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4대 관음기도 도량처는 동해안 낙산사 홍련암, 서해안 석모도 보문사, 남해안 남해 금산 보리암과 여수 금오산 향일암이다. 이 4곳의 기도처는 한민족 3대 기도 원형 중에 하나인 용왕기도에서 유래했다. 한민족 3대 기도 원형은 산신기도, 용왕기도, 칠성기도를 말한다. 이를 한민족 삼신신앙이라고도 한다. 용왕기도는 바다의 신에게 드리는 기도를 말한다.
한반도 삼대 기도원형 중의 하나인 용왕기도가 지금은 해수관음기도 도량으로 변형됐다. 여수 향일암에 있는 해수관음보살상의 모습.
한반도에 들어온 불교는 한민족 고유의 샤머니즘과 훌륭하게 융합한다. 소프트랜딩을 매우 잘 한 것이다. 불교적 요소에 샤머니즘을 충분히 흡수했다. 지금도 사찰에 가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산신각이나 칠성각, 독성각 등이 우리 전통의 신앙을 받아들인 흔적들이다.
자라목 바로 뒤에 자리 잡고 있는향일암. 금오산 자락 모양이 영락없는 자라목 형세다.
자라가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 그 자체다.
한민족 토속신앙인 용왕기도가 불교와 융합하면서 해수관음보살로 변모한다. 흰옷을 입은 관세음보살이 바다에서 꿈틀거리는 커다란 용의 등에 올라타 서 있는 모습이 해수관음의 대표적 상징이다. 지금의 4대 관음기도처는 바로 용왕기도처와 직결되는 것이다. 이 4곳 기도처의 공통점은 기운이 뭉쳐진 바위산 끝자락에 암자가 자리 잡고 있으며, 탁 트인 바다를 내려 보고 있다는 점이다. 기운을 받기 이보다 더 좋은 자리가 없을 위치다. 어느 곳이 더 좋고 덜한 정도가 없을 만큼 비슷한 분위기다.
금오산은 산에 있는 바위 전부가 거북 등같이 갈라져 있다. 정말 똑 같이 생겼다.
금오산 여기저기에 있는 바위는 전부 거북이 등같이 갈라져 있다.
그 중에서도 남해 쪽빛 바다를 내려다보는 여수 향일암으로 한 번 가보자. 향일암 있는 위치가 거북이 목과 등 사이의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장에 가서 보면 영락없는 거북의 형상이다. 누가 봐도 알만하다. 육지의 거북이 바다로 뛰어 들어갈 형세를 하고 있는 목 뒤의 지점에 향일암이 있다. 향일암이 있는 금오산에 한 번 올라가봤다. 기이하게도 산에 있는 바위 전체가 거북이 등같이 갈라져 있다.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의아심이 들 정도였다.
원효대사가 애초 창건할 때의 이름은 원통암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대웅전은 원통보전이다.
향일암의 원래 이름은 원통암이었다. 신라 원효대사가 창건(선덕여왕 9년 659)할 때 원통암이라 명명했다. 그래서 지금도 대웅전이 아니고 원통보전이다. 그 이후 고려 광종 9년(958) 윤필 대사가 섬의 형세를 보고 금오암으로 바꿨다. 산전체가 온통 거북이 등같이 갈라진 모습이고 해서 큰 자라와 같다고 해서 금오암으로 개명한 것이다. 금오암은 글자 그대로 큰 자라모양의 암자란 뜻이며, 산 이름도 금오산이라 불리게 됐다.
향일암엔 연말연시가 되면 기도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러다 조선 숙종 때 인묵대사가 관음전 아래 원통보전을 짓고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했다. 인묵대사가 금오암에서 남해의 수평선에서 솟아오르는 해를 보니 너무 아름다워 ‘향일암’으로 다시 개명했다고 전한다. 향일암은 ‘해를 향하는 암자’라는 뜻이다. 불교적으로는 대일여래(大日如來), 즉 비로자나불에 귀의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향일암에서 본 일몰.
향일암에서 본 일출.
향일암이 있는 금오산 주변에는 원효대사가 앉아서 참선과 수도정진을 했다는 원효대사 좌선대, 원효대사가 책을 읽었다는 경전바위 등이 옛 자취를 그대로 전하고 있다. 향일암에는 평소에도 일출과 일몰을 보려는 방문객들로 넘쳐 나지만 특히 연말과 연시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몰린다. 한국의 다른 기도처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생각해도 한민족의 영성은 매우 우수한 것 같다. 1년 내내 온갖 기도처를 찾아 기도하는 사람은 아마 한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최고일 것 같다.
금오산 위에서 내려다본 향일암은 마치 바위 사이에 낀 절 같아 보인다.