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가 우리나라 구례 산동에 들어온 시기는 대략 1천년 전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옛날 중국 산동성에 사는 한 처녀가 구례로 시집오면서부터라고 전한다. 구례 산동과 중국 산동성은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모두 산수유 주산지이기도 하다. 중국 산동성의 지명을 구례 산동에서 따왔다는 얘기도 있다.
산수유꽃이 산수유마을을 온통 노란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사진 산수유축제추진위원회 제공
산수유의 꽃말은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이라고 한다. 이는 산수유의 꽃과 열매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산수유 열매의 씨를 뺄 때 처녀들이 입에 열매를 넣고 씨와 과육을 분리했다. 어릴 때부터 해온 작업이라 처녀들은 앞니가 유난히 많이 닳아 있어서 누구나 쉽게 알아보았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몸에 좋은 산수유를 늘 입에 달고 산 산동처녀들과 입맞춤을 하면 보약을 먹는 것처럼 이롭다고 하여 남원과 순천 등지에서 일등 신붓감으로 꼽혔다. 뿐만 아니라 옛날 구례의 젊은이들은 사랑을 맹세할 때 연인에게 산수유꽃과 열매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노란색 꽃과 붉은 열매, 이는 사랑을 얘기할 때 항상 사용되는 색깔이기도 하다. 봄의 화사한 색깔인 노란색과 정열을 상징하는 붉은 색이 바로 영원히 변치 않은 사랑인 것이다.
2월 말부터 피기 시작하는 산수유꽃은 4월말까지 지리산 자락을 노란색으로 물들인다. 지리산 성삼재와 만복대를 배경으로 평촌, 사포, 상관, 하위, 상위, 월계, 반곡, 대평마을과 길 건너 남원 방향의 현천, 달전, 그리고 산수유 시목지가 있는 계척마을까지 온 천지가 노란 물결로 출렁인다. 그 중에서도 상위마을 전망대에 올라 유장하게 펼쳐진 지리산 끝자락을 노랗게 물들인 풍경과 계곡과 바위가 어우러진 반곡마을의 풍광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눈과 귀, 신체의 모든 감각기관은 지리산의 웅장하면서 아담한 풍광과 그곳의 마을을 수놓은 노란색의 향연에 더 이상 언어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마침 내린 눈이 지리산 자락을 덮고 산수유꽃까지 덮고 있다. 사진 산수유축제추진위원회 제공
그 봄소식을 전하는 산수유축제가 열리는 마을을 관통하며 걷는 길인 산수유꽃담길이 만들어졌다. 길을 걸으며 화려한 꽃을 감상할 수 있는 금상첨화 같은 길이다. 그 길을 구례군 문화관광실 관광문화담당 이병호 계장이 직접 안내했다. 일단 승용차를 타고 산수유축제 상설무대가 있는 상관마을로 향했다. 널찍한 주차장이 나왔다. 주차장 옆으로 상설무대가 한창 조성 중이다. 3월 축제 이전까지 끝낼 방침이다. 이 계장은 “이곳에 산수유의 유래부터 역사까지 모든 것을 전시․안내할 수 있는 산수유문화관도 건립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산수유술, 산수유환, 산수유액기스, 산수유막걸리, 산수유과자 등도 전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제품을 만들고 있는 기업은 지금 “남자한테 좋기는 좋은데, 콕 집어서 말하기는 뭐하고…”라는 광고문구로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 그 기업이다.
산수유 축제기간 중 열리는 판소리대회.
주차장에서 꽃담길 가는 길로 노란색의 커다란 조형물이 눈에 띈다. 뭔가 놀이동산의 기구같이 보이지만 산수유꽃을 형상화해서 만든 조형물이다. 산수유를 가로수로 식재하고 주변을 제대로 정비하면 아름다운 걷기길이 될 것 같아 보인다.
바로 그 옆엔 전망대가 있다. 동남쪽으로 성삼재와 노고단, 동북쪽으로 만복대와 정령치, 동쪽으로는 저 멀리 반야봉 등의 연봉들이 산수유 마을을 배경으로 쭉 이어져 있다. 산수유 마을의 배경이 지리산 능선인 것이다. 설산의 연봉들은 한 폭의 동양화를 펼친 것과 같다.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산수유꽃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야트막한 동산 정상의 전망대에서 조금 내려가면 방호정이란 정자가 있다. 암울한 일제시대, 지방 유지들이 울분을 달래고 지역의 미풍양속을 가르치며, 시풍을 진작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했다고 한다. 바로 아래 무동천이 흐르고 있다. 정자에 앉아 흐르는 계곡 물을 보며 시 한 수를 읊는 선조들의 여유가 엿보인다.
산수유마을 사이로 산수유꽃담길이 나 있다.
무동천에서 선조들의 음풍농월을 떠올리며 그 옆에 있는 서시천을 지난다. 섬진강으로 합류되는 물줄기들이다. 섬진강의 지류인 셈이다. ‘어머니의 산’ 지리산의 풍부한 물을 실감할 수 있다.
이젠 산수유마을로 접어든다. 평촌마을 돌담길 사이로 산수유나무가 노란꽃을 피우려 꽃망울을 맺고 있다. 따뜻한 바람이 조금만 더 불면 금방 터트릴 기세다. 일부 나무는 지난 겨울 따지 않은 빨간 열매를 아직 매달고 있다.
평촌마을에서 성삼재까지 등산시간은 약 1시간쯤 걸린다고 한다. 산수유마을에서 산수유꽃을 즐기며 걷다가 조금 부족하면 성삼재나 노고단까지 등산해도 괜찮을 성싶다.
수백 년은 족히 됐을 법한 산수유나무들이 마을 곳곳에서 방문객을 향해 가지를 활짝 펼쳐 반기는 듯하다. 상춘객이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는 봄의 향연이다. 상춘객은 평촌마을에서 봄의 소리와 색깔, 봄의 속도를 만끽하며, 정상 봉우리에 아직 채 가시지 않은 겨울의 시샘어린 하얀 설봉들을 감상할 수 있다. 가는 겨울과 오는 봄이 공존하는 지리산 자락에서 노란색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자연과의 교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산수유마을 사이로 흐르는 서시천 계곡은 지리산 만복대 능선이 수원지이다.
서시천을 가로지르는 평촌마을의 대음교에서는 야경이 절경이다. 하얀 조명이 흐르는 물과 어둠 속에 어우러져 만복대를 배경으로 보라색빛을 발하는 다리야 말로 언어로 형언하기 힘들 정도의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골의 돌담길은 옛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한다. 산수유 마을 어디를 가든 돌담길을 볼 수 있다. 우리 마음의 고향 풍경이 바로 이곳인 것이다.
평촌마을 옆 반곡마을 정자 사이를 지나면 반야정이 나온다. 반야정 앞으로 서시천의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마치 봄을 재촉하는 소리 같이 들린다.
봄이 오는 듯한 반곡마을은 반반한 계곡에 반반한 돌이 많아 상춘객이 계곡에서 봄을 맞기 안성맞춤인 곳이다. 구례시에서는 산수유나무 사이로 나무데크를 놓아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동행한 이 계장은 “반곡마을이 산수유 꽃담길의 주요 거처”라고 강조했다. 마을 곳곳엔 민박시설을 갖추고 있다.
반곡마을을 거쳐 서시천을 따라 내려오면 산수유축제가 열리는 상설무대와 주차장으로 원점회귀 할 수 있는 꽃담길이 조성돼 있다. 총 5.1㎞에 1시간 30분쯤 소요된다. 전혀 부담이 안 되는 거리다. 아이들 데리고 가족과 함께 걷기에 딱 좋은 길이다. 산수유나무와 꽃을 조금 더 즐기고 싶다면 2㎞쯤 떨어진 상위마을의 상위계곡으로 가면 한국에서 가장 멋진 산수유계곡을 볼 수 있다. 계곡과 더불어 정부 지정 산수유체험마을을 운영하고 있어 상춘객들은 다양한 체험을 경험할 수 있다. 상설무대에서 산수유 ‘할머니나무’라고 불리는 산수유시목이 있는 계척마을까지는 약 6.7㎞ 떨어져 차로 이동해야 한다. 그곳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1000년을 훌쩍 넘긴 산수유 시목이 고이 모셔져 있다. 매년 풍년 기원제를 올리는 나무이기도 하다. 계척마을의 할머니나무와 달전마을의 ‘할아버지나무’가 가장 오래된 산수유로 알려져 있다.
활짝 핀 산수유꽃.
산수유마을로 봄을 맞으러 가서 봄이 오는 소리를 들어보자. 귀를 쫑긋 세워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라.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지, 봄이 오는 모습이 보이는지. 마침 시인 홍해리의 ‘산수유, 그 여자’라는 제목의 시가 지금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하고 있다.
‘눈부신 금빛으로 피어나는/ 누이야,/ 네가 그리워 봄은 왔다
저 하늘로부터/ 이 땅에까지/ 푸르름이 짙어 어질머리 나고
대지가 시들시들 시들마를 때/ 너의 사랑은 빨갛게 익어/ 조롱조롱 매달렸나니
흰눈이 온통 여백으로 빛나는/ 한겨울, 너는/ 늙으신 어머니의 마른 젖꼭지
아 아,/ 머지않아 봄은 또 오고 있것다.’
그렇다, 봄은 또 오고 또 간다. 지금은 새로운 봄을 맞이할 때다. 그 봄을 맞으러 산수유마을로 가보자. 흑룡의 봄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평촌마을의 대음교가 야경과 어울려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
산책길
03.26,2012 at 10:46 오전
금수강산, 갑자기 생각이 난 단어입니다. 한국에서 살 때는 경치 참 좋다 정도 였지만 외국에 살면 한국의 산야가 올망졸망 금수강산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