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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북한산성은 도피용이다… 숙종 “도성을 지킬 수 없으니 북한산성을 축성하라” - 마운틴
북한산성은 도피용이다… 숙종 “도성을 지킬 수 없으니 북한산성을 축성하라”


정확히 9월 말이 북한산성 축성 300주년이다. 북한산성 축성을 놓고 신하들간에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 논란의 핵심은 ‘한 나라의 상징인 도성을 비울 수 있느냐’와 ‘절대 비워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 대변된다. 숙종은 신하들의 반대 상소문에 “이미 내 뜻을 개유(開諭)했다”며 축성 고수 입장을 밝혔다. 개유란 ‘사리를 알아듣도록 잘 타이르다’는 뜻이다. 즉 신하들에게 최악의 경우 도성을 비우고 북한산성에서 장기전을 치를 준비를 하라는 의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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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은 안팎이 다 험해 도저히 사람 살만한 곳이 못된다는 이유로 많은 신하들이 축성반대 상소를 올렸다.

잠시 신하들의 축성 반대 이유를 보자.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에 나오는 판부사 서문중이 밝힌 축성 반대 상소문은 다음과 같다.

“뭍에는 남한산성이 있고, 물에는 강도(江都, 지금의 강화도)가 있는데, 이제 두 곳을 버리고 따로 사방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아도 적이 감히 들어오지 못하는 땅을 구하려 하면, 신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말하기를 ’가까운 땅에 성을 만들어서, 급할 때에 임하여 옮겨 들어가서 도성을 비우고 청야(淸野)하면 적이 얻을 것이 없어서 오래 머물지 못한다‘고 하며, 또 말하기를 ’다른 군대가 도성을 지키다가 도성이 함락되면 물러가서 북성을 지킨다‘고 합니다. 대체로 우리가 중히 여기는 바는 적이 달려오는 바인데, 성을 지키는 자는 진실로 완급이 있지만 성을 공격하는 자 또한 차례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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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들이 침입할려고 해도접근이 어려울 것 같은 북한산성.

병조판서 최석항은 “산성은 바깥은 험하고 안은 평평한 뒤에야 암벽을 타고 접근할 우려가 없고 왕래하고 접응하는 데 편리함이 있는 법인데, 여기는 내외가 모두 험준하니 그 불편한 것의 하나입니다. 도성의 백성과 같이 들어가게 되면 실로 모두 표용할 만한 형세가 못되니…, (후략)”라며 축성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신하들의 축성 반대는 도성을 비울 수 없고, 북한산은 너무 험해서 산성의 입지조건으로는 전혀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가 주를 이룬다.


이에 숙종은 “도성은 지킬 수 없음을 익히 헤아린 것이다. 북한산성의 축성은 백성과 더불어 함께 지키자는 계책에서 나온 것이니 결단코 그만둘 수 없다”고 밝혀 축성 공사를 강행했다. 여기서 숙종의 결정적인 한 마디가 북한산성이 도피용이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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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서 보면 천혜의 요새이지만 안에서도 별로 사람 살 곳이 없어 보이는 북한산이다.

산성은 원래 방어용이 대부분이다. 방어용이라는 의미는 적진 깊숙이 쳐들어가는 적극적 전투행위가 아니고, 쳐들어오는 적에 성이란 장벽을 이용해 소극적으로 항전하는 의미가 강하다.

성은 거주주체에 따라 도성 또는 경성과 읍성으로 나눠진다. 지형에 의해서는 바닥이 평평한 평지성, 평지와 산에 걸쳐 쌓은 평산성,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산과 계곡을 둘러싼 산성 등으로 나뉜다. 지리적 위치에 따라서는 국경성, 해안성, 강안성, 내륙성 등이 있다.


여러 봉우리에 걸쳐 쌓은 북한산성은 병조판서 최석항의 지적대로 북한산은 안팎 모두 험난하니 도저히 적들조차 침입하기 힘든 곳이다. 왕이 전시 피난처로 거처하는 행궁도 마찬가지다. 남한산성과 같이 천작지형의 지세가 아니라 겹겹으로 층을 만들어 평지를 만들었다. 그 북한산성 행궁도 경사가 있으니, 1915년 북한산의 대홍수로 휩쓸려 내려가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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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북한산에 대홍수로 행궁이 휩쓸려 간 뒤로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북한산성 행궁터.

잠시 행궁의 용도를 살펴보자. 전쟁 때 피난용은 강화행궁이나 남한산성행궁, 양주행궁 등이 전시 때 임금이 피난처로 사용됐다. 능원참배용은 시흥행궁과 과천행궁 등이 있고, 휴식용으로는 온양행궁이 있다. 실제로 사용한 행궁은 전쟁 때 피난한 강화행궁과 남한산성 정도였다.


만약 북한산성 축성 후 임금이 도성을 비우고 북한산성을 사용했다면 과연 그 전쟁은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북한산성 축성 300주년을 맞아 새삼 떠오른다. 그리고 왜 안팎으로 험한 북한산성에 축성을 하며 국력을 소모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치권에서 쓸데없는 곳에 예산을 낭비한다던지, 국력을 소모하는 일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순전히 도피용,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국력소모용으로 만든 북한산성을 보며 떠오르는 생각이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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