해무가 내려 시야가 좋지 않다. 노을길은 노을이 아름다워 붙은 이름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 삼봉으로 직행이다.
별주부 전설에 나오는 자라바위. 일명 덕바위다.
삼봉은 세 개의 바위 봉우리로 삼봉이라 부른다. 옛날 돈만 벌 줄 아는 수전노인 어부가 부인과 딸 3자매를 함께 살고 있었다. 어부는 딸이 병들었는데도 간호를 않고 돈만 모으는데 여념 없었다. 한 맺힌 딸 셋 모두 병들어 죽었고, 그 무덤이 바로 삼봉이다. 삼봉 옆에 무덤 모양의 바위산은 아내의 화신이라고 한다. 바위에 뚫린 구멍은 수전노 어부를 데리고 승천한 용이 나온 ‘용난구멍’이라고 불린다.
자라바위에서 바다쪽으로 독살이라는 돌을 쌓아 만든 일종의 돌그물이 보존돼 있다.
삼봉의 전설을 뒤로 한 채 6월 23일 ‘태안해변길’ 개통식이 열린 기지포해수욕장에 다다랐다. 기지포엔 장애인 탐방시설과 각종 편의시설을 1004m 조성했다. 다른 구간보다 쉼터 공간이 더 많고 나무데크도 잘 정돈돼 있다. 해변길 주변 곰솔숲에는 아직 야영․취사 공식 허용기간이 아닌데도 많은 사람들이 캠핑을 즐기고 있다. 갑자기 날씨가 더워져 이용객이 늘었다고 한다. 요즘은 캠핑붐이 일고 있는 느낌이다.
숲속은 어디나 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해안길이라기보다는 숲속길이라 해도 괜찮을 정도다.
삼봉해변~기지포해변~안면해변을 차례로 지나쳤다. 해변길을 곰솔이 드리운 그늘 속으로 난 길을 따라 서해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파도소리를 즐기며 걷고 있다.
태안해변길에서 만나는 식물들은 유난히 접두어 ‘갯’이 붙은 것들이 많다. 갯완두․갯그령․갯쇠보리․갯메꽃 등이 있다. 아마 해안 주변에서 자라 바다를 의미하는 ‘갯’자가 붙었지 싶다. 이들을 총칭해서 사구식물이라고 부른다.
꽃지해변에 있는 명승 제69호인 할미할아비 바위에 대한 설명.
곧 이어 나오는 전망대에서 꽃지해변과 명승 제69호인 할미․할아비바위가 눈앞에 내려다보인다. 해상왕 장보고의 기지사령관이던 승언 장군이 출정한 뒤 돌아오지 않자, 그를 기다리던 아내 미도가 일편단심 기다리다 죽어 바위가 됐다는 할미바위다. 두 개의 바위 중 육지에서 가까운 쪽이다. 그 후 어느 날 폭풍우가 휘몰아치더니 할미바위 옆에 큰 바위가 우뚝 솟아 있어, 이를 할아비바위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꽃지해변에 있는 명승 제69호인 할미할아비 바위.
노을길 시․종점 지점인 꽃지는 해당화와 매화꽃이 많이 피던 곳이라 하여 한때 화지해수욕장이라 불린데서 ‘꽃지’라는 지명이 유래됐다. 바로 이곳에서 안면도 꽃박람회가 열렸다. 할미․할아비바위 사이로 지는 노을이 아름다워 많은 사진작가들에게 출사명소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꽃지해변 바로 옆에는 모감주나무 군락지가 천연기념물 138호로 지정된 보호받고 있다.
해변길이지만 정말 볼거리가 많았던 길이다. 태안 팔경 중에 태안3경인 안면송림, 태안 7경인 몽산해변, 태안 8경인 할미․할아비바위 등 태안 삼경을 지나간다. 특히 할미․할아비바위의 낙조는 서해 3대 일몰 중의 한 곳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