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임진왜란․병자호란 등 온갖 난리를 겪은 뒤 흉흉한 민심으로 살던 집을 버리고 산으로 접어든 사람들이 많던 시절이 있었다. 산천초목엔 그들이 살만한 논도 밭도 집도 없었다. 나무와 풀을 베고 일구면 그 터전이 곧 집이요, 밭이요, 논이 됐다. 화전민들의 생활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 화전민이 지은 집이 너와집이다. 너와집은 깊은 산속에서 기왓장도 이엉도 구할 수 없고, 그저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나무로 엉기성기 엮은 집을 말한다. 평균 고도는 해발 500m 이상, 세상의 눈을 피해 첩첩산중 심산유곡 오지의 자연환경에 맞춰 사람이 살만한 집을 지었다.
삼척 너와마을 소황골 골짜기에 있는 천영숙씨의 집에서 천씨가 조선시대에나 사용했을 법한 봇짐을 지고 들어가고 있다.
너와집은 산간지역인 오대산 부근 평창군 진부면 속칭 가래골, 강릉시 연곡면 속칭 가마소, 인제군 북면 용시암골, 백두대간 중간기점인 삼척 신리 너와마을‧대이리‧동활리 등 깊은 산중에서만 볼 수 있다. 이 중 삼척 신리 너와마을에 있는 너와집이 규모나 원형 보존면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 모두 중요 민속문화재 제33호로 지정돼 있다.
중요 민속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된 삼척 너와마을에 있는 김진호씨의 집.
태백시의 바로 경계 너머에 있는 삼척 신리는 행정구역은 삼척이지만 태백에 더 가깝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 줄기가 금강산을 거쳐 뻗어내려 태백 매봉산에서 낙동정맥으로 갈라진 그 언저리 산간지역에 있다. 승용차로 가는 길 중에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고개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남한에서 가장 높은 고개로 알려진 함백산 자락의 만항재(1330m)와 두문동재(1268m)를 지난다. 사방1000m 넘는 준봉들이 즐비하다.
삼척 신리 너와마을의 천영숙씨 집.
신리 너와마을에 천영숙(72)씨가 6대째 살고 있다. 6대면 150년을 훌쩍 넘기는 세월을 그곳에서 살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에서 가장 높은 산간지역에서의 삶은 어떤 모습인지, 많은 얘기를 기대케 했다.
천씨가 집을 바라보고 있다.
산 넘고 물 건너 꼬불꼬불한 도로를 따라 찾은 너와마을은 고도 480m쯤 됐다. 그래도 많이 내려온 편이다. 그러나 여기가 목적지가 아니다. 이곳은 천씨가 자식들 교육을 위해 40여 년 전 하산해서 정착한 집이고, 원래 살던 곳은 1시간쯤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곳으로 향했다.
현재 너와마을에서 천씨의 집은 약 1시간쯤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는 길은 마치 선계로 향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우거진 숲을 지나야 한다.
소황골이라 불리는 계곡을 따라 올라간다. 도저히 길이 없을 것 같은 계곡이다. 하지만 ‘한국 700명산’을 쓴 신명호씨가 천씨를 만나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 기꺼이 안내에 나섰다. 마침 내린 비로 계곡 물은 불어 길 찾기가 더욱 어려웠지만 한국의 수 천 개의 산을 답사한 신씨는 길을 잘도 찾았다.
천씨의 집은 해발 약 800m쯤에 위치해 있다.
등산로 주변은 온갖 나무와 풀로 무성했다. 야생 다래랑 머루, 대추나무도 간혹 눈에 띄었다. 그냥 따 먹으면 임자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천연 열매라 향기는 더욱 진했고, 맛도 신선했다. 약 40분쯤 올랐을까,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면서 자욱한 안개가 깔린 윈시림의 숲이 펼쳐졌다. 마치 선계(仙界)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야!~”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등산로가 신선 찾아 가는 길이고, 무릉도원이 바로 여기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게 할 정도다. 모두 제자리 서서 잠시 원시림이 주는 아름다운 경관에 푹 빠져 감상했다.
소황골 계곡을 건너는 등산로는 천씨가 나무를 엮어 길을 만들어놓았다.
노련한 신씨의 산길 안내로 30분쯤 더 가서 계곡 너머 천씨의 집이 보였다. 숲 속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집은 “어떻게 이런 곳에 집을 짓고 살 수 있단 말인가!” 하는 감탄과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마침 천씨는 아래 너와마을에 사는 아들의 전달을 받고 집에 있었다. GPS로 고도가 850m쯤 됐다. 북한산이 836m 정도 되니 그보다도 더 높은 곳에 살고 있는 셈이다.
천씨 집 올라가는 길에 백년은 족히 넘었을 법한 돌배나무가 길 중앙에 떡하니 자라고 있다.
천씨는 얼굴엔 세월의 무게가 그대로 드러났지만 자연과 더불어 산 흔적인 해맑은 미소를 지니고 있었다. 곧 스러질 것 같은 허름한 집에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백 수십 년째 살고 있다고 한다.
천씨의 집 주변엔 황기나 당귀나무 등 각종 약초가 자연 그대로 자라고 있다.
“고조할아버지부터 이곳에 들어와서 살기 시작했으니 벌써 150년이 훨씬 넘었지. 원래 사는 사람이 없어 신개척지로 여기며 들어왔지. 할아버지 얘기로는 호랑이가 많이 나와 문턱도 높게 했지. 호랑이가 문을 열지 못하게 문에 조그만 구멍을 내어 줄을 연결시켜 놓았어. 옛날엔 이 동네 호랑이가 많이 살았지. 할아버지는 자다가 호랑이 소리를 듣곤 했었다고 들었어. 애초엔 이 골짜기에도 30여 가구나 살았어. 지금은 자식들 교육 때문에 다 내려가고 나뿐이지만.”
천씨의 집에는 토종 벌로 양봉을 했으나 지난해 토종벌이 몰살하는 바람에 벌집이 텅텅 비어있다.
천씨의 집 주변을 한 번 쭉 둘러봤다. 확 트인 앞쪽과 달리 뒤와 옆으로는 대추나무가 에워싸고 있다. 그 위로 널찍한 밭에 노란꽃을 피운 메밀이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옆으로 메밀뿐만 아니라 수수‧당귀‧황기‧콩‧감자‧팥‧두릅 등 갖가지 산나물과 약초들이 즐비했다. 천씨는 이런 산나물과 약초를 짊어지고 내려가 팔아 6남4녀, 즉 10남매를 건강하게 키웠다.
천씨의 집으로 올라가는 계곡엔 소를 비롯해 물이 철철 넘쳐 흐르고 있어 여름엔 특히 가볼만 해 보였다.
천씨도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기력이 다해 이젠 많은 짐을 짊어질 수가 없다. 그래도 아랫집으로 가져가기 위해 이것저것 챙겼다. 항상 뭔가를 손에 들고 다니는 사람은 그냥 갈 수가 없는 법이다. 조선시대에나 사용했음직한 봇짐 속에 주섬주섬 주워 담았다. 수십 년 산골생활에서 밴 가장의 책무고 정(情)의 표현인 듯했다.
계곡 건너는 다리를 나무로 엮어놓았다. 맞은 편엔 산수국이 하얗게 피어 있다. 가을의 정취다.
그를 두고 먼저 내려왔다. 올라가는 길과 내려오는 길과는 또 달랐다. 첩첩산중 오리무중의 산길은 내려올 때도 여전히 헷갈렸다. 분명 올라가는 길에 봐 두었던 머루를 내려오는 길에 잔뜩 담아서 가리라 마음먹었는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내려오는 길에 그 오지의 마을, 너와마을 천씨의 집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문명의 이기라고는 라디오 하나뿐인 집이다. 그것도 평소에는 전혀 나오지 않고, 오로지 정각 뉴스시간에 뉴스만 전하는 라디오다. 천씨는 그 라디오 뉴스를 통해 시간을 가늠한다고 했다. 자연의 시간은 항상 그와 함께 흐르지만 하산한 자식들은 인간의 시간에 맞춰져 있으니, 그도 라디오를 통해 인간의 시간을 알아야 했다. 그의 집은 자연의 시간이 흐르는 곳, 정말 선계 같은 세상이다. 그 선계 같은 세상도 머지않아 그가 선계로 떠나는 날, 자연의 시간은 영원히 멈춰질 것만 같다.
민속문화재 제33호로 지정돼 있는 삼척 신리 너와마을의 너와집. 원래 집 주인인 김진호씨가 십여 년 전까지 살았으나 지금은 전시만 하고 하고 있지, 사람은 살고 있지 않다.
염영대
01.19,2012 at 2:53 오후
님의 덕분에 너와집 구경
잘하고 갑니다.
설날을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Old Bar^n
01.21,2012 at 3:59 오후
귀한곳을 다녀오셨습니다.
잘 보존되었으면 좋겠군요.
유머와 여행
01.23,2012 at 10:29 오전
정말 아름다운 곳이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