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지산(寂地山) 정상엔 야마구치현에서 두 차례 치른 전국체전 성화 채화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그 중앙에 조그만 관음보살상을 모신 신전이 있다. 주변에 동전과 지폐가 흩어져 있다. 엄청나게 큰 참나무 대여섯 그루가 둘러싸고 보호하는 모양이다. 범상치 않은 ‘신사(神社)의 사당’ 같은 분위기다.
신사를 모신 듯한 조그만 사당 옆에 야마구치에서 열린 전국체전에서 성화를 채화했다는 기념비가 함께 서 있다.
주변엔 나무 테이블이 몇 개 있다. 등산객을 위해 만들어놓은 듯했다. 땀 냄새 때문인지 유난히 벌레들이 많이 붙는다. 벌레를 피해서 자리를 조금 아래로 옮겼다. 등산로 양쪽으로 등산로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밧줄을 걸어놓았다. 멸종위기종 함박꽃과 얼레지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는 안내판을 붙여놓았다. 뿐만 아니라 ‘서중국산지국정공원’이란 푯말 옆에 식물채취금지라는 경고판도 보인다. 이들이 꽃을 피우는 4월부터 6월까지 원시림의 깊은 숲속에 향기까지 가득할 것 같다.
적지산 이정표와 식물채취금지 안내판.
정상 주변엔 대부분 참나무와 단풍나무 같은 활엽수들이 편백나무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이들이 떨어뜨린 잎은 토양과 같이 어울려 짙은 흑갈색빛을 띠어 건강하게 보인다. 숲은 너무 깊어 도저히 햇빛이나 주변 전망을 살필 수가 없다. 이 코스에서 아쉬운 딱 한 가지 점은 바로 이것이다.
봄에는 야생화꽃과 향기, 여름엔 원시림의 깊은 숲과 계곡, 가을엔 단풍으로 뒤덮이는 관산과 적지산 등산은 다른 어떤 산이 부럽지 않을 코스다.
목마동굴 앞에서 야마구치현 공무원 오카상과 신유미씨가 기다리고 있다.
모처럼 이정표가 다시 나왔다. ‘우곡산․소오랑산(1162m) ↑’ ‘적지산↓’ ‘←적지임도’ 등을 가리키고 있다. 지도를 유심히 들여다보니 주변 산은 온통 1000m 이상의 봉우리로 연봉을 이루고 있다. 그 중에 관산과 적지산이 1339m와 1337m로 으뜸이다.
흑갈색빛의 등산로는 너무 푹신해서 걷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다리에 전혀 무리를 주지 않는다. 우곡산 정상을 30분 앞두고 왼쪽 적지산계곡주차장으로 하산이다. 주차장까지 100분 걸린다는 이정표가 붙어 있다. 우리 등산로엔 ㎞나 m로 남은 거리를 표시하는데, 이곳에선 분(分) 단위로 남은 등산시간을 표시하고 있다.
오룡폭포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오카상과 신유미씨가 지나고 있다.
출발한지 4시간여 만에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등산로 자체는 힘들지 않지만 오래 걸으면 어디서나 누구나 쉬고 싶은 심정이다. 더욱이 이번 등산은 중간에 비가 쏟아져 힘들게 했다.
하산길로 접어들자 말자 조그만 계곡이 시작됐다. 물이 흘러가는 모양이 심상치 않다. 산 아래로 가면 뭔가 분명 있을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런 느낌으로 계속 진행된다.
야마구치 공무원 오카상과 신유미씨가 쏟아지는 제3 폭포의 물을 바라보고 있다.
낭떠러지 같은 길 앞에 동굴이 나온다. 동굴 속은 칠흑 같은 어둠이다. 햇빛에 비친 끝만 보일뿐이다. 동굴 입구에 ‘목마(木馬․키우마)동굴’이라는 안내문이 있다. 동굴 안에는 박쥐가 서식하고, 상하폭이 1.6m밖에 안되니 조심하라는 문구도 보인다. 안에는 정말 아무 것도 안 보인다. 완전히 감으로 걷고 있다. 랜턴을 켜고 올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등산을 모두 마쳐 기분이 좋은 듯 제1 폭포 앞에서 일행들이 웃으며 내려오고 있다.
동굴을 지나자마자 낭떠러지 같은 아찔한 등산로에 철제 사다리를 놓아 등산객을 지나게 했다. 위험할수록 경관은 뛰어난 게 자연의 역설이다. 철제사다리를 내려서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눈을 의심케 하고도 남았다. 깊이와 길이를 알 수 없는 폭포가 끝없이 흘러내렸다.
적지산폭포 바로 아래는 야영장이 마련돼 있어 캠핑 매니아들이 즐긴다.
용미폭포 앞에 샘터가 하나 있다. ‘전국명수 100선․일본폭포100선’이란 푯말이 보인다. 동행한 야마구치 공무원 오카상도 “적지산에서 나오는 약수는 전국에서 알아준다”며 “깨끗한 물에서만 사는 와사비가 이곳에서 유난히 생산이 많이 되는 이유도 바로 물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아니나 다를까 하산길 주변에 와사비 판매점이 여러 군데 보인다.
더욱이 한국에서 한참 붐이 일고 있는 야영장도 하산지점에 있다. 한국의 캠핑매니아들이 이곳에 오면 흠뻑 반할 것 같다. 원시림의 숲, 멸종위기종 함박꽃과 얼레지군락, 동굴, 오룡폭포 등 한번쯤 등산와도 전혀 후회하지 않을 만 했다.
무아투어 박태길 대표와 일본 가이드 조주원씨가 제4 폭포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유미씨, 박태길 대표, 조주미 가이드가 정글 같은 적지산숲을 헤쳐나가고 있다.
원시림 같은 적지산 숲이다.
산죽도 만만찮게 자라 길을 막고 있다.
폭포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큰 폭포가 연이어 쏟아지고 있다.
정인우
09.17,2012 at 11:45 오전
아름다운 곳 … 다녀 가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