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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의 기도처 남해 금산 보리암… 氣가 넘쳐흘러 나침반도 방향 못 잡아

남해 금산 보리암. 우리나라 최고의 관음기도 도량처다. 연말연시나 대입 수능, 그 외 기도를 올릴 만한 날이 되면 사람들로 넘쳐난다. 특히 연말연시에 큰 도로에서 보리암 올라가는 입구까지 2㎞ 남짓 되는 거리가 차들로 성시를 이룬다. 2차선 도로에 차들이 양면주차 해있고, 오르내리는 차는 겨우 한 차선으로 곡예 운전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차와 사람들로 꽉 차 정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차가 2㎞ 넘게 줄 지어 있어 아예 올라가기를 포기한 기억이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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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금산 보리암 해수관음상 앞에 서면 남해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보리암 제1 전경일 뿐만 아니라 금산 제1의 전망대로 꼽힌다. 보리암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올라갔으나 일출은 구름 때문에 아쉽게도 보지 못하고 남해의 아름다운 전경만 내려봤다.

어떤 기도처이기에 그 정도일까? 한민족의 기도 유래는 산신기도, 용왕기도, 칠성기도, 3가지로 나뉜다. 이를 한민족 삼신(三神)신앙이라고 한다. 이 중에서 바다의 신에게 드리는 기도가 용왕기도다. 한반도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이 토속신앙의 용왕기도가 불교와 융합해 해수관음(海水觀音)보살로 변한다. 흰옷을 입은 관세음보살이 바다에서 꿈틀거리는 커다란 용의 등에 올라타서, 서 있는 모습이 해수관음을 상징하는 대표적 탱화다. 현재 한국의 3대 혹은 4대 기도처로 알려져 있는 곳은 용왕기도에서 유래한 해수관음 기도처인 것이다. 3대 기도처는 동해의 양양 낙산사 홍련암, 서해의 강화 보문사, 남해의 금산 보리암 등이다. 여기에 한 곳을 더 보태 4대 기도처라고 하면 남해의 여수 향일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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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보리암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에 올랐는데, 그 이른 새벽에도 해수관음상 앞에서 기도를 드리는 참배객이 있었다. 정말 지극정성이다.

남해 금산 보리암은 두 가지 사찰 연기설화가 전한다. 하나는 가락국의 김수로왕이 왕비로 맞아들인 인도 중부 아유타국의 허황옥 공주와 함께 배를 타고 온 장유선사가 세웠다는 설화다. 장유선사는 허황옥 공주의 삼촌이다. 김수로왕과 허황옥 공주 사이에서 열 왕자를 낳았는데, 그 중 일곱 왕자를 장유선사가 데리고 출가했다고 한다. 이 때 장유선사가 거쳐 간 곳이 김해의 장유암, 가야산과 지리산의 칠부처 등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그 장유선사가 처음 찾은 곳이 가락국이 자리 잡고 있는 김해에서 멀지 않은 남해 금산 보리암이라는 것이다. 장유선사는 금산의 천태망상의 변화에 매혹되어 보리암에 터를 잡아 아유타국에서 모시고 온 관세음보살을 모셨는데, 지금의 관세음보살이 그 때의 관세음보살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지만 현재 전하고 있는 설화(fairy tale)이고 신화(myth)로까지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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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워낙 추운 날씨 때문에 사진에도 안개같이 찬기운이 서려 있다.

두 번째는 원효대사 창건설이다. 의상과 함께 신라 불교를 대표하는 원효대사가 산천을 유행하다가 금산의 승경에 이끌려 왔다가, 온 산이 마치 방광(放光)하는 듯 빛을 발했다고 한다. 원효는 이것을 보고 이곳에 보광사를 세웠다고 한다. 산 이름도 널리 빛을 발하는 산이라고 해서 보광산(普光山)으로 불렸다. 이후 보광사에서 왕의 꿈을 안고 백일기도를 올렸던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후 감사의 뜻으로 사찰을 둘러싼 산의 이름을 영구불멸의 비단으로 둘러친 금산(錦山)으로 바꿔 부르게 됐다고 한다. 1660년 조선 현종(1년)이 태조의 유지를 받들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으면서 보리암이란 새 이름을 얻어, 지금까지 이르게 됐다고 전한다.

보리암에서 기도를 올리면 이성계가 그랬듯이 누구나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성취한다고 한다. 그래서 전국 각지에서 사시사철 기도객과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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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 관음보살상 앞으로 새벽 달이 지고 있는 모습이 해수관음상과 잘 어울린다.

보리암에 들어서면 남해 금산의 선경과 해수관음상의 미소를 감상할 수 있다. 해수관음상 맞은 편에 오래된 삼층석탑이 서 있다. 인도 파사석으로 세운 신비한 탑이라고 한다. 탑 건립 전설도 보리암 설화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김수로왕비 허태후가 인도에 갔다가 돌아올 때 거친 풍파를 만나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 허태후가 탄 배에 파사석(인도에만 있는 석재)을 실으니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건너왔다고 한다. 이 돌을 가지고 원효대사가 보리암 앞에 삼층석탑을 세웠다고 전한다. 재질은 화강암으로 상륜부 이상은 약간 파손이 됐으나 후에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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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관음상 맞은 편에 있는 삼층석탑이다. 여기서 나침반을 보니 방향을 못잡고 왔다갔다 심하게 흔들렸다. 왜 그랬을까? 아마 바위에서 뿜어내는 강한 자기장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이것을 흔히들 氣라고 한다.

아침 일찍, 아니 새벽에 일출을 보기 위해 보리암에 올랐다. 마침 안내를 했던 남해 문화해설사가 나침반을 들고 왔다. 이 삼층석탑 옆에서 나침반을 놓으니 방향을 잡지 못하고 침이 이리저리 왔다갔다 했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믿기 힘들 정도로. 추측컨대 삼층석탑과 탑을 받치고 있는 받침돌이 워낙 氣가 강해서 그런 것 아닌가 여겨진다. 일부 풍수학자들은 탑 아래로 우주의 지기 기운이 흐르기 때문에 방향을 못 잡는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탑 안에 사리가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사람은 온천수가 흐르기 때문에 그렇다고 주장한다. 오래 전에 탑을 헐고 내용물을 살폈으나 사리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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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암 뒤에서 법당과 해수관음상을 보며 남해를 잡았다. 관음상 앞에 삼층석탑이 어렴풋이 보인다.

해수관음상과 삼층석탑이 있는 자리가 보리암의 제1 전경일 뿐만 아니라 금산의 제1 전망대로 꼽힌다. 멀리 미조해안의 섬들과 상주해수욕장, 송정해수욕장 등 남해의 아름다운 해안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한 마디로 감탄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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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암 삼층석탑에 대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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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삼층석탑을 유심히 보시라. 왜 그렇게 기가 강하게 나올까? 아마 한국에서 가장 기가 센 곳이지 않을까 싶다. 실제 한 번 경험해보시라.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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