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산이란?…”산은 정직하고 엄하고 공평하고…”

양승태 대법원장은 알려진 대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등산 마니아다. 고교 시절부터 산에 다니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50여 년 동안 한 순간도 산을 멀리한 적이 없다. 고교 시절은 산악부에서, 대학 땐 고시공부를 하러 깊은 산사(山寺)에 들어가 틈틈이 주변 산이나 다니고, 1970년 사법시험 합격한 뒤에도 산과 끈끈한 정을 이어갔다.

대법원장이 그동안 등산한 산이 몇 개쯤 될까? 한국의 웬만한 산은 다 가보지 않았을까 싶다. 고교 1년 때인 1963년 지리산 첫 종주를 한 이래 50여 년 동안 험한 산행 위주로 산을 다녔으면 산꾼 이상 다녔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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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해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나 로체와 에베레스트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등산을 왜 하시고, 어떤 계기로 하시게 됐습니까?”

“그 이유를 설명하기 참 어렵습니다. 모든 취미가 그러하듯 타고난 성품과 맞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저 마음속에 저도 깨닫지 못하는 방랑벽이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요? 고교 시절부터 등산반에 들어 산행을 시작하고 그 이후 점점 더 심취하게 된 것 같습니다. 나도 내가 왜 산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누가 나를 특별히 산에 이끈 것도 아니고, 산을 가까이 한 데에 무슨 별다른 계기가 있은 것도 아닙니다. 마치 산에 홀린 듯이 저절로 산에 다가갔다고 해야 할는지…. 고교(경남고)시절 왜 내가 산악부에 가입했는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떠오르지가 않아요. 하지만 등산이 좋은 건 알고 있습니다. 등산은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의 평정을 주며 무한한 인내심을 길러줍니다. 당사자의 말을 경청하고 올바른 결론을 내리기 위해 고민하며 사색하여야 하는 법관에게 적합한 운동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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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이 2011년 4월 대법관을 퇴임한 뒤 히말라야(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면서 해발 5416m의 소롱라 지점에서 기념촬영 했다.

그러나 공직이라는 자리가 그를 산과 조금씩 멀게 했다. 한 달에 서너 번씩 가는 산행이 한두 차례로 줄어들더니 1980년 들어선 영국으로의 장기 유학으로 한달에 한 번 산행하기도 힘든 상황이 됐다. 일에 치여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산을 등지고 세월이 흘렀다. 산행을 재개한 건 1989년 사법연수원 교수를 맡으면서였다.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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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하면서 포터들의 짐 운반도구를 머리를 메어 보고 있다.

다시 찾은 산은 그를 더욱 산에 빠지게 했다. 공직에 대한 책임감이 누구보다 강하고 원칙주의자인 그가 산 때문에 공직생활의 심각한 고비를 맞을 뻔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고교 동기인 친구가 알프스 몽블랑으로 보름 정도 등반을 가자고 제의했다. 산행을 재개한지 10여년이 지난 2001년 서울지법 북부지원장으로 있을 때였다. 마음 같아선 당장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겐 법관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산에 갈 시간도 내기 힘든 법관을 계속해야 하나. 사직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운명의 시간은 흘렀지만 쉽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아마 당시까지만 해도 자유를 추구했던 방랑벽보다는 공직을 지킨다는 책임감이 훨씬 더 강하게 작용했다. 운명은 그를 공직에 머물게 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후배들의 신망 받는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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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소롱라에서 같이 했던 일행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2011년 2월 말 대법관을 퇴임하고 대법원장에 지명되기 전 6개월간을 대법원장은 “내 인생의 황금기”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대법관 퇴임할 때도 다시는 법원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후배 법관들에게 말할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대법관으로서 품위를 지키고 전관예우라는 이름으로 후배 법관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변호사 활동도 하기 않기로 다짐했다. 그러고선 백담사에 보름동안 머물며 설악산을 속속들이 누비며 다녔다. 곧이어 네팔 히말라야로 훌쩍 떠났다. 무려 40여 일 머물며 안나푸르나와 마나슬루 트레킹을 하고 돌아왔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캘리포니아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존 뮤어 트레일을 친구들과 함께 트레킹을 떠났다. 동행했던 미국에서 의사를 하고 있는 고교 동기가 우연히 자연인 양승태의 한국 집에 안부를 전하기 위해 전화를 했다. 전혀 뜻밖의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마디로 난리였다. 왜 이제 연락하느냐,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지마라. 지금 당장 귀국해야 한다는 말이 수화기를 통해 다급하게 들려왔다. 한참 고민을 하다 한 달 가량 일정으로 떠난 존 뮤어 트레킹을 일주일 만에 접는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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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어디를 가든 야영하게 되면 본인의 장비나 텐트는 꼭 직접 챙기거나 친다.

결과적으로 그의 법관으로서 운명은 대법관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그가 가진 인품과 법지식을 법원이 더 필요로 했다. 결국 법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대법원장은 사석에서 농담 삼아 “내 인생의 황금기는 순식간에 끝났다. 이제 더 이상 올 수 없고 그냥 지나가 버렸다”고 말하곤 한다. 생애 처음으로 맛본 6개월간의 휴식은 너무 달콤하고 짧게 스쳐지나간 것이다. 이런 시간이 다시 올 수 있을까?

“시간이 허락한다면 히말라야의 다울라기리 봉우리 둘레를 한 바퀴 도는 트레킹을 꼭 하고 싶습니다. 마치 신(神)이 그린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신비로운 느낌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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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산악회를 이끌고 일본 다테야마를 등정했을 때 일행들과 함께.

“재직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산행은 2004년 2월 특허법원장으로 있을 때 시작하여 2년 5개월 만에 주파한 백두대간 완주, 2007년 6월 대법원 산악회를 이끌고 첫 해외원정으로 일본 다테야마 등정이 기억에 남습니다. 대법관 퇴임 후 지인들과 함께 한 40일간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와 마나슬루 트레킹,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존 뮤어 트레킹 등은 정말 꿈같은 산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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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과 함께 산행했을 때 같이 했던 후배 법관과 일행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산은 정직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모두 드러내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드러나는 모습을 보며 어떤 판단을 하는가는 보는 사람 각자의 몫입니다. 산은 엄합니다. 산을 얕잡아 보는 사람은 여지없이 엄하게 응징합니다. 또한 산은 공평합니다. 땀 흘리고 봉우리를 올라온 사람에게는 뿌듯한 성취감으로 잊지 않고 보상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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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의 산행필수품을 지도다. 어느 산을 가든 꼭 챙겨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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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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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정상을 배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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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들과 같이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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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이 가장 좋아하는 취미는 야영산행이다. 야영장비는본인이 직접 꼭 챙기며, 그가 가지고 있는 텐트만 9동이나 된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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