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전국의 산이 연분홍빛으로 물든다. 어느 산으로 가던지 연분홍빛의 꽃이 만발한다. 본격 산행에 나선 등산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봄의 마지막 전령인 철쭉이 연분홍빛 꽃의 주인공들이다. 봄의 끝물을 전국의 산에 화려하게 적시는 꽃이기도 하다.
철쭉은 고도에 따라 개화 시기가 다소 차이 있지만 대개 5월 중에 꽃을 활짝 피운다. 철쭉을 끝으로 더 이상 봄꽃은 없다. 따라서 지금이 철쭉산행에 딱 좋은 계절이다.
황매산 능선 위의 철쭉군락지에 철쭉이 활짝 피어 있다. 합천군에서는 매년 5월 중순 황매산 철쭉제를 열어 등산객들 맞이한다. 사진 합천군청 제공
철쭉은 한국의 웬만한 산에서 보고 즐길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한국에서 철쭉 최대 군락지를 자랑하는 산이 바로 합천 황매산(黃梅山․1108m)이다. 매년 수십만 명이 2주간 열리는 철쭉 축제 기간 중에 황매산을 찾는다.
올해는 5월 12일부터 25일까지 2주간 황매산 일원에서 개최한다. 이 때의 황매산은 온통 연분홍빛 천지로 변하며, 모여든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가 된다. 그 산을 합천군 관광개발사업단 강위수씨의 안내로 모산재 등산로 입구에서 돛대바위~무지개터~모산재(767m)~진달래 군락지~철쭉 군락지~황매산 정상~철쭉제단~오토캠핑(은행나무)주차장을 거쳐 황매산 군립공원 입구로 내려왔다. 약 11.2㎞ 되는 거리를 5시간 남짓 걸렸다.
황매산 능선 위로 활짝 핀 철쭉 사이로 등산객들이 지나고 있다. 합천 황매산 철쭉은 매년 5월 중순 활짝 피어 등산객들을 맞이한다.
모산재 입구에 들어서자 웅장한 암벽이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다. ‘야, 황매산이 이런 암벽산이었나!’ 감탄이 절로 나왔다. 등산로 입구 옆에는 사적 제131호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 사찰 영암사가 건물은 없고 그 흔적과 쌍사자석등․3층 석탑만이 남아 옛 영화를 대변하는 듯했다.
쌍사자석등은 원래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였으나 일본 골동품상이 훔쳐가려던 것을 빼앗아 원위치하는 과정에서 다리가 부러져 보물 제353호로 지정된 유물이다. 실제로 지켜보고 있으면 예사롭지 않은 기품을 느낄 수 있다.
황매산 철쭉 군락지 사이로 난 등산로
영암사지를 뒤로 하고 본격 산행은 시작됐다. 암벽으로 이뤄진 등산로는 가파르다. 주변에 나무라곤 소나무뿐이다. 암벽 사이로 소나무가 강한 생명력을 과시하며 파릇파릇 새순을 피우고 있다. 절벽 아래 계곡엔 다양한 나무가 형형색색의 꽃을 뽐내며 신록을 전하고 있다. 정몽주의 한시 ‘春興(춘흥)’이 절로 생각나는 봄은 봄이다.
모산재 올라가는 아찔한 암벽 등산로
분재 같은 소나무는 지천으로 널려 있다. 그 소나무만큼 다양한 모양의 바위들이 등산로마다 객을 반긴다. 돛대바위․공룡바위․코끼리바위․사람바위 등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유혹한다. 합천의 국립공원 가야산의 만물상과 견줄 만했다. 국립공원과 군립공원의 차이라고나 할까.
4월말 황매산 철쭉군락지에서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는 철쭉들
암벽산은 보통 기(氣)의 응결처다. 모산재 기의 응결처는 뜻밖에도 암벽 위에 흙이 모여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른바 ‘무지개터’로 불린다. 합천군에서 풍수학자들을 동원해 ‘한국 제일의 명당’자리를 확인했다고 안내판까지 붙여놓고 있다.
합천군 강위수씨는 “산을 아는 사람은 모산재로 와서 한국의 기가 센 곳을 느끼고 철쭉 군락지로 향하지만 산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철쭉 군락지만 본다”며 “이는 황매산의 다양한 매력을 제한적으로 즐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지개터에서 불과 100m 남짓한 곳에 있는 모산재에 도착했다. 암벽 위에 정상 비석이 있고, 최치원 선생이 수도했다고 전해지는 바위도 부근에 있다. 모산재는 원래 다양한 모양의 바위들이 많아 묘산(妙山)으로 불렸으나 소리 따라 모산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모산제 정상 모산제 정상에서 황매산 정상으로 가는길에 이정표가 세워져있다
‘황매산 4㎞’란 이정표도 세워져 있다. 황매산으로 향했다. 바로 진달래 군락지로 이어졌다. 진달래 천지가 약 1㎞ 계속됐다. 강씨도 “이렇게 넓은 진달래 군락이 이곳에 있는 줄 미처 몰랐다”고 감탄했다. 이제부터 암벽은 보이지 않고 평원만 펼쳐졌다. 진달래와 철쭉 군락이 시작된 것이다.
황매산 정상을 화려하게 수놓은 철쭉
진달래 군락이 끝나자마자 철쭉 군락이 시작됐다. 마치 알프스 산장에 온 듯한 더 넓은 평원에 지천으로 널린 철쭉들이 시간만 되면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리려고 잔뜩 움츠리고 있는 형국이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느낌이다. 철쭉과 진달래 사이로 야생화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다. 보라빛의 개미취, 진보라빛의 엉궝퀴, 노란 원추리 등이 철쭉 틈새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 형국이다. 정상은 아직 멀었는데, 아직 철쭉 군락이 끝나지 않고 있다. 정말 한국 최대의 철쭉 군락지답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철쭉 군락지가 끝날 즈음 갈대군락이 시작됐다. 강씨는 “가을이 되면 햇빛을 받은 억새 잎새가 일렁이며 반짝거리는 모습은 철쭉 군락 못지않은 장관이다”며 “황매산은 봄 진달래와 철쭉, 여름의 더 넓은 초원, 가을 억새, 겨울 눈꽃은 한국의 어느 산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며 사철 내내 즐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정상은 지근거리다. 불과 1㎞ 정도면 밟을 수 있다. 철쭉산행을 만끽하고 억새와 기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은 황매산 산행에서 덤으로 주어지는 행운이다. 꼭 한 번 가볼만한 산이다.
황매산 정상
여행수첩 교통: 서울에서 승용차로 경부 혹은 중부고속도로로 가다 영동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여주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빠진다. 중부내륙고속도로 고령분기점에서 88고속도로 접속한 뒤 고령나들목→33번 국도→합천읍으로 곧장 가면 황매산이 나온다. 황매산 군립공원 입구까지 대중교통이 없기 때문에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는 합천읍내에서 황매산 입구까지 택시로 3만원 정도 한다.
식당(지역번호 055) 합천은 다양한 농․축산 특산품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토종 흑돼지와 한우, 딸기 등을 현지민들은 추천한다. 토종돼지는 문의 932-6210. 한우는 토종황토한우 933-0056. 사계절 먹을 수 있는 아이스딸기는 933-2836. 문의 합천군 관광개발사업단 930-3755~8. 황매산 철쭉제전위원회 934-1411.
김현수
05.12,2012 at 8:17 오전
제 고향의 뒷산을 소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산청쪽에서 오르면 차가 ‘단적비연수’ 세트장옆 주차장까지 오르도록 되어 있어서
편리하긴 했지만 산이 많이 훼손되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