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장비 수집가 오기현씨, “산악박물관 같은 50년 등산역사 모았습니다“

1960년대 나무 피켈에서부터 현대식 피켈까지 총 10여 자루, 8자형부터 튜브형까지 확보기 40여개, 특수모델 하강기 6개, 주마링 할 때 사용하는 등강기 15개, 자동제어 되는 등산구조용 또는 동굴탐헝용 등강기 10여개, 시대 변천에 따른 아이젠 12개, 등반용 프렌드 50여개,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사용하는 카라비너 400여개, 암벽등반용 벨트 16개, 텐트 9동, 헤드랜턴 40여개, 미제 또는 스위스제 나이프 100여점, 시에라컵 20여개, 지퍼라이트 100여개, 초를 사용하는 캔들 라이터 4개, 가스등 10여개, 스토브 120여개, 1960년대 사용하던 군용에서 현대식 코펠까지 종류별로 12개, 배낭 20여개, 나침반 30여개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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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산악인 오기현씨가 집에 보관하고 있는 산악장비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산악장비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어느 산악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소장품을 나열한 것이 아니다. 순전히 개인이 모아둔 산악장비만 대략적으로 정리한 것들이다. 부산 산악인 오기현(65)씨의 50년 등산역사를 보여주는 산악장비들이다. 한국 산악장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을 정도다.


“아마 내만큼 산악장비를 많이 갖고 있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1963년 고교(부산 경남고) 입학하면서부터 가입한 산악부에 있으면서 모으기 시작한 장비를 지금까지 대부분 보관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집이 좁아 중간중간에 장비를 조금씩 정리한 것입니다. 모두 모아뒀다면 웬만한 박물관에 전시하고도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침 그가 보유한 산악장비가 어느 정도인지 비교할 기회가 생겼다. 지난 6월 13일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조성한 서울 도봉동 산악박물관에 갈 일이 있었다. 취재를 마치고 산악박물관을 한 번 둘러봤다. 불과 며칠 전에 취재한 오기현씨의 산악장비에 비해 전시된 장비들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그가 보유한 산악장비는 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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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현씨는 산에 갈 때는 항상 멋쟁이 등산복 차림으로 입는다.

“피켈은 초기에 나무로 나왔으나 점점 가볍고 기능이 뛰어난 알루미늄으로 바뀌었고, 확보기는 8자형에서 튜브형으로, 이어 티타늄으로 점차 변형됐습니다. 보온병도 처음엔 수통을 넣고 빼고 하는 무거운 것에서부터 고정형까지 그 변천과정이 눈앞에 선합니다. 텐트도 군용 A형 텐트에서 지금 원터치식 텐트까지 모든 산악장비를 전부 경험했습니다. 아마 나를 거치지 않은 산악장비를 없을 겁니다.”


그만큼 산악장비 보유종류와 개수․산악지식 등 ‘모든 것’에 관한한 누구보다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자신했다. 실제로 그는 피켈․확보기․라이터․코펠․버너․스틱․스토브․시에라컵 등 대부분 국내 첫 모델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 누런 군용색깔의 코펠을 보여주며 50년 전 지리산 첫 종주할 때 사용하던 것이라고 자랑했다.


그가 보유한 산악장비는 총 수백 점에 이른다. 후배들도 그가 산악장비를 모으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등산갈 때 의례히 그에게 “형님, 장비 좀 빌려주이소”하고 요구한다. 경상도에서, 혹은 후배가 뭔가를 빌려달라고 할 때는 ‘그냥 달라’는 얘기와 같다. 돌려주지 않아도 달라고 하기 어려운 게 남자 선후배들의 세계다. 그렇게 없어진 산악장비가 부지기수다. 아마 그에게 알프스에 있는 산악박물관을 한 번 보여주며 그만큼 채워보라고 하면 얼마 걸리지 않아 모두 채울 성싶다. 유럽의 등산 발상지인 알프스 산악박물관엔 19세기 사용하던 망원경과 자켓․피켈 등 산악장비가 그대로 전시돼 있다. 우리나라 초기 산악장비도 그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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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현씨 집 곳곳에 산악장비가 보관되어 있다. 서랍 속에 다양한 랜턴이 꼭꼭 숨어 있다.

그의 산악장비에 대한 욕심은 1963년 고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경남고교에 입학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산악부에 가입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경남중학교에 다닐 때 영국의 탐험가 로버트 F 스캇(Robert Falcon Scott)이 쓴 <남극탐험기>를 읽고 크게 감동을 받은 터였다. 내심 탐험가의 꿈을 키우며, ‘탐험가가 되기 위해선 꼭 등산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남극탐험기>는 1800년대 후반 남극탐험에 나선 스콧이 탐험에 임하는 자세나 활동에 대해 아주 매력 있게 기술한 책이다.


오씨가 고교 입학할 당시엔 전국적으로 등산붐이 일던 시기였다. 부산도 예외는 아니었다. 1960년대 초반부터 각 학교에서 잇따라 산악부가 창립되고, 전국 등산대회뿐만 아니라 시도단위에서도 등산대회를 잇따라 개최했다. 학생들은 자연히 대회 우승을 목표로 산악활동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경남고 산악부원들도 매주말마다 학교 뒤 구봉산에 올라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등 월례등반, 춘계등반, 여름방학을 이용한 장기등반 등 훈련 명목으로 각종 등반과 등산을 다녔다. 그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산행에 나섰다. 산행은 장비에 대한 기본사항을 철저히 숙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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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현씨가 고교 시절 사용했던 군용 반합을 들어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산과 산악장비에 관한한 그는 동기들에 비해 발군이었다. 1학년 대장을 맡은 이래 그의 호칭은 지금까지 대장으로 통한다. 50년 동안 불렸던 이름이 오기현씨보다 오대장이 훨씬 더 많다. 이름은 몰라도 오대장을 아는 그런 사람이 된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호칭은 대장에서 교장선생님으로 점차 바뀌었다. 산악장비와 산행지식, 주변 맛집 등에 관한 정보를 모르는 게 없는 만물박사였기 때문이다. 어느 지역, 어느 코스로 산행을 가던지 뒤풀이까지 모든 정보는 그의 머리 속에 정리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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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시절 9박10일 동안 지리산 첫 종주를 갔을 때 군용 A텐트에서 취사를 하던 장면을 담았다.

고교 2년 때인 1964년 경남고 산악부는 첫 지리산 종주원정에 나섰다. 대원사에서 화엄사까지 9박10일 일정이었다. 지금은 2박3일이나 3박4일이면 충분하지만 당시엔 ‘산 넘고 물 건너’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부산에서 대원사까지 가는 데만 꼬박 이틀이 소요됐다. 갖고 간 장비도 허접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요즘은 산에 화기를 보유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제하고 있지만 당시엔 산에 갈려면 화기는 필수였다. 솥을 통째로 메고 가서 나무를 모아 불을 피워 밥을 하곤 했다. 비가 와서 불을 피울 수 없으면 구닥다리 석유 버너로 불을 지폈다. 라면도 없던 시절 생국수를 갖고 가 삶아먹곤 했다. 9박10일간의 지리산 첫 종주가 너무 힘들고 고생스러웠지만 그 짜릿한 경험이 계속 그를 산에 머물게 한 큰 요인이 됐다.


그 때 만났던 인물이 세석에 움막 짓고 살던 ‘지리산 기인’ 허우천 선생이다. 허 선생은 어느 날 갑자기 바람과 같이 사라져 지리산을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래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치밭목에 사는 민병태씨도 혹시라도 자주 보지 못하면 “이번엔 오래간만에 왔다”고 할 정도로 막역하게 지내는 계기가 됐다. 오씨는 50년 동안 산을 다니면서 정확히 세지는 않았지만 지리산 종주만 200번 넘게 했다고 한다. 자주 갈 때는 1년에 16번까지 했다고 한다. 거의 절반가량을 혼자 했다. ‘자유롭기 위해서’ ‘혼자만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산악장비 수집가 오기현씨, 1964년 첫 지리산 종주>에 계속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1 Comment

  1. 김병학

    08.23,2012 at 9:01 오후

    등산에서 장비가 수십종류의 장비가있는데 등산을 소홀히 하면 사고를 유발하는것 너무나 무시하는 등산객들 발을 헛디디면 낭떨어지로 떨어지면 돌이나 나무에 부디치게 마련
    두개골도 허리도 팔다리도 사지가 여러갈래로 다양하게 숨지게 마련 모인사는 지금와서 재조사 한담니다 요는 등산장비 무시한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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