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WP_Widget에서 호출한 생성자 함수는 4.3.0 버전부터 폐지예정입니다. 대신
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월간지에 만 44년 동안 연재만화 그린 박영래 화백 - 마운틴
월간지에 만 44년 동안 연재만화 그린 박영래 화백

만 44년 동안 한번도 빠지지 않은 연재만화가 있다면 그건 기네스북감일 것이다. 실제로 그 연재만화가 있다. 1969년 5월 창간된 월간<산> 연재만화 ‘악돌이’가 주인공이다. 2013년 3월호로 500호를 맞는다. 아마 월간지로서 전무후무한 기록이지 싶다.


박영래(朴英來․65) 화백이 ‘악돌이’를 그린다. 악돌이가 박영래이고, 박영래가 악돌이다. 그를 ‘악돌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실제로 더 많다. 어떻게 그 긴 세월 한번도 빠지지 않고 만화를 그릴 수 있을까? 그리고 같은 직장에 그렇게 오래 동안 다닐 수 있을까? 모든 샐러리맨들의 선망의 대상일 것 같다.


“만화의 생명력은 해학과 풍자, 상징과 압축성에 있습니다. 연재만화는 거기에 대중성과 성실성이 가미되죠. 월간<山>에 연재되기 위해서는 전문성이란 요소도 포함됩니다. 뿐만 아니라 가장 본질적인 요소인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전문성과 대중성, 재미를 넣기 위해 산악인들의 술자리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소재는 무궁무진합니다. 연재만화에 실린 건 그 일부에 지나지 않죠. 언젠가 그들의 삶을 모두 모은 만화를 그릴 계획도 있습니다.”

악돌이500회기념.jpg

박 화백의 어릴 적 꿈은 화가였다. 중․고교 다니면서 당시 신문의 독자투고란에 만화를 투고했다. 곧잘 실렸다. 조선일보에도 몇 번 실렸다. 이게 계기가 되어 제주신문에서 편지가 왔다. ‘우리 신문에 연재만화를 그려줄 수 없냐’고. 일주일에 한 번씩 발간되는 어린이 대상지면에 고교생 신분으로 연재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2년 가까이 연재했다. 고교 졸업 후 미술로 대학에 갈 수도 있었으나 취직을 선택했다. 당시 D제과 도안실에서 과자 포장지 그림을 그렸다. 능력을 인정받아 K인쇄공사 개발부 도안담당으로 스카우트됐다. 그에게 이 때는 연재만화의 내공을 쌓는 시기였다.


산과 인연을 맺은 건 순전히 그 시절 배고픈 상황 때문이었다. 성북동 집에서 놀다가 북한산 너머로 비행기 날아가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산 너머 추락했다고 착각한 동심은 그 비행기 잔해를 주우러 틈만 나면 산에 갔다. 비행기 잔해는 없고 폭탄과 수류탄 등의 탄피나 군용 장비를 쉽게 주웠다. 그걸 엿 바꿔 먹곤 했다. 산에 가면 먹을 게 생겼으니 자연 자주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이 때의 산이 그의 인생을 결정하는 직접적 계기가 됐다.


고교 졸업 몇 년 뒤인 1969년 5월, 산꾼들이 모이는 북한산 백운산장에서 등산 잡지가 창간된다는 얘길 들었다. 그 잡지사에 만화투고를 했다. 당시 만화 이름은 ‘그 어느 날’. 편집장이 보더니 “괜찮다”며 앞으로도 계속 그려줄 것을 권했다. 정식 직원으로 채용됐다.

연재만화500회,박영래 화백.jpg

박영래 화백이 그의 화신인 만화 주인공 ‘악돌이’를 그리고 있다.

이듬해인 1970년 9월 ‘그 어느 날’을 지금의 ‘악돌이’로 바꿨다. 만화 악돌이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악돌이는 사실 내 어릴 적 별명이었습니다. 당시 같이 산에 다니던 안광옥․변완철 선배들이 내가 심부름 잘 한다고 ‘악돌이’란 별명을 지어줬어요. 그 악돌이가 연재만화속의 주인공 악돌이로 변신한거죠.”

그 이후 한 번도 빠진 적 없지만 두 번의 타의에 의해 월간<山>에서 ‘악돌이’가 빠졌다. 1977년 6월부터 9월까지 잠시 ‘산돌이’로 바꿨다. 악돌이란 이름이 너무 강해 바꿨더니 주변 사람들이 “당신 이미지에는 ‘악돌이’가 딱 맞다”고 해서 다시 원위치 했다. 1980년에는 월간<山>이 산악문화사에서 조선일보사로 옮기는 과정에서 중단됐다. 박 화백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는 상황이었다.


그가 산악계에 있는 50여 년 동안 인연을 맺은 사람은 수없이 많다. 특히 지금 아웃도어 업체 대표들은 대부분 그와 함께 등산을 하거나 술을 마셨다. 그래서 산악계에서는 그의 만화가 대표성을 갖는다. 웬만한 브랜드에는 그의 만화 ‘악돌이’가 들어있다.


“월간<山>에 평생 근무할 수 있었던 건 더없는 행운이죠. 저의 가족을 먹여 살렸고, 저의 인생을 보람 있게 해줬어요. 특별히 배운 것도 재주도 없는데 산에 다니면서 열심히 만화나 그린 게 지금의 나를 있게 했죠. 앞으로도 특별한 계획은 없어요. 계속 만화나 그리는 거죠, 뭐.”

만 44년 동안 만화를 그린, 앞으로도 그릴 그는 영락없는 산꾼이다. 그의 인생도 세 가지, 즉 산과 술과 만화로 요약된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