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취재 관계로 대만에 갈 일이 있었다. 공식적인 업무라 현지 공무원이 공항까지 나오게 돼 있었다. 게이트를 빠져나가는 데 많은 사람들이 조그만 깃발이나 이정표를 들고 있었지만 한번 쑥 훑어봐도 내 이름은 보이질 않았다. 한국에서 기자라고는 나 혼자만 갔기 때문에 누가 나서 해결해 줄 상황도 못 됐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알아서 해야 될 처지였다.
조금 기다리다 아무도 찾질 않아 주최측에 전화를 했다. 누군가가 가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다시 조금 기다렸다. 누군가 와서 물었다. “미스터 푸?”냐고. “미스터 푸가 아니고 미스터 박”이라고 했다. 그냥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연락이 없었다. 게이트를 나온 지 30분이 지나고 40분이 지났다.
이젠 안 되겠다 싶어 공항 인포메이션센터 옆에서 담당자하고 다시 통화를 했다. “사람이 나갔는데 못 찾고 있다”고 했다. “무슨 말이냐, 난 계속 자리에 앉아있었고, 아직 안 와서 다시 전화를 한 거다”라고 항변했다. 동시에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혹시나 싶어 인포메이션 관계자를 바꾸어 주었다. 인포메이션 관계자는 통화를 끝낸 후 방송멘트를 중국말로 했다. 잠시 후 누군가 다시 왔다. 아까 “미스터 푸”냐고 묻던 그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들고 있던 신문지 크기만한 종이에 적고 있던 이름이 ‘Pu Ding Yuan(푸딩위안)’이었다. 그 옆에 조그만 크기로 한자로 ‘朴定遠’이라고 적혀 있었다. 졸지에 내 이름이 푸딩위안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물론 朴定遠의 대만식 혹은 중국식 발음이 푸딩위안이라는 정도는 중국어를 못해도 눈치로 알고 있다.
난 내 상식으로 판단하자면 대만은 대만 자국의 발음대로 표기해서 손님을 맞았다고 생각한다. 단지 영어 표기조차 자국의 발음대로 하는 바람에 중국말을 모르는 사람한테는 헷갈릴 여지를 준 잘못은 있다. 애초부터 ‘Park Jung Won’이라고 표기하고 불렀으면 이런 곡절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현지발음 따르자’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분명 그럴 것이다. ‘봐라, 현지 발음을 알고 있었으면 그런 불편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고.
자, 여기서부터 우리가 처한 상황을 한번 살펴보자. 대만은 대만 현지발음대로 외국에서 오는 기자를 맞이한 것이다. 영어도 대만발음으로 표기한 것을 들고 있었다. 난 그들을 탓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지 우리 어학자들, 특히 6월 23일 국어정책 토론에서 ‘중국어 표기, 현지발음을 따르자’고 하는 어학자들의 주장이 너무 현실과 동떨어지고, 전문가들의 횡포를 부리는 것 같아서 이 글을 적는다.
지금 한자를 아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朴定遠’을 박정원이라고 읽지, 이를 푸딩위안이라고 읽는 한국 사람이 어디 있는지 그 주장을 하는 학자들에게 묻고 싶다. 아마 내기를 한다면 100이면 100 전부 박정원발음에 걸 것이다. ‘胡錦濤’도 마찬가지다. 그냥 호금도라고 읽으면 되지, 그것을 왜 후진타오라고 읽어야 하나. 우리가 정식으로 중국식 한자를 배워 사용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영어는 애초 우리 문화권과는 다르기 때문에 외국어 표기대로 그대로 사용하면 된다. 그러나 한자는 애초 우리 문화에 깊숙이 들어와 이미 사용하고 있었고, 우리 입에 익숙해진 언어다. 한자가 우리 글과 말의 60% 이상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 아닌가. 그것을 하루아침에 바꾸면서 ‘일관성’ 운운한다는 건 도대체 말이 안 된다.
그 어학자들이 주장하는 일관성이란 ‘중국어를 현지음으로 적어야 할 근본적인 이유는 일관성 확보를 위해서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일관성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나아가 문화에 대한 일관성은 전혀 무시되고, 단지 외국어에 대한 일관성만 주장하는 것이다. 남에 대한, 외국어에 대한 배려인지 모르겠으나 우리 말이나 글과 이를 사용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는 것 같이 보인다.
언어는 문화의 일부분일 뿐이다. 때로는 그 일부분인 언어가 정신적인 부분이나 더 큰 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자주 있다. 언어가 그 민족에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문화영역보다 훨씬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단지 외국어의 일관성을 위해서 더 큰 우리 문화를 포기할 수는 없다.
어학자들은 언어의 전문가들이다. 전문가는 대중들 수준보다 더 깊고 넓고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이 할 일은 외국어에 대한 일관성 운운하면서 따라오라는 게 아니라, 깊고 넓은 지식을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알기 쉽고 사용하기 쉽도록 원칙을 정하고 가르치는 것이라고 본다. 일관성 운운하면서 그냥 따라오라고만 한다면 심하게 표현해서 ‘전문가들의 횡포’라고까지 보여진다.
한자를 우리식 발음대로 표기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외국어에 대한 일관성을 들먹이면서 현지발음 대로 적는 것이 좋은 것인지. 사용자, 즉 국민들에게 한 번 물어보자. 십중팔구가 아니라 십중십이상이 전자에 걸 것으로 본다. 만약 전자에 많은 사람이 호응한다는 걸 알면서 후자를 주장하는 어학자가 있다면 그게 바로 대중을 무시한 ‘전문가들의 횡포’라는 거다.
언어는 사용하는 민족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민족이 없으면 언어도 없다는 이 평범한 원칙은 ‘언어는 사용하고 쓰는 사람의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논리로 받아들인다면 무리한 발상일까?
Carisima
06.27,2011 at 3:03 오후
그래서 예전에 어떤 분이 조선일보기사에서 중국인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줄때, 한문이 아닌 영어로 알려주라고 한기사를 읽었다- 박지성에 관련된 기사다. 국민대표 박지성이 중국에서 다른 이상한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는건 참을수 없다!!! 왜 우리의 이름을 즈그나라발음으로 이상하게 부르는지.. 즈그나라이름만 그렇게 불러라. 이글도 같은 맥락인거 같다.
wj
06.27,2011 at 3:38 오후
박정원기자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자신의 이름이 집에서 불려지는 대로 불리우기를 원하는 것은 국가를 떠나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겠지요. 박기자께서 대만에 갔을 때, 본인의 이름이 푸 딩 위안으로 잘 못 적혀있었기에, 본인의 이름도 못 알아보는 바보가 된 언짢고 황당하고 불편한 일을 당하셨지요. 당연히 박 정원을 영자로 적었어야지요. (한자로만 크게 적었어도 충분했겠지만, 그들이 우리가 한자를 쓰고 읽을 줄 아는 문명인이라는 사실을 몰랐으니, 이런 문제가 벌어졌겠지요. 자주 만나는 중국인들은 팻말을 한자, 한글, 또는 함께 적어서 내보내지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럼 역지사지로 생각해봅시다. "胡錦濤’도 마찬가지다. 그냥 호금도라고 읽으면 되지, 그것을 왜 후진타오라고 읽어야 하나." 그럴 리는 절대 없겠지만, 胡錦濤중국공산당 주석이 인천공항에 혼자 들어오고, 박기자께서 맞이하러 나갑니다. 박기자께서는 당연히 호금도(영어로 쓴다면 Ho Kuem Do 정도가 될까요 ?)라고 쓴 팻말을 들고 나가면, 후진타오 주석도 박기자께서 겪은 불편을 똑 같이 겪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처음에 외국인이 외국어로 쓴 이름이나 지명을 어떻게 읽는 지 알기가 쉽지 않을겁니다만, 결국 그나라에 가면 그렇게 읽고 불리운다는 것이 현실이지요. 우리가 한국에서 우리끼리 지지고 볶고 산다면 이런 문제를 가지고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겠지요. 문제는 우리가 외국에 나가고, 외국 손님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글로벌한 세상에서 살고 있고, 거기서 각자 나름 대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막중한 역할을 하고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요. 생각하기에 따라 복잡한 것 같지만, 역지사지로 생각하면 간단하기도 하지요.
차영호
06.27,2011 at 5:01 오후
전혀 문제가 될 건덕지도 없은 것을 가지고 열 받고 계시는군요. 중국사람 이름은 중국식으로, 한국사람 이름은 한국식으로 표기하면 됩니다. 胡錦濤는 후진타오로, 박지성은 그냥 박지성으로 표현하면 됩니다. 전혀 헷갈릴 것이 없지요. 한자든 한글이든 글자는 표현의 수단일 뿐 그 이름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닌 때문이지요.
과거에 日本을 니뽄이 아닌 일본으로, 上海를 상하이가 아닌 상해로 표현한 것은 물론 잘못이지요. 그러나 이런 것 들은 이미 우리 말 화가 되어서 어쩔 수 없다 손 차더라도 아직 우리말화가 되지 않은 지명이나 인명은 그 나라 현지의 발음을 따라가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등소평은 덩샤오핑, 모택동은 마오쩌둥으로 표현하고, 박정원은 박정원으로 표기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나?
켈리포니아를 나성으로, 베이징을 북경으로 표시한 것은
지기자
06.29,2011 at 5:32 오후
위의 차영호씨께 몇가지 묻겠습니다.
1. 孔子나 孫文,은 어떻게 표기해야 할까요?
2. 毛澤東, 周恩來는 어떻게 표기해야 할까요?
3. 중국에 사는 조선족 동포인 白靑剛(MBC 위대한탄생 우승자)은 어떻게 표기해야 할까요? 현행 외래어표기법 상 ‘바이칭강’으로 해야한다는 건 아시나요?
4. 중국돈 元의 표기는 ‘위안’일까요, ‘위엔’일까요? 실제 중국발음은 어느쪽인지 아시나요?
5. 江澤民의 표기는 ‘장쩌민’일까요, ‘장저민’일까요?
6. 小林寺는 현행표기법 상 ‘샤오린스’로 해야할까요, ‘샤오린사’로 해야할까요?
7. 조선족이 많이 사는 延邊은 ‘연변’으로 해야할까요, ‘옌볜’으로 표기해야할까요? 그리고 실제 연변 조선족들은 어떻게 표기하는지 아시나요?
8. 고구려 역사도시인 集安은 중국식으로 ‘지안’으로 해야할까요, 한국식으로 ‘집안’이라고 해야할까요? 또 이 표기가 고구려사가 누구 것이냐는 문제와 연결되다고 생각하세요,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9. 발해(渤海)는 ‘중국식으로 ‘보하이’라고 해야할까요, ‘발해’라고 해야할까요?
dhleemd
06.30,2011 at 4:30 오전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중요한 지적이신데
한글은 음운체계가 장단으로 발달했고
중국은 사성의 고저 체계입니다.
이것을 단순히 로마식 표음문자로 표기한다는 것이
너무도 황당한 발상입니다.
유상진
07.07,2011 at 10:42 오전
wj님의고견에 동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